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곳곳의 다양한 모습과 진솔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김현숙입니다. 한인 2세 미국인 감독이 만든 영화 한 편이 요즘 미국에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미나리’인데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채소 이름이 바로 이 영화의 제목입니다. 어디서나 잘 자라고, 강한 생명력을 가진 미나리처럼 젊은 한국인 이민자 부부가 낯선 땅 미국에 정착해 뿌리를 내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 미나리는 지난 주 권위 있는 영화상인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 부문을 수상했는데요. 오는 4월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주요 상을 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이민자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담은 영화 '미나리'"
1980년대 미 남부 아칸소주. 잡초 투성이의 불모지 ‘오자크(Ozarks)’에 이동식 주택이 덩그러니 서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한인 이민자 제이컵은 농장을 일구겠다는 꿈을 안고 땅을 구매했고, 아내와 어린 두 자녀와 함께 시골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됩니다.
아내인 모니카는 남편의 뜻을 따라 캘리포니아를 떠나 시골로 오긴 했지만, 도심과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사는 것이 편치 않은데요. 하지만 아내로서, 엄마로서 역할을 다하며 아칸소에 자리 잡기 위해 노력합니다.
부부는 공장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면서 동시에 농장을 일구기 시작하는데요. 외딴곳에서 앤과 데이비드, 두 자녀를 돌보기는 쉽지 않았고, 특히 데이비드는 선천적으로 심장이 좋지 않았던 터라 한국에 있는 아이들의 외할머니, 순자를 데려오게 됩니다.
순자 역을 맡은 배우 윤여정 씨는 VOA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맡은 한국 할머니 역할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녹취: 윤여정]
순자는 일하러 가야 하는 자식들을 돕기 위해 손자들을 돌보는 할머니라는 건데요. 그리스나 한국, 미국 등 전 세계 모든 나라 어머니들이 하는 보편적인 일로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윤여정 씨는 다정하면서도 때로는 사고 치는 할머니 순자 역할을 창조하는 데 있어 감독이 완전한 자유를 줬다고 했는데요.
[녹취: 윤여정]
윤여정 씨는 누구나 할머니가 있지 않냐며,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자신의 증조할머니를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말했습니다.
영화에서 할머니 순자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손자들과 문화 차이로 쉽게 동화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자란 한인 2세인 리 아이작 정 감독은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고 했는데요. 하지만, 영화 ‘미나리’는 이민자들의 경험 전반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녹취: 리 아이작 정]
영화를 본 관객들이 다들 “당신의 이야기에서 나의 이야기를 봤다”라고 말한다는 건데요. 정 감독은 이민자들은 누구인가, 남부 사람들은 어떤가? 신앙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등 수많은 질문과 관련해 인간다움을 되찾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습니다.
정 감독은 영화 ‘미나리’가 한국 사람들이 한국계 미국인들을 좀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리 아이작 정]
미국에 온 사람들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으레 선입견을 품는다는 건데요. 첫째, 그들은 한국을 떠났고 둘째, 많은 이들이 성공을 이뤘고, 따라서 이민자의 삶은 꽤 쉬울 거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반면 미국에 정착한 사람들은 그들이 이민 와서 겪은 시련을 한국 사람들이 몰라준다고 느낀다는 겁니다.
영화 ‘미나리’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그리고 영상미까지 갖춰 오스카상 후보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특히 할머니 순자 역의 배우 윤여정 씨가 관심을 끌고 있는데요. 윤여정 씨는 봉준호 감독 때문에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봉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지난해 오스카 시상식에서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개 부문 상을 휩쓸었는데요. 그 때문에 더 주목받는 것 같다는 겁니다.
[녹취: 윤여정]
윤여정 씨는 “봉준호 감독 때문에 나도 오스카 후보에 오르거나 하지 않을까, 다들 기대한다”며 봉 감독을 원망했다고 말했는데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 본인은 오스카상 후보로 오르는 것조차 생각해본 일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영화 ‘미나리’는 아시아 이민자 가정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영화 관객과 평론가들은 이 영화는 미국의 이야기이자 오늘의 미국을 만든 모든 이민자의 이야기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수많은 장난감을 탄생시킨 장난감 발명왕"
아이들이 갖고 노는 다양한 종류의 장난감들. 혹시 누가 이 장난감을 만들었는지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미국에는 무려 70년 동안 800여 가지의 장난감을 발명한 장난감 발명왕이 있습니다. 올해 99살로 시카고에서 활동 중인 에디 골드파브 씨인데요. 아이들이 많이 가지고 노는 비눗방울 총, 장난감 경주용 차도 골그파브 씨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골드파브 씨는 지난 2003년, ‘장난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는데요. 다름 아닌 장난감 발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녹취: 에디 골드파브]
처음엔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발명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했고, 자금도 떨어지면서 한발 뒤로 물러나야 하는 때가 왔다는데요. 적은 자본으로도 발명할 수 있는 것이 장난감일 거란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장난감 만들기를 시작했다는 겁니다.
골드파브 씨는 1921년, 시카고에서 폴란드와 루마니아 출신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에서 복무하면서 첫 장난감 발명품을 내놓았는데요. 자동으로 움직이는 치아, 일명 ‘야키티약 이빨’이었습니다.
1949년, 뉴욕에서 열린 북미 장난감 박람회에서 선보인 야키티약 이빨은 큰 성공을 거뒀고 본격적인 장난감 발명가로서 활동이 시작됩니다.
골드파브 씨의 딸 린 골드파브 씨는 영화감독으로 아버지의 삶을 영화로 만들기도 했는데요.
[녹취: 린 골드파브]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만든 장난감을 항상 시험해보고 또 가지고 노는 게 좋았다는 린 씨. 하지만 발명가의 집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가 새어나가지 않게 지키는 거였다는데요. 친구들에게 아빠가 어떤 장난감을 만들었는지 절대 말하면 안 됐다고 합니다.
1985년, 골드파브 씨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비디오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곧 마음을 바꿔 진짜 장난감 만들기에 집중했습니다.
[녹취: 에디 골드파브]
어린아이들에겐 성장발달을 도울 장난감이 필요하다는 건데요.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것처럼,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런 활동이 교육의 일환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골드파브 씨는 요즘 아이들 사이에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이용한 게임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에 요동하지 않는다고 했는데요. 코로나 사태로 사람들이 집에 장시간 머물러야 할 때, 장난감은 사람들은 하나로 만들어 주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캐머론 쿠바스작]
초등학생인 캐머론 쿠바스작 군 역시 요즘 가장 좋아하는 게임이 ‘플렁크(Plunk)’라고 했는데요. 부모님도 어릴 때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으로,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부모님과 플렁크를 하면서 보낸다고 했습니다.
플렁크는 구슬이 들어 있는 원통 중간에 긴 막대기들을 집어넣는 게임이죠.
골드파브 씨는 아직도 장난감 세계에선 창조할 것이 무궁무진하다며 발명을 멈출 계획이 없다고 했는데요.
[녹취: 에디 골드파브]
창조적인 일을 하면 뇌에 자극을 주고, 아직도 아이디어가 샘솟는다는 골드파브 씨. 100살을 앞둔 장난감 발명왕에게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했습니다.
네,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다음 주에는 미국의 또 다른 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와 함께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