한국 정부 “북한 김주애 4대 세습 가능성 높아”...첫 공식 판단

김정은(가운데 앉은 이) 북한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맨 왼쪽)가 지난 3월 모처에서 미사일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처음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 후계자 내정설이 가능성이 높다는 공식 판단을 내놓았습니다. 올들어 북한 당국과 매체들이 보인 김주애에 대한 파격적인 의전과 호칭 등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군과 관련된 각종 행사에 잇따라 딸 김주애와 동행한 행보와 관련해, “세습 과정에서 후계자로 조기 등판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김주애의 세습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보고 있다”고 6일 밝혔습니다.

지난해 11월 처음 공식석상을 통해 모습을 보인 김주애에 대해 한국 정부가 북한 4대 세습의 유력한 후계자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입니다.

이 당국자는 또 2021년 1월 8차 노동당 대회에서 총비서 바로 아래 직함으로 ‘제1비서’를 신설한 것을 두고 “최근 행보를 보면 김주애 세습을 염두에 두고 그런 움직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북한은 공식적인 2인자인 제1비서 자리를 신설한 이후에도 이 자리를 공석으로 남겨 둔 것으로 한국 정부는 파악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올해 10살인 김주애가 지난해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 발사 현장에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김주애를 후계자로 보는 데 신중한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김주애에 대한 북한 당국과 매체의 파격적인 의전과 호칭등을 후계자 내정을 뒷받침하는 징후로 보고 있습니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주애가 지난 8월 해군사령부, 지난 11월 공군사령부를 방문했을 때 군 사령관들의 거수경례를 받는 모습들이 계속해서 의전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김정은(가운데 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가운데 오른쪽)와 함께 지난 8월 해군사령부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중국과 러시아 대표단이 참석했던 지난 9월 9일 정권수립기념일 기념 열병식에서 김주애가 주석단 중앙에 앉았던 점, 그리고 11월 김 위원장과 공군사령부를 방문했을 때 김 위원장과 비슷한 가죽코트를 입고 김 위원장보다 앞쪽에서 촬영한 사진이 공개된 점도 주목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박사는 북한 매체가 김주애에 대해 사용하는 ‘존귀하신 자제분’이라는 호칭에서 ‘존귀하신’이라는 형용사는 수령급에게만 쓰는 표현이라며, 김주애가 아버지 앞에 나선 사진이 공개된 것도 후계자가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성장 박사] “김정은을 가릴 수 있는 인물 그건 뭐 상상도 못하는 일 아니에요? 그런데 김주애가 딱 가리면서 앞으로 김주애가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걸 끊임없이 암시하고 있죠.”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또 “김 위원장이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승계 준비 과정이 굉장히 짧았기 때문에 김주애의 ‘조기 등판’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짧은 승계 과정을 거치면서 북한 안팎으로부터 지도력에 대한 의심을 받고 권력 장악에 어려움을 겪었던 김 위원장이 자신의 딸에겐 그런 전철을 밟지 않도록 조기 등판시켰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원장을 역임한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도 지금은 김 위원장이 김주애를 후계자로 간택하고 후계자 수업을 진행하는 단계로 진단했습니다.

고 명예교수는 김주애의 ‘조기 등판’은 북한의 주요 전략무기 고도화와 맞물려서 이뤄진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북한의 전형적인 최고 지도자상이 ‘장군형 지도자’인데 북한이 현재 박차를 가하고 있는 핵과 미사일 고도화 현장에 김주애를 노출시킴으로써 추후 사용할 우상화 선전 소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겁니다.

[녹취: 고유환 명예교수] “첫 등장도 ‘화성-17형’이었고 그 다음에 군사정찰위성이잖아요, 최근에. 그리고 결국은 북한에서 가장 후계 덕목으로 중시하는 것이 장군형 지도자에요.”

통일부에 따르면 김주애의 공식석상 등장은 지금까지 모두 19번으로 이 가운데 16번이 군사 활동과 관계돼 있습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이와 관련해 지난 6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김정은이 딸을 지속해서 부각하는 것은 북한이 처한 어려움 속에서 세습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다소 서두르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밝혔습니다.

김 장관은 ‘북한이 어려움에 봉착했다는 신호’로 재외공관 연쇄 철수, 만성적인 식량난, 최근 탈북민 한국 입국 증가 등을 꼽았습니다.

한국 내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선 그러나 김주애 후계자 내정 여부를판단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옵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가부장 문화가 뿌리깊고 더욱이 안팎의 어려움에 직면한 현 상황에서 북한사회가 어린 여자아이를 후계자로 받아들이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여성 후계자를 지금 받아들일 준비가 안돼 있다고 보는데 그렇게 급하게 후계자로 지명한다는 것은 오히려 더 북한 내부의 엘리트나 보통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접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과연 그게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위기를 돌파하는 해법일까 그런 부분에서도 굉장히 회의적인 거에요.”

이와 관련해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유교적인 가부장제 사회이기 때문에 여성이 최고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반론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과연 북한이 어느 정도 유교적인 사회일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김주애 후계자 여부에 지나치게 몰입할 경우 핵무기 고도화 등 북한 문제의 본질이 희석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박사] “이게 자칫 너무 후계자론 하나에만 프레임을 짜고서 거기에 모두 몰두하다 보면 전체적인 북한의 핵 미사일 고도화 등 본질이 다소 희석되고 어떤 의미에선 북한의 대남 심리전 요소에 오히려 말려들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래서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홍 박사는 북한 지도부가 김주애를 공식석상에 연이어 내세운 이유가 후계자로 내정해서가 아니라 `백두혈통’ 통치의 연속성을 부각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수령체제를 완성시키려는 의도일 수 있다며, 보다 충분한 정보를 갖고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