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북한군 파병과 미국의 장거리 미사일 사용 허용 등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매일 울리는 공습경보 속에서 불안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안소영 기자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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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 20년 넘게 거주한 한인 김창현 씨는 21일 VOA와의 통화에서 전쟁의 공포에 적응해 가는 자신과 우크라이나인들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토로했습니다.
[녹취: 김창현 씨] "3일 전에도 미사일이 많이 떨어져서 아침 6시에 사이렌이 울렸거든요. 그래서 1층에 내려갔더니 현지인들도 전부 나와서 1층, 지하 주차장에 대피해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적응하는 거예요. 이게 함정이죠. 그냥 무뎌지는 거 같아요."
섬유 무역업에 종사하는 김 씨는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전면적인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다른 한인들과 함께 한국으로 철수했다가, 석 달 전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왔습니다.
“하루에도 사이렌 수차례…전쟁 격화 실감”
김 씨는 러시아 국경과 가까운 하르키우에서 살다가 전쟁 후 키이우로 이주했으며, 최근 며칠 사이 전쟁이 더욱 격화되고 있음을 느낀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김창현 씨] "지금도 쏘고 있어요. 사이렌이 울리는데요. 미사일이 날아왔어요. (오늘은 사람들이) 또 나중에 폭파된 영상들을 보고 그게 일반 미사일이랑 달라서 ICBM이라고 얘기들을 하고 있고요."
이날 우크라이나 공군은 사회연결망서비스 X(구 트위터)를 통해 러시아가 아스트라한 지역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한 발을 발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미국이 지난 17일 장거리 미사일 ATACMS(에이태큼스)의 사거리 제한을 해제하고, 우크라이나군이 영국산 공대지 장거리 미사일 스톰섀도로 러시아를 공격한 뒤 발생한 일입니다.
러시아가 전쟁 개시 후 ICBM을 사용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40년째 거주 중인 또 다른 한인 김평원 씨는 전쟁 발발 후 한국으로 출국했다가 5개월 전 우크라이나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여전히 대부분의 한인이 현지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김평원 씨] "전쟁 전에는 한국 교민들이 한 800명 정도 됐어요. 제가 있는 쪽에는 지금 한국분이 거의 없죠. 한 10여 명 계실 겁니다. 지금 한국 정부 허가 없이는 들어오지 못해요. 일정 조건에 맞아야 하는데 (그 조건에) 안 맞는 경우가 많고, 지금 또 전쟁이 상당히 격화된 상황이라 많이들 나갔다가 안 들어오고 있죠."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은 교민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김창현 씨는 매일 아침 대사관으로부터 안전과 관련된 안내 문자를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창현 씨] "대규모 공습이 있으니까 조심하라 뭐 이런 문자가 오고요. 오늘은 대사관 (직원들이) 재택근무 한다, 이런 거 포함해서요. 오늘은 방독면을 배포하겠다고, 몇 개가 필요한지 (묻는) 이런 문자가 왔어요."
"우크라이나인들, 북한군 참전에 당혹"
우크라이나 전쟁이 확전 국면에 접어든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북한군의 참전입니다. 백악관은 북한군이 러시아와 함께 전투에 투입된 사실을 확인하며, 이를 러시아의 책임으로 규정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김창현 씨와 김평원 씨는 북한군의 참전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졌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평원 씨] "저희한테 물어요. 왜 북한군이 여기까지 와서 자기들을 향해서 이렇게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가. 그리고 거기에 상응하는 우리 한국의 또 어떤 조처가 있어야 되지 않냐 이런 질문을 합니다. 이들의 가장 주된 관심사가 되다 보니까 그런 부분이 좀 가장 곤욕스러운 부분이죠.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러시아만을 상대로 싸우다가 또 북한이라는 변수가 등장하니까 굉장히 당혹스럽겠죠."
[녹취: 김창현 씨] "북한이 러시아 편으로 참전했는데 한국도 반대편에서 우리를 도와줘야 되는거 아니냐 이런 식으로 얘기를 많이 해요. 포탄이나 살상무기 지원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렇게 말합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현지 한인들은 조속히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희생을 생각하면 종전 이야기를 쉽게 꺼낼 수 없는 처지가 됐습니다.
김창현 씨는 러시아 접경 지역인 하르키우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영토 수호를 위해 싸우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보면 "그런 말을 꺼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녹취: 김창현 씨] "내일이라도 그냥 러시아가 점령한 곳 주고 끝났으면 좋겠죠. 하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아빠가 죽고 남편, 오빠가 전쟁에서 죽은 사람이 있는데요. 자기네 나라 지키려고 죽은 건데 땅 뺏기고 끝나면 아무 소용이 없어지잖아요."
VOA 뉴스 안소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