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곳곳의 다양한 모습과 진솔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난민들이 가장 많이 정착하는 도시 중에 하나인 미국 중서부 노스다코타주의 파고시. 난민들이 많은 만큼 난민 출신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방과후 프로그램도 진행되고 있는데요. 학생들에게 공부와 미국 생활 적응을 돕는 프로그램도 있지만, 일부 난민 학생들은 방과후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사회에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 어려운 이웃을 돕는 방과후 프로그램”
노스다코타주의 겨울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추운 날씨지만, 여학생 두 명이 열심히 짐을 날라 건물 안으로 들입니다. 네팔에서 온 16살 푸자 체트리 양과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온 18살 마리아 투야 양. 입에선 하얀 김이 나오고, 낑낑대는 소리가 절로 나지만, 무거운 상자를 나르고 정리하는 모습이 꽤나 능숙한데요. 이들 소녀가 상자에서 꺼낸 것은 바로, 갖가지 통조림과 즉석식품 같은 식료품입니다.
[녹취: 마리아 투야] “사실 우리 집 냉장고를 열어 봐도 먹을 게 거의 없지만, 저보다 더 필요한 분들이 있으니까요.”
마리아 양, 자기 집에 먹을 것도 없는데, 도대체 이런 식료품을 누구를 준다는 걸까요?
[녹취: 푸자 체트리] “음식을 받아 나가시는 분들의 얼굴에서 기쁨과 감사함을 읽을 수 있어요. 음식을 받으러 오실 때쯤이면 집에 먹을 게 거의 다 떨어지셨을 때니까요.”
푸자 양의 해맑은 미소에 음식을 받아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한결 밝아지는데요. 식료품을 받아가는 사람들은 바로 도움이 필요한 파고 지역 주민들입니다.
[녹취: 마리아 투야] “4인 가족 이상이면 한 품목당 2가지씩 가져가도 돼요.”
마리아 양과 푸자 양은 ‘레거시어린이재단’이라는 곳에서 운영하는 방과후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레거시어린이재단은 빈곤 계층 어린이나, 난민 출신 어린이 등 어려움에 처한 학생들이 고등학교까지 졸업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녹취: 메리 진 딘 대표] “난민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 중 하나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겁니다. 생김새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영어를 해도 특유한 억양이 있으니까요. 또 아이들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하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고충도 털어놓습니다.”
메리 진 딘 대표의 말에 푸자 양도 동의합니다.
[녹취: 푸자 체트리] “나이가 맞는 학년에 진급하지 못하니까 친구들이 저를 이상하게 바라봐요. 거기다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일반 수업에서 제외될 때도 있는데 그럴 땐 정말 상처가 돼요”
푸자 양은 하지만 재단의 활동이 도움이 됐다며 눈물까지 보입니다.
레거시어린이재단은 영어와 수학 과외, 언어 치료 등 교육에서부터 이렇게 지역 사회를 돕는 프로그램까지 진행하고 있는데요. 재단의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푸자 양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죠.
[녹취: 푸자 체트리 “솔직히, 재단의 프로그램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저도 있을 수 없을 거예요. 미국에 와서 무엇을 할지, 어떻게 될지 전혀 몰랐거든요.”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푸자 양 옆에서 마리아 양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녹취: 마리아] “레거시 재단 프로그램을 통해 학교생활이나 공부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무엇보다 자신감을 갖게 됐고 또 지도자의 자질을 배우게 돼서 정말 기뻐요.”
그리고 이렇게 도움과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이제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식료품을 나누는 봉사는 물론, 레거시 프로그램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지역 노숙자 센터를 찾아가 따뜻한 음식과 담요를 나누는 봉사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고 하네요.
[녹취: 푸자 체트리] “제가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고 싶고 또 누군가의 삶이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친절을 베푸는 작은 행동 하나가 큰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거든요.”
자그마한 체구지만, 그 누구보다 넉넉한 마음으로 지역 사회를 섬기는 푸자 양과 마리아 양. 이들 덕분에 노스다코타의 춥고 긴 겨울이 조금 더 따뜻해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음악가들을 위한 치료공간, 음악 의학 센터”
운동선수들은 운동을 하면서 다치는 경우가 빈번하죠? 그렇다 보니 선수들의 부상을 치료하는 스포츠 의학 분야가 발달했는데요. 악기를 다루는 음악가들도 사실 운동선수처럼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장시간 연습으로 인해 같은 근육을 반복해서 또 과도하게 쓰기 때문이죠. 의과대학으로 유명한 존스홉킨스대학교는 본 대학 산하 ‘피바디음악원’ 학생들을 위해 ‘음악의학센터(Center for Music and Medicine)’를 열었다고 하는데요. 음악가들을 위한 전문치료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확인해 보죠.
[현장음: 피바디음악원 연습실]
피바디음악원 1학년에 재학 중인 첼시 스트레이어 양은 더블베이스 전공입니다. 첼시 양은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더블베이스 앞에 앉아 연습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녹취: 첼시 스트레이어] “저는 하루에 3시간 정도 악기 연습을 합니다. 거기다 합주나 오케스트라 연습도 매일 한두 시간씩 해요.”
이렇게 장시간 그리고 반복되는 연습으로 첼시 양은 고통에 시달리게 됐다고 합니다.
[녹취: 첼시 스트레이어] “팔에 통증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팔목이 아픈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손의 같은 자리에 계속 멍이 들고 있어요.”
첼시 양의 지도 교수는 첼시 양에게 학교 안에 있는 음악의학센터를 찾을 것을 권했습니다.
음악의학센터의 공동설립자인 세럽 바슈텝그레이 박사는 음악가들은 힘줄의 염증인 건염에 걸리거나 근육이 접질리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고 했습니다.
[녹취: 세럽 바슈텝그레이] “악기를 다루는 음악가들의 경우 5명 중 4명은 연주 활동 중 적어도 1번은 부상을 입습니다. 그리고 4명 중 1명은 부상을 회복한 후 다시 악기를 연주하지만, 2명은 아파도 무시하고 계속 연주 활동을 하는데요. 결국 만성적인 문제를 달고 살게 되죠. 그리고 나머지 1명은 결국 연주 활동을 못 하게 됩니다.”
의사인 바슈텝그레이 박사는 기타 연주자이기도 한데요. 그렇다 보니 악기 연주가 주는 기쁨과 거기에 동반되는 고통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녹취: 세럽 바슈텝그레이] “기타의 운지법대로 손가락을 움직이면 신경이 눌리는 지점이 있습니다. 큰 압력을 받는 데가 있어요.”
피바디 음악원의 새라 후버 부원장은 학교 안에 마련된 치료 센터가 학생들의 생각을 바꾸고 있다고 했습니다.
[녹취: 새라 후버] “학생들이 연주하면서 고통을 느껴도 그냥 참기만 했는데, 이젠 그걸 털어놓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걱정이 될 땐 지도 교수와 상의도 할 수 있고요. 학교 안에 이렇게 치료 시설이 있는데, 더는 그 고통을 감출 필요가 없는 거죠.”
[녹취: 첼시 스트레이어] “악기 연주를 하면서 휴식이 필요하고 또 휴식 시간을 가져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휴식을 통해 더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현재 존스홉킨스대학의 생체공학과 신경학 학자들은 일명 ‘스마트 기타’를 개발 중입니다. 기타에 센서가 달려있어서 기타 연주자의 팔과 손가락 부위에 얼마만큼의 압력을 받는지 측정할 수 있는 기타라고 하네요.
[녹취: 세럽 바슈텝그레이] “전통적인 음악가들의 훈련 방식에 과학적인 교수법을 접목하는 것,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무한 반복을 하지 않고도 특정한 기술을 좀 더 빨리 습득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으니까요.”
바슈텝그레이 박사는 이처럼 과학을 기반으로 한 훈련과 치료를 통해 연주자들이 고통 없이 악기 연주를 맘껏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네,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다음 주에는 미국의 또 다른 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와 함께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