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중국 관계에 이상 징후가 한층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북한 주재 중국대사가 북한의 이른바 ‘전승절’ 행사에 불참하는 일까지 벌어졌는데요, 서울의 김환용 기자를 전화로 연결해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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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최근 한국전쟁 휴전협정 체결일인 북한의 이른바 ‘전승절’ 기념행사에 북한 주재 각국 외교관들이 참석했는데 중국대사만 보이지 않았다고요?
기자) 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따르면 북한은 전승절인 27일 평양체육관에서 전승세대와의 상봉모임을 진행하고, 저녁엔 평양체육관광장에서 한국전쟁 시기 상징 종대들의 기념행진식을, 그리고 밤에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앞에서 경축공연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면 알렉산드르 마체코라 러시아대사와 레바빙 베트남대사 등 북한에서 활동하는 대사들이 대부분 외빈 자리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되지만 왕야진 중국대사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불참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왕 대사는 지난달 한국전쟁 74주년을 맞아 북한이 평양에서 대규모 반미 집회를 열었을 때도 다른 대사들과 달리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은 한국전쟁을 ‘항미원조’ 즉 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도운 전쟁이라며 관련 행사에 큰 의미를 둬 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 연이어 관련 주요 행사에 불참한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중국 측의 이런 행보는 어떤 배경에서 비롯되고 있는 건가요?
기자) 전문가들은 러시아와의 밀착을 강화하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불편한 심기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중국은 북한을 지원하는 데 많은 손실과 희생을 감수하면서 배타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며, 북한이 러시아와 동맹수준에 준하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한 데 대해 배신감까지 느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조 박사는 중국대사의 전승절 불참은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절대적인 경제적 영향력에 기초한 일종의 강력한 경고라고 풀이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신조약으로 인해서 북러는 넘을 수 없는 선을 넘은 것으로 시진핑 정권이 생각할 거에요. 결국 중국 영향권 내에 북한이 있고 중국 도움이 없으면 북한체제가 생존할 수 없다는 경고를 보내는 거고요.”
북중 간 이상 징후들은 이 밖에도 여럿 포착이 됐었는데요, 이달 초 중국 당국이 자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 전원을 귀국시키라고 북한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고, 다롄시의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발자국 동판’을 제거한 일, 중국의 자연재해 피해 발생에도 김 위원장이 위로전문을 발송하지 않은 사례 등도 그런 조짐이라는 관측들이 제기됐습니다.
북중은 또 우호조약 체결 63주년인 이달 11일 당 기관지에 이를 다루는 기사를 전혀 싣지 않았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북한은 이런 중국의 태도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기자) 김정은 위원장은 이렇게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상황에서도 전승절을 계기로 한국전쟁 참전 중국 군을 기념하는 우의탑을 방문해 혈맹관계임을 강조했습니다.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26일 우의탑을 찾아 “우리 인민의 혁명전쟁을 피로써 도와준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들에게 숭고한 경의를 표했다”며 김 위원장이 “혈연적 유대로 맺어진 조중친선이 열사들의 영생의 넋과 더불어 굳건히 계승 발전되리라는 확신"을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박사는 중국의 태도가 냉랭해졌지만 북한이 중국을 무시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며, 러시아와 군사 밀착을 도모하는 가운데 중국에 대해서도 나름의 방식으로 관리하려는 의도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장용석 박사] “기본적으론 러시아에 몰빵해서 지금 뭔가 군사 기술 등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받기 위해서 몸부림치면서도 한켠에선 중국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 이런 상황 관리하는 차원에서 일단 움직이는 것 같고.”
진행자) 북중 관계 이상 신호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으로 보고 있나요?
기자) 전문가들은 북중관계가 삐걱거리는 이유는 서방에 대응하는전략 측면에서 자국 이익에 기초해 부분적으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제 위기 탈출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중국은 북중러 3각 반미 반서방 연대보다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 등을 고리로 미한일 협력을 완화시키는 전략을 추구하지만 북한은 중러 등과 사회주의 진영을 구축해 미국 등 서방과 맞서야 한다는 입장이라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또 중국은 북한의 과도한 도발이 사실상 자국을 겨냥한 미한일 안보 협력을 강화시키는 빌미가 되고 있다고 보고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도 불편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통일연구원의 중국 전문가인 전병곤 박사입니다.
[녹취: 장용석 박사] “중국 입장에선 한미일 협력이 제도화하는 것을 방지하고 이완시키고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데요, 북한이 그것을 자극하지 않도록 관리하는데, 한국을 좀 유인하고 이러는 것도 지금 한중관계에서 보여지는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요.”
진행자) 그렇다면 북중관계가 어디까지 나빠질 수 있는 건지 어떤 전망들이 나오나요?
기자)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중국대사가 전승절에 불참하기까지 한 것은 북중관계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는 느낌을 준다면서도 파국으로 갈 가능성에 대해선 매우 조심스런 견해를 밝혔습니다.
임 교수는 중국은 대선을 앞둔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선 북한과의 갈등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키기 보다는 적절한 관리 모드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도 미중 패권경쟁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을 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중국 측과 물밑에서 입장을 조율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북중 간에 소원한 관계가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지금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어떤 전략적 이익관계 때문에 언제라도 손을 다시 잡을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은 열어놓고 봐야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장용석 박사는 북러 간 협력 범위도 유동적이고 미한일 안보 협력 제도화도 미 대선 결과에 따라 유동적이긴 마찬가지라며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북한에 대해 7차 핵실험 같은 과도한 도발에 섣불리 나서지 않도록 경고성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또 김정은 위원장은 원산 갈마 해안관광지구 내년 5월 개업을 지시하는 등 중국과의 협력이 절실한 사업들에 진력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 복원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