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공무원 피격' 한국 책임 주장…"국제 인권 문제 비화 차단 나서"

지난달 26일 한국 연평도 주변에 정부 어업지도선이 떠 있다.

북한은 지난달 발생한 ‘서해상 한국 공무원 피격 사건’의 우선 책임이 한국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으로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북한의 이런 반응은 이 사건이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인권 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은 30일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서해상 한국 공무원 피격 사건’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위험천만한 시기에 열점수역에서 한국이 자기 측 주민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일어난 사건이라며 한국 측에 우선적인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남한 주민의 불법 침입에 정상근무를 수행하는 북한군의 정당한 대응이었다고 강변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또 우발적 사건이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갔던 전례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고도 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와 함께 한국 제1야당인 국민의힘 등을 거론하며 보수세력이 만행이니 인권 유린이니 하면서 이 문제를 국제적인 반북모략의 기회로 삼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북한이 ‘서해 한국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한 입장을 밝힌 것은 지난달 25일 통일전선부 명의의 대남통지문을 보낸 이후 한 달여 만입니다.

북한은 당시 통지문에서 사건 발생 경위를 설명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미안하다’는 사과의 뜻을 전하면서도 이번 사건의 책임이 기본적으로 남한 주민의 무단침입에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조혜실 한국 통일부 부대변인은 북한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30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의 사실 규명과 해결을 위한 노력이 조속히 이뤄지기를 바란다”며 “이를 위해 남북 간 소통을 위한 군 통신선의 우선적 연결을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이 통전부 대남통지문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면서 이 사건을 유야무야 마무리 짓기 위해 한국 정부를 향해 경고성 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결론적으로 볼 때 이 사안은 종료됐고 자신들은 정당방위고 한국에 대해서 취할 만큼의 조치는 취했고 그러니까 한국도 더 이상 문제를 삼지 마라, 문제를 삼으면 반공화국 책동이다 이렇게 보는 거죠.”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비록 북한 당국 차원의 공식 반응은 아니지만 한국 정부가 진상 규명을 위해 요구한 공동조사를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사실상 이를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홍 실장은 또 피살 공무원의 유가족이 한국 정부에 수색 중단을 요구한 시점에 맞춰 이 문제를 일단락지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북한연구실장] “북한이 먼저 수색 중단을 요구하거나 보도를 먼저 치고 나갈 경우 상당 부분 북한이 뭔가 부인하거나 뭔가 피하고 싶은 것처럼 보일 가능성이 높은데 어떻든 남측의 피해자 유족이 먼저 수색 중단을 요구하는 상황이 됐고 수색 결과도 회의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일단 남쪽에서 이런 분위기가 나올 때 일단락을 지어주겠다는 게 시점 선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고요.”

전문가들은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이번 사건이 국제무대에서 인권 유린 문제로 비화하는 데 대한 북한의 부담감이 상당히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은 앞서 현지 시간으로 지난 23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 화상회의에서 북한 인권 상황을 보고하면서 “이번 사건은 민간인을 자의적으로 사살한 것으로 보이며 국제 인권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홍민 실장은 인권 문제는 체제와 최고존엄을 모독하는, 북한으로선 아킬레스건일 수밖에 없다며, 표현상으론 한국의 보수세력을 겨냥한 비난이었지만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이 문제가 다뤄지는 데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고 진단했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특히 북한이 다음달 3일 미 대선 이후 차기 행정부와의 협상에서 이 사건이 자신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보고 한국 정부에 문제를 키우지 말라고 경고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이것은 어떻게 보면 인도적 문제이고 인권 문제란 말이죠. 그러면 미국 같은 경우 적대국가와 정상화하는 데 있어서 인권 문제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을 하고 특히 바이든 후보가 됐을 경우 공개적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이야기를 하잖아요. 이게 미국과 협상을 하고 담판을 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을 하는 것 같아요.”

한국과 북한은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22일 북한 해역에서 북한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한국 공무원 이모 씨의 자진월북 여부와 북한군의 시신 소각 여부를 놓고 서로 다른 조사 결과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한국 해양경찰청은 이 씨의 월북 의사 표명 정황을 확인했다는 내용의 수사결과를 발표했지만 북한은 통일전선부 대남통지문에서 밝힌 사건 경위에 이런 내용을 담지 않았습니다.

시신 소각 여부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는 북한 측이 사살 후 시신을 불태웠다는 판단을 유지하고 있지만 북한은 총격 후 시신이 사라져 부유물만 태웠다고 반박했습니다.

이와 함께 한국 내에선 단속정장의 판단으로 총격이 이뤄졌다는 북한 측 주장과는 달리 북한 해군사령부의 사살 명령이 있었다는 감청 정보의 유무를 둘러싸고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