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러시아, 북한 남포행 유조선 수배 중…6만 배럴 분량

지난해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회담 장소인 보스토치니 코스모드롬에 러시아와 북한 국기가 휘날리고 나란히 걸려 있다. (자료사진)

러시아 회사가 수천 t에 달하는 유류를 북한으로 운송할 유조선을 찾는다는 공고문을 냈습니다. 유엔이 정한 연간 상한선을 초과한 상황에서 민간 차원에서도 북러 간 유류 거래가 노골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주목됩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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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최근 선박 업계 관계자들에게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유류를 운송할 유조선을 찾는다는 ‘선박 수배 공고문’이 배포됐습니다.

화주인 러시아 회사의 의뢰를 받은 선박 브로커가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 왓스앱(WhatsApp) 메시지 등을 통해 공고문을 업계에 뿌렸습니다.

VOA가 확인한 선박 수배 공고문에 따르면 화주가 운송을 희망하는 유류는 7~8천t으로, 선적지(POL)는 러시아 보스토치니, 하역지(POD)는 북한 남포입니다. 흘수, 즉 선박의 가장 깊은 점까지의 수심은 최대 9m라는 구체적인 항구 정보도 안내됐습니다.

공고문에는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As soon as possible)’ 1차 선적을 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2차 선적 일정이 5월 18일로 적혔습니다.

유조차(탱크로리) 1대가 실을 수 있는 액체가 약 20t인 점으로 본다면 북한으로 향하는 유류는 유조차 약 400대 분량입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가 공개한 환산표를 이용하면 유류 8천t은 약 6만 배럴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유엔 안보리가 정한 연간 상한선의 약 10분의 1에 달하는 정제유가 단 두 번에 걸쳐 북한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안보리는 지난 2017년 채택한 대북 결의 2397호를 통해 북한의 정제유 수입 한도를 연간 50만 배럴로 제한한 바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같은 공고문이 배포되면 전 세계 선박 회사나 선박을 빌려 운항하는 용선업자들은 해당 브로커에게 입찰하고, 이후 조건이 가장 좋은 선박에게 운송 기회가 돌아갑니다.

러시아 극동 지방에서 북한 서해까지의 운임은 수십 만 달러 수준으로 전해졌습니다.

선박 업계 관계자는 7일 VOA에 “1차 선적을 당장 원하고 있고, 2차 선적 일정도 약 열흘 뒤로 잡힌 것을 보면 일정이 매우 빠듯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매우 급하게 유류를 북한에 보내야 하는 사정이 있는 듯하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미국 정부는 러시아가 북한에 안보리의 연간 한도를 넘는 정제유를 공급했다며 관련 거래에 대한 대응을 예고한 바 있습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이 6일 브리핑을 하고 있다.

특히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지난 2일 브리핑에서 “러시아가 올해 북한에 제공한 정제유 양이 이미 유엔 안보리가 정한 한도를 넘었다”며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했습니다.

[녹취: 커비 조정관] ”Russia has been shipping refined petroleum to the DPRK. Russian shipments have already pushed DPRK inputs above mandated by the UNSC. In March alone, Russia shipped more than 165,000 barrels of refined petroleum to the DPRK."

이어 “지난 3월에만 러시아가 북한에 16만 5천 배럴이 넘는 정제유를 보냈다”며 “러시아와 북한의 상업 항구가 가깝다는 점을 감안할 때 러시아는 이런 수송을 무한정 지속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다만 당시 이들 거래에는 북한 유조선이 동원되는 등 사실상 정부 차원에서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민간 회사가 제3국 선박 회사 등을 상대로 공고문을 냈다는 데 큰 차이가 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 강화 분위기에 편승해 민간 회사마저 노골적으로 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에 동참하려는 것은 아닌지 주목됩니다.

닐 와츠 전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위원.

남아프리카공화국 해군 대령 출신으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에서 활동한 닐 와츠 전 위원은 7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연간 한도를 초과하는 모든 이전은 불법으로 간주돼야 한다”며 “(이번 공고문은) 러시아가 자신들이 동의한 만장일치의 유엔 결의를 더 이상 준수하지 않는 증거”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와츠 전 위원] “Any transfer above the cap should be considered illegal and it's just further evidence that the Russian government no longer abides by the UN resolution that it originally agreed to, because all the subsequent resolutions were unanimous.”

이어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 나라가 안보리 특히 대북제재 1718 위원회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만큼 더 이상의 (선박) 제재는 불가능해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와츠 전 위원] “And so that designation seems no longer possible, since the P5 can no longer agree at the Security Council, and specifically at the DPRK Committee, the 1718 Committee. So, when it comes to implementing the sanctions, it's left up to countries now and bloc such as the European Union, to include Russian vessels on the sanctions list that are blatantly violating the sanctions measures pertaining to petroleum products.

그러면서 “정제유 제품 관련 제재를 위반하는 러시아 선박을 제재 목록에 포함시키는 것은 각국 그리고 유럽연합과 같은 국가 연합체에 달려 있다”며 미국 등 ‘같은 생각을 가진’ 나라의 독자 제재를 제재 위반을 막기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제시했습니다.

실제로 선박 수배 공고문이 관련 업계에 퍼지고 있지만 입찰에 나서는 선박 회사가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합니다.

선박 업계 관계자는 북한 항구에 직접 기항해야 하는 만큼 쉽게 나설 선박이 없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미국 등 일부 나라의 독자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선박 업계 내 팽배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지난 2014년 7월 북한-러시아 협력 사업으로 건축된 라진항 부두에서 석탄 선적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자료사진)

앞서 VOA는 2019년과 2020년 여러 차례에 걸쳐 라진항에서 러시아 석탄을 선적해 중국과 베트남 등으로 운송해줄 선박을 찾는다는 내용을 담은 ‘선박 수배 공고문’을 확보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VOA 취재 결과 이들 러시아 석탄은 어떤 배에도 실리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선박들이 나서지 않으면서 수출 자체가 무산된 것입니다.

미국 정부도 러시아와 북한 간 거래에 관여한 자들에 대한 제재 부과를 공언하고 있습니다.

매튜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2일 브리핑에서 “미국은 러시아와 북한 간 무기 및 정제유 이전을 가능하게 하는 이들에 대한 제재를 계속 부과할 것”이라며 “새로운 공동 제재를 발표하기 위해 호주, 유럽연합, 일본, 한국, 영국 등을 포함한 파트너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