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국가경제 발전을 이룩하는 길은 계획경제와 자립경제 대신 광범위한 개혁개방에 나서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밝혔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국가경제 발전 5개년 전략’에 대해 북한이 침묵하는 배경과 해법을 진단하는 기획보도, 오늘은 두 번째 마지막 순서로 북한 당국의 5개년 전략 대안 움직임과 전망에 대해 알아봅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올해 신년사를 대신한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국가경제 발전 5개년 전략과 인민생활 향상에 대한 언급 없이 갑자기 경제 관련 ‘10대 전망 목표’를 새롭게 제시했습니다.
“정면돌파전의 기본전선은 경제”라고 강조하며, “나라의 경제를 안정적, 전망적으로 발전시기기 위한 10대 전망 목표의 지표별 계획들”을 세우라고 독려한 겁니다.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이런 움직임이 5개년 전략을 대체하는 것인지, 기존 전략을 더 정교화하기 위한 개선안인지 분명치 않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But it wasn't clear from what I read about the meeting… whether that was a replacement for that strategy or whether it was just a refinement of the strategy,”
뱁슨 전 고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여파와 북-중 국경 봉쇄로 인한 경제 악화로 ‘10대 전망 목표’는 모호해졌고, 북한 당국도 경제 목표치를 재조정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모든 게 불확실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당국도 경제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관영매체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3일 사설에서 “모든 것이 어렵고 부족한 오늘의 형편”, “오늘의 난관도 자력갱생으로 정면돌파”, “무진장한 전략자산은 과학기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농업과 광업의 비중이 국가산업의 절반을 넘는 저개발국형 산업구조, 광물과 수산물 등 1차 산품이 수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저급한 무역구조에서 과학기술이 성과를 내기는 힘들다고 지적합니다.
한국 정부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김석진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과학기술의 정보화라는 국제 추세를 적극 수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기본적인 산업기술의 낙후성이 주요 걸림돌이라고 말했습니다.
“노동력은 풍부하지만 자본과 기술이 없는 저소득 개발도상국 수출 구조”, “휴대폰과 컴퓨터, 자동차, 가전제품 등은 거의 전부를 수입에 의존”, 인적자본은 있지만, 군수공업과 군사기술 분야에 대한 과학기술 투자 비중이 커 민수기술 분야는 빈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녹취: 김석진 선임연구위원] “국내자원에만 의존하려고 하면 더이상의 발전은 없고 현상유지 밖에 못하는 거죠. 그러니까 자력갱생, 자력으로 제재를 돌파한다는 것은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냥 겨우겨우 살아가는 정도밖에 안 되는 겁니다.”
제롬 소바쥬 전 유엔개발계획(UNDP) 평양사무소장은 5개년 전략의 핵심인 전력과 탄광 모두 오랫동안 투자가 없어 기반시설이 무너진 최악의 상황이라며, 외국의 대대적인 투자 없이는 국가 성장 발전의 동력을 살릴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소바쥬 전 소장] “Unfortunately, the situation of energy is worse than it has ever been. Why? Because the infrastructure is falling apart.”
가령, 홍수로 탄광에 물이 차면 발전기로 물을 퍼내야 하지만 전력과 설비가 부족해 복구에 오랜 세월이 걸리고, 지방에 발전소를 세워도 송배전 시설과 설비 제작 능력이 없어 전력을 보낼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겁니다.
소바쥬 전 소장은 또 회사 사장의 건강 상태에 대한 의구심이 많고, 회사 내 전염병 문제도 불투명한 기업에 누가 믿고 큰 자금을 투자할 수 있겠냐며, 북한 당국의 투명성 문제가 투자 유치의 또 다른 걸림돌이라고 말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대학의 루디거 프랭크 교수는 당장 위기는 아니지만 북한의 대내외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며, 북한 당국이 공채를 발행하려 한다는 일각의 관측을 사례로 꼽았습니다.
[녹취: 프랭크 교수] “The state has taken some rather unusual measures…now issuing bonds, therefore, needs to be regarded as an exceptional measure also indicating some kind of increased need by the state to collect resources from the domestic economy.”
프랭크 교수는 최근 온라인 강연(VCNDP)에서, 북한이 한국전쟁 이후 공채를 발행한 것은 이전까지 두 번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예외적 조치라며, 경제난으로 인해 내수경제에서 자원을 더 확충하려는 징후로 풀이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공채 발행을 아직 공식화하지 않았지만, 일부 대북 매체와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난달 기관공채와 무역공채 등 두 공채를 발행한 뒤 다양한 조치를 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한국 서울대학교 김병연 교수는 VOA에, “비필수 소비재 수입 금지 조치나 인민공채 발행 등의 최근 흐름을 보면, 정부 부문 외화 부족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김병연 교수] “정부 재정 지원 없이 국영기업을 가동시키려는 의도, 주로 돈주인 개인의 외화를 정부 부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외화 부족에 직면하게 되면 수입을 줄이려 할 터이고 또 민간 부문 외화를 흡수하려 할 텐데, 그 수단은 합법적, 강제적일 수 있습니다.”
벤자민 실버스타인 미 외교정책연구소 연구원은 북한 당국의 국가재정에 문제가 많은 점을 지적하며, 본질적으로 강제몰수에 해당하기 때문에 유익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버스타인 연구원] “That wouldn't be a good thing, and would essentially amount to confiscation. Of course, all this stems from a very problematic financial situation, to begin with.”
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지난달 21일,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국가예산 납부 의무를 어김없이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세금을 더 많이 걷어 국가재정을 확충하겠다는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한국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의 유승민 북한투자전략팀장은 VOA에, 이런 공채와 세제 개편은 “사경제 부문의 성장과 이에 따른 민간자본가(돈주)의 자금 축적을 북한 정부가 다양한 이유로 조정하려는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유승민 팀장] “비공식 경제의 확장에 대한 견제 의도가 있는 반면, 대북 제재로 인한 재정, 통치자금 부족 등을 완화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보입니다. 다만 첫째 경우 북한의 사경제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있어서 북한 당국의 의도가 주목됩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올해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귀국으로 인한 외화벌이 감소, 매년 누적되는 20억 달러의 적자, 이로 인해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경공업 등 관련 산업의 연쇄 타격, 개점휴업 상태인 관광산업 등 대부분 여건이 북한에 등을 돌리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한국 언론에, 북한 당국이 “정책과업과 국가예산 수입, 지출을 상당 부분 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북-중 교역의 장기적 중단이 외화난을 가속화하고 거의 모든 분야에 어려움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계획경제 국가에서 5개년 전략 계획 언급이 사라진 것은 역설적으로 긍정적 징후라며, 김정은 위원장이 두 가지 결단을 통해 경제난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One would say, he should give into the US and do start cutting back nuclear weapons.”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 핵무기 감축에 나서 제재를 풀고, 과거 중국처럼 국가 소유 기업소와 아파트, 집단농장 등을 돈주 등 개인에게 대여 혹은 판매해 일부 민영화를 시도한다면 국가재정도 쉽게 확충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며, 자력갱생 강조를 통해 그럭저럭(muddling through) 버티면서 중국과 러시아에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또 북한이 당 창건 75주년에 맞춰 5개년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올해 안에 인민생활을 향상시키겠다는 목표는 사실상 달성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