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헌법에서 ‘평화통일, 동족’같은 표현을 삭제하고 한국을 ‘철두철미 제 1의 적대국’으로 명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북한의 대남정책이 ‘하나의 조선’에서 ‘두 개의 조선’으로 바뀌는 것인데요. 이런 언급이 나온 배경과 의미를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헌법에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명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전쟁을 피할 생각도 없습니다. 전쟁은 대한민국을 괴멸시키고 끔직하게 끝나게 만들 것입니다. 미국에는 상상할 수 없는 재앙과 패배를 안길 것입니다.”
김 위원장은 또 “헌법에 있는 ‘북반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표현을 삭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이번 연설이 70년 남북 분단사에서 ‘경천동지’할만한 큰 변화라고 말합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김 위원장이 남북 간 합의는 물론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모두 부정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김정은이 말한 것은 통일 부정, 민족 부정, 평화 부정 이 세 가지인데, 이는 북한체제의 근간이었는데,이를 부정한 것은 김정은 체제의 자기부정이죠.”
주목되는 건 김 위원장이 어떤 배경과 의도에서 이같은 언급을 했느냐는 점입니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인 앤드류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김정은 위원장이 한국 윤석열 정부를 지켜보다가 `흡수통일’ 위협을 느낀 것같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이 통일을 포기하고 남한을 적대국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같다는 설명입니다
[녹취: 앤드류 여 박사] ”North Korea here, Yoon government talk about reunification, that means absorption of North Korea, end of regime. Kim now think unification is no longer possible and treat the South as enemy state.”
한국의 문재인 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를 지낸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의 이번 발언 배경에는 남북한의 `강 대 강’ 대결구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문정인 박사] ”우리 쪽에서 북한을 주적이라고 국방백서에 명시하니까, 김정은도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남측 괴뢰는 우리 주적이니까, 헌법에 넣어서 인민을 교양시켜라고, 똑같은 얘기를 해요.”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김 위원장의 발언이 “한국 내 정치적 분열을 이용하려는 의도”라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남북관계 파탄에 대해 윤석열 정부를 비난함으로써 한국 내 정치적 이견을 악화시켜 오는 4월 한국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겁니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 “Kim Jong Un's remarks are also designed to exploit political divisions in the ROK. By blaming President Yoon and his government for the breakdown in South-North ties, Kim Jong Un hopes to exacerbate political differences in the South and drive a wedge between the government
김정은 위원장의 이같은 대남 강경 발언은 남북관계에서 분야별로 다른 효과를 낼 전망입니다.
김 위원장의 발언 중에 주목되는 것은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한 점입니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우리 국가의 남쪽 국경선이 명백히 그어진 이상 불법, 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 영공, 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 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헌법에는 영토 규정이 없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헌법을 개정해 NLL 남쪽에 선을 긋고 이를 해상 경계선이라고 주장할 경우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게다가 2018년 남북이 채택한 ‘9·19 군사합의’에 따라 설정된 서해 완충구역도 최근 포격 사태로 사라졌습니다.
한반도 전문가인 미 해군분석센터 켄 고스 국장은 이런 이유로 북한이 새로 해상 경계선을 설정할 경우 서해가 분쟁 지역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켄 고스 국장] ”Good chance is West Sea around Northwest islands around NLL that is area where provocation take place next few weeks, months.”
고스 국장은 북한이 NLL인근 북서부 도서를 겨냥해 앞으로 몇 주 또는 몇 달 안에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김 위원장의 대남 발언과 조치가 별 실효성이 없는 분야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북대화는 지난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5년 간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 등 대남 기구를 정리하라는 김 위원장의 발언도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이미 2021년 3월에 조평통에 대해 “존재 이유가 없어진 조평통을 정리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사회에서는 북한을 향한 동족 의식과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인식도 크게 약화된 상황입니다.
한편 지난해 연말 북한의 8기 9차 전원회의부터 시작된 김 위원장의 잇따른 강경 발언은 미국에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헤커 교수는 지난 11일 북한전문 매체 ‘38노스’ 공동 기고를 통해 “김정은이 1950년에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전쟁하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칼린 연구원은 과거 미 중앙정보국(CIA) 동북아 담당 국장을 지냈습니다.
또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의 주역이었던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 핵 특사는 최근 외교안보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문에서 “북한이 핵무기 선제 사용을 위협하고 있다”며 “2024년 동북아시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최소한 염두에는 둬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을 오래 관찰해온 문정인 명예교수는 북한이 도발과 우발적 충돌은 몰라도 핵전쟁을 감행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문정인 교수] ”미국의 한반도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인데, 내가 보기에는 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고, 오히려 우발적 충돌이 에스컬레이션 되면…”
북 핵 6자회담 미국 측 차석대표를 지낸 조셉 디트라니 씨는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미국과 한국이 좀더 적극적으로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는 “미국과 한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계속 열려 있어야 한다”며 “북한에 평화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에 복귀하는 것이 그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한국과 미국은 확고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 “I think the United States and South Korea should continue to be open to dialogue with North Korea to indicate to North Korea that it's in their advantage to come back to negotiations."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는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도 강조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대남 강경 연설이 일파만파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북한 수뇌부가 올해 한반도 정세를 어디로 몰고갈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