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한국이 북한 인권 실태를 외면하고 있다는 우려가 널리 확대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정부가 올해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직무유기”가 될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북한인들을 저버리지 말라, 그들의 고통에 제발 등을 돌리지 말아달라.”
[수잔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 “Please do not forsake the people of North Korea. Please do not turn your backs on their suffering.”
수잔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는 27일 VOA에 ‘올해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참여할지 안 할지는 (결의안) 문안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면서 해야 될 것으로 생각한다’는 강경화 한국 외교부 장관의 최근 발언에 대해 우려하면서 이같이 호소했습니다.
앞서 강 장관은 26일 한국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동제안국 회의 초청에 응하기보다 이를 주도하는 EU와 소통을 하며 우리 입장을 전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회의 불참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이에 대해 “한국 정부가 북한의 개탄스러운 인권 기록에 대한 비판을 주저하는 것을 곤혹스럽게 생각한다”며 “특히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참여하지 않을 예정이라는 데 우려한다”고 말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 “I continue to be troubled by Seoul's reluctance to criticize Pyongyang's deplorable human rights record. I am particularly concerned that South Korea, like last year, will not co-sponsor this year's human rights resolution. A decision not to co-sponsor the resolution would send a terrible signal to Pyongyang, and to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hat the ROK is unwilling to support key human rights principles.”
그러면서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서 빠지겠다는 결정은 한국이 핵심 인권 원칙을 지지하는 것을 꺼린다는 끔찍한 신호를 북한과 국제사회에 보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은 북한의 인권 침해를 비판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지난 2005년부터 2019년까지 15년 연속 채택됐습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한반도 정세를 고려했다”며 2008년 이후 11년 만에 인권결의안의 공동제안국에서 빠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징후가 감지되자 워싱턴의 인권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 수위를 크게 높이고 있습니다.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은 “한국이 검토하든 안 하든, 북한인권결의안 초안에는 이번에도 ‘인류에 대한 범죄와 책임’ 문구가 담길 것으로 확신한다”며 “그런 이유로 한국은 공동제안국에 이름을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레그 스칼라튜 HRNK 사무총장] “Whether the ROK reviews the draft resolution or not, I am convinced the resolution will contain paragraphs on crimes against humanity and accountability, as it did before. For that reason, the ROK will likely not co-sponsor the resolution. So, I am not concerned, but I would like to be very pleasantly surprised. That would happen if the ROK co-sponsored the resolution.”
그러면서 “그래도 한국이 의외로 공동제안국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놀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그리고 한국 정부에 말하고자 한다”며 “30년 동안 인연을 맺어온 한국의 학생이자 친구로서, 한국에서 활동하는 북한 인권 옹호자와 탈북민, 북한 인권 조직을 그토록 가혹하게 다루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압제적인 북한 정권에 그렇게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레그 스칼라튜 HRNK 사무총장] “President Moon, Foreign Minister Kang Kyung-hwa, ROK government, I mean no disrespect. I have been a student and friend of Korea for three decades. I urge you to please stop being so tough on North Korean human rights defenders, North Korean escapees and North Korean human rights organizations based in South Korea. Please stop being so soft on the tyrannical North Korean regime.”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는 “지금은 한국 정부가 (북한 인권을) 못 본 척할 때가 아니다”라며 “한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지하는 나라에 포함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 “Now is not the time for Seoul to look the other way. Rather, I hope that the ROK will stand up and be counted in support of human rights and human dignity.”
숄티 대표는 한국이 2년 연속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참여하지 않은 데 대해 우려한다며 “한국은 유엔에서 모든 북한인의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움직임에 동참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직무유기이자 비무장지대(DMZ) 남쪽이 아니라 북쪽에서 태어난 것이 유일한 불행인 사람들에 대한 배신”이라는 지적입니다.
[수잔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 “I do have a concern because of what has happened in the past two years. The Republic of Korea should be taking the lead at the United Nations to speak out for the human rights for all Korean people. It is a gross dereliction of duty and a betrayal of Koreans whose only misfortune was to be born North of the DMZ rather than South of the DMZ to speak out on their behalf.”
앞서 조현 유엔주재 한국 대표부 대사는 14일 국정감사에서 “결국 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안국에서 빠지고 안 빠지고는) 큰 차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워싱턴에서는 인권과 자유를 무엇보다 강조해온 현 한국 정부가 유독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선 줄곧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왔다는 비판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런 기류가 수면 아래 논의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정책에 반영돼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는 기관과 인사에 실질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지난 2018년 6월 ‘비용 절감’을 이유로 북한인권재단을 설립하기 위해 마련했던 사무실 폐쇄를 결정했습니다. 또한, 북한인권법에 따라 법무부 직속기관으로 신설된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원래 정부과천청사에 있었던 것이 경기도 용인 법무연수원 분원으로 이전했고 검사 정원도 4명에서 2명으로 줄였습니다.
미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반도 문제 당사자가 북한 인권 문제에 눈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진보적 행정부 아래 한국이 북한의 인권 침해와 도발적 행동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꺼려왔다”고 주장했습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Under progressive administrations, South Korea has been reluctant to criticize North Korean human rights violations as well as Pyongyang's threatening behavior. Earlier this year, when Pyongyang demanded that Seoul prevent activist groups from sending anti-regime leaflets, the Moon Jae-in administration quickly capitulated by declaring that the leaflets were “harmful to national security.”
특히 “문재인 행정부는 앞서도 대북 전단을 ‘국가 안보에 위해를 끼치는 것’으로 선포함으로써 김정은 정권을 겨냥한 대북 전단 살포를 막아달라는 북한의 요구에 재빨리 굴복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은 굉장히 중요하고 북한도 보편적 인권의 길로 나가야 한다”면서도 “인권은 국제적으로 압박한다고 해서 인권 증진의 효과가 바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숄티 대표는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진전된 인식은 마이클 커비 전 호주 연방대법원 판사가 이끌었던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와 그 회원들의 커다란 노력 때문에 2014년 절정에 도달했다”며 이 같은 인식을 반박했습니다.
[수잔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 “Tremendous progress was made in recognizing the human rights situation in North Korea which reached its height in 2014 because of the great work of the UN COI and its members led by Justice Michael Kirby.”
그러면서 “김정은 정권이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지르고 자국민의 인권을 매일 심각하게 유린하고 있는 때에 특히 한국이 어떻게 북한인들에게 등을 돌릴 수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수잔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 “How can we turn our backs on the people of North Korea at this time especially South Korea - when it is indisputable that the Kim regime is committing crimes against humanity and gross violations of human rights against Korean men, women and children every day that have no comparison to any other nation?”
특히, 올해는 한국 공무원 피살 사건이 일어난 만큼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북한의 인권 실태와 결부시켜 유엔에서 강력한 항의와 비판을 제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지난달 서해상에서 발생한 북한군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살 사건은 유엔에도 공식 보고됐습니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무방비 상태의 한국 공무원을 살해하고 시신을 태운 것은 북한 정권의 근본적인 잔혹성을 일깨워주는 충격적인 일”이라며, “북한은 이와 같은 살인을 저지르면서 한국과 한국민에 대한 경멸을 보여준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 “North Korea's murder of a defenseless South Korean official and its burning of his body was a shocking reminder of the fundamental brutality of the Pyongyang regime. In carrying out this killing, Pyongyang demonstrated its contempt for South Korea and its people.”
클링너 연구원은 더 나아가 “문재인 행정부는 한국민이 북한 정권에 의해 살해당한 뒤에도 북한에 경제적 혜택을 계속 제공하려고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The Moon administration continues to push for offering economic benefits to the North, even after the regime killed a South Korean citizen.”
앞서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23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 원격회의에서 “최근 북한군에게 살해당하고 시신이 불태워진 한국 공무원 사건은 민간인을 자의적으로 살해한 것이며 국제 인권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이달 중순 유엔총회에 제출한 북한인권 보고서에선 “북한은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유가족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이처럼 한국 정부가 인권 실태 등 민감한 북한 관련 사안을 건드리지 않아도 북한의 행동엔 변함이 없으며 오히려 도발을 더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김정은 정권이 저지르는 인류에 대한 범죄를 무시한다고 남북 간 이해와 화해가 증진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한국이 하려는 선택이 평화 통일이든 평화적 공존이든, 북한에 사는 같은 동족의 인권을 무시하고 김정은 정권의 범죄를 감춰준다고 긍정적인 결과를 유도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레그 스칼라튜 HRNK 사무총장] “Improved inter-Korean understanding and reconciliation can't be achieved if you simply ignore the crimes against humanity committed by the Kim regime. Ignoring the human rights of your fellow Koreans living in the north and covering up the crimes of the Kim regime will not be conducive to a positive outcome, whether your scenario of choice is peaceful unification or peaceful co-existence.
클링너 연구원도 “한국 정부가 인권 운동가들과 탈북민들의 대북 전단 살포를 단속하고 대북전단금지법안 제정을 추진했지만, 그런 회유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군사 행동을 위협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Police then prevented South Korean groups and North Korean defectors from launching balloons carrying leaflets, rice, and Bibles. Seoul acknowledged that the activists were exercising their right to free speech, but vowed to submit legislation to “crack down” on the leaflet flights. Despite these conciliatory efforts, North Korea blew up the inter-Korean liaison office and threatened military actions.”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한국이 북한 인권 문제에 적극적이고 같은 생각을 하는 유엔 회원국 그룹에 다시 합류해야 한다”며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참여하는 것이 그 첫 단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레그 스칼라튜 HRNK 사무총장] “Please rejoin the group of like-minded UN member states that have actively promoted North Korean human rights initiatives at the UN. The first step will be co-sponsoring the upcoming UNGA resolution.”
북한인권결의안은 이달 말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 상정돼 11월 중순께 채택된 뒤, 12월 중순쯤 본회의에서 최종 채택될 전망입니다.
VOA 뉴스 백성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