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연초부터 혈맹관계인 중국을 푸대접하고 러시아를 우대하는 차별적인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 새 대북 제재 결의에 적극 동참하려는 중국 측 움직임에 대한 불만을 담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관영 라디오 매체인 `조선중앙방송'은 지난 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신년사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외국 정상의 신년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보도한 겁니다.
푸틴 대통령의 신년사는 지난 3일자 `노동신문' 6면에도 실렸습니다.
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신년사는 이보다 하루 뒤인 4일 `조선중앙방송'에서 마하 와치랄롱꼰 태국 국왕과 틴 초 미얀마 대통령, 제이컵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등 다른 나라 정상들과 함께 보도됐습니다.
`조선중앙방송'이 소개한 신년사 분량도 푸틴 대통령은 485자였지만 시 주석은 178자로 절반도 안됐습니다.
이에 앞서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도 지난달 31일 기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연하장을 보낸 각국 지도자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러시아를 중국보다 먼저 호명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새해에 즈음해 여러 나라 국가수반들과 정당 지도자들, 각계 인사들이 연하장을 보내왔다며 러시아연방 대통령,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라오스인민민주주의공화국 주석 등의 순으로 이름없이 직책만 언급했습니다.
북한과 중국의 오래된 혈맹관계를 감안할 대 북한 당국의 중국 최고 지도자에 대한 이런 푸대접은 이례적입니다.
북한이 연초부터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5차 핵실험에 반발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새 대북 제재 결의를 채택한 데 호응해 중국 당국이 지난달 북한산 석탄 수입의 일시 중단 조치를 내린 데 따른 불만이라는 관측입니다.
동국대 북한학과 고유환 교수입니다.
[녹취: 고유환 교수 / 동국대 북한학과] “최근에 중국이 미국 등과 함께 제재 결의에 동참하고 또 민생과 관련한 부분까지 추가 제재에 동의하는 그런 움직임들에 대해서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시한 것으로 봐야겠죠.”
혈맹관계를 과시했던 북-중 관계는 김정은 정권 들어선 이후 꾸준히 나빠졌습니다. 지난 2013년 12월 김 위원장의 고모부이자 친중파였던 장성택의 처형, 그리고 김 위원장의 연이은 핵실험 감행이 이유였습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7차 노동당 대회 개회사에서 당과 인민이 제국주의 연합세력과 단독으로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제국주의 연합세력이라는 표현은 유엔의 북 핵 개발 저지에 참여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었습니다.
반면 중국과 관계가 멀어진 대신 러시아와의 교류를 늘리면서 의도적으로 러시아를 우대함으로써 중국을 자극하는 외교전략을 펴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한국 민간 연구기관인 매봉통일연구소 남광규 소장입니다.
[녹취: 남광규 소장 / 매봉통일연구소]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지 않게 할 수 있는, 러시아를 활용한 일종의 중국 견제로 볼 수 있고 이는 과거 북한의 러시아 중국 사이에서 자주 보여온 외교 양태로 볼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경제 군사적 대중 의존도를 감안할 때 중국과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나쁜 수준으로까지 몰고 갈 가능성은 적게 보고 있습니다.
향후 북-중 관계에 영향을 줄 변수로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새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꼽았습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병광 박사입니다.
[녹취: 박병광 박사 / 한국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트럼프가 등장하면서 중국에 대해서 압박정책을 펼치고 또 미국 차기 행정부가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쪽으로 가게 되면 북한의 필요성 보다는 중국의 북한에 대한 필요성이 증대될 테니까 중국은 어쨌든 북한을 좀 더 끌어안으려고 할 겁니다.”
동국대 북한학과 고유환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도발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분명하게 보낸다면 북한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북한의 태도가 바뀐다면 중국도 북한에 유화적인 자세를 보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