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곳곳의 다양한 모습과 진솔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입니다. 디스크자키, 줄여서 DJ라고 부르는 직업이 있습니다. 방송국에서 음악을 재생해 청취자에게 들려주는 사람도 DJ라고 하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술을 먹고 춤추는 장소인 ‘클럽’에서 흥을 돋우거나 사람들이 춤을 출 수 있도록 음악을 트는 DJ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미 동부의 대도시 뉴욕에 가면 경찰 제복을 입고 활동하는 DJ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 DJ로 활약하는 뉴욕 경찰관, DJ ACE(에이스)”
턴테이블, 전축 재생 장치 앞에 한 DJ가 서 있습니다. LP판 위에 손을 얹고 앞으로 뒤로 돌려가며 멋진 힙합 음악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이 DJ는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뉴욕 경찰 제복을 입고 있다는 겁니다. DJ 에이스(Ace)로 불리는 이 사람, 뉴욕 경찰국 소속의 아쿠 로즈 경위입니다.
로즈 씨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5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녹취: 아쿠 로즈] “제가 어릴 때 저희 어머니가 작은 스테레오 오디오를 갖고 계셨어요. 그 오디오 제일 위엔 LP판이 돌아가는 전축이 있었죠. 선반 위에 올려놓은 그 전축을 작동해보려고 저는 늘 까치발을 하고는 전축 앞에 서 있었습니다. 힙합 음악 LP판들을 가지고 라디오에서 들은 음악을 흉내 내기도 했고요.”
로즈 씨의 이런 음악에 대한 사랑은 해군으로 복무하는 5년 동안에도, 뉴욕시 경찰로 일한 지난 20년의 세월 속에서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로즈 씨는 경찰관들이 지역 청소년들과 DJ 실력을 겨루는 ‘경찰-청소년 DJ 대회(Cops-and-kids DJ battle)’에 참여했는데요. 뉴욕시 경찰이 지역사회 봉사 활동의 일환으로 마련한 행사였죠. 그런데 로즈 경위는 이 행사를 통해 DJ 일을 단순한 취미 이상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합니다.
[녹취: 아쿠 로즈] “ ‘경찰-청소년 DJ 대회’는 경찰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대회였습니다. 하지만 경찰관들도 DJ를 한다는 걸 보여주는 기회가 됐죠. 대회 장면을 찍은 동영상이 인터넷상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후 저는 좀 더 많은 지역 행사에 DJ로 참여하게 됐는데요. 물론 경찰 제복을 입은 채 DJ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로즈 씨는 평범한 뉴욕 경찰관에서 경찰 제복을 입은 DJ, ‘DJ 에이스’로 거듭나게 됐습니다. 한 달에 적어도 두 번은 지역 쇼핑센터나 스포츠 행사, 길거리에서 DJ 실력을 뽐내고 있는데요. DJ에이스는 이제 어딜 가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유명인사가 됐습니다.
쇼핑센터에 양말을 사러 왔다가 경찰 DJ의 공연을 보게 되다니, 너무 놀랍다는 반응부터 우리 지역 사회에 이렇게 DJ를 하는 경찰이 있다는 게 정말 좋고 멋지다는 반응까지, 시민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긍정적입니다.
NYPD라고 불리는 뉴욕 경찰이 최우선으로 두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지역사회 봉사 프로그램인데요. 봉사 프로그램의 일환인 DJ 대회는 경찰과 지역 젊은이들 간의 교류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특히 DJ로 활동하는 경찰의 모습은 경찰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도 바꾸고 있다고 하네요.
[녹취: 아쿠 로즈] “어떤 사람은 제가 진짜 경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경찰 흉내를 내는 DJ로 생각하기도 하죠. 제복을 입고 DJ를 하는 모습을 보고 나면 사람들이 훨씬 절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게 편하게 말도 걸고, 이런저런 것들을 묻기도 하고요. 저 또한 시민들에게 말합니다. 저만 이런 게 아니라 99.9%의 경찰들이 다 여러분과 똑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라고요.”
로즈 씨는 DJ 일이 경찰의 치안 활동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무장한 범인과 대치하는 상황에서도 DJ 활동 경험이 빛을 발한 적이 있다고 하네요.
[녹취: 아쿠 로즈] “저와 대치를 하던 사람이 제가 DJ에이스라는 걸 알아보곤 마음을 가라앉히더라고요. 저는 그 사람에게 손에 든 칼을 내려놓을 걸 요청했고 그 사람은 제 말에 순순히 응했습니다. 이후 우리 경찰국은 그 사람을 병원에 보내 치료를 받게 했고요. 그 사람은 결국 노숙자 쉼터에서 나오게 됐어요. 지금은 결혼해서 잘살고 있습니다.”
로즈 씨는 인터넷 소셜미디어인 인스타그램 계정도 갖고 있는데요. 여기에 자신이 믹싱한 곡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DJ 에이스를 찾는 사람 중엔 동료 경찰도 있지만, 로즈 씨의 음악과 열정에 반한 사람들도 있는데요. 경찰 제복을 입은 DJ, DJ 에이스를 찾아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팬들이 찾고 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 미국 커피 문화를 주도하는 미 서부 시애틀”
최근 미국 최대 커피전문점인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전 회장이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고려중이라고 밝혀 화제가 됐습니다. 스타벅스는 미국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점인데요. 워싱턴주 시애틀에 스타벅스 1호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애틀에선 스타벅스, 한 회사만 탄생한 건 아니라고 합니다. 새로운 커피, 실험적인 커피가 탄생하는 곳, 미국의 커피 문화를 선도하는 곳이 바로 시애틀이라고 하네요.
시애틀에서 요즘 가장 주목받는 커피는 슬로우(slow) 커피입니다. 이름 그대로 커피를 천천히 내리는 건데요. 커피 한잔을 내리는 데 5분에서 길게는 15분까지 걸립니다.
가장 전통적인 방식은 ‘사이폰’이라고 부르는 진공흡입식입니다. 호리병 모양의 유리 기구를 통해 증기압과 진공흡입원리를 이용해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이죠. ‘시애틀커피웍스(Seattle Coffee Works)’의 커피 제조사 제이크 도너히 씨는 천천히 내리는 커피 맛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녹취: 제이크 도너히] “이렇게 진공흡입식으로 커피를 뽑아내면 거름 판을 두 번 거치기 때문에 커피 맛이 아주 깔끔합니다. 기름기나 침전물도 전혀 없고요. 끝 맛이 달콤하고 약간 신맛이 나는데요. 과일을 먹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이런 슬로우 커피는 잔당 12달러 정도 합니다. 커피 한잔치고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시애틀에선 이런 커피가 사치가 아니라 일상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시애틀 사람들이 커피를 좋아한다는 말이겠죠?
[녹취: 제이크 도너히] “왜 시애틀 사람들이 커피를 좋아하는지, 저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아마 날씨와 관련이 있지 않나 싶어요. 시애틀은 1년 중 9개월은 비가 내리고 어두침침하거든요. 그렇다 보니 뭔가 기운을 주는 게 필요하고 그게 바로 커피가 아닐까 싶고요. 아니면 사람들이 많이 피곤해서 커피를 많이 마시는 것일 수도 있겠죠. 저만 해도 커피를 정말 많이 마셔요. 하루에 4~5잔 정도는 늘 마십니다.”
이렇게 커피를 많이 마시고, 커피에 대한 애정이 크다 보니 커피 산업에 뛰어드는 사람도 많습니다. ‘시애틀커피웍스’를 창업한 피포 부이 씨는 역사학과 인류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딴 직후 커피계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부이 씨는 미국에서 품질 나쁜 커피가 고정관념처럼 자리 잡았고, 또 사람들이 습관처럼 커피점에서 커피를 사가면서도 이 커피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 기원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고 합니다.
[녹취: 피포 부이] “미국에선 요즘 소비를 할 때 이왕이면 가치가 있는 데 돈을 쓰려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커피를 사 마실 때도 마찬가지이고요.”
좀 더 가치 있는 커피 문화를 만들기 위해 부이 씨와 남편은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는 커피 제조사들을 남아메리카의 커피 농장에 보낸다고 합니다. 거기서 커피가 어떻게 자라는지, 커피콩을 어떻게 채집하는지 직접 보게 하고 또 커피콩을 다루는 법을 배우도록 한다는 겁니다.
시애틀의 많은 커피점 운영자들이 부이 씨의 이런 노력과 생각에 동조하고 있다는데요. 시애틀에선 이렇듯 미국의 커피문화를 바꿀 새로운 커피 혁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네,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다음 주에는 미국의 또 다른 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와 함께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