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한 연합훈련에 반발해 일방적으로 단절했던 남북 통신연락선을 4일 복원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토대가 마련됐다고 평가했지만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선결조건을 달아 향후 남북대화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통일부는 “4일 오전 9시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개시통화가 이뤄지면서 남북 통신연락선이 복원됐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군 당국도 이날 동·서해 지구 군 통신선에서 남북간 정상적으로 통화가 이뤄졌다고 전했습니다.
국방부에 따르면 광케이블을 통한 남북 군사당국 간 유선통화와 문서교환용 팩스 송·수신 등 모든 기능이 정상적으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또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이용한 서해 우발충돌 방지를 위한 불법조업 어선에 대한 정보 교환도 정상적으로 진행됐습니다.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군 통신선을 통해 한국 측의 통화 시도에 응답한 건 55일 만입니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9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북 공동연락선 복원 의사를 밝힌 지 닷새 만입니다.
북한은 지난 7월 27일 13개월 만에 남북 통신연락선을 전격 복원했지만 미-한 연합훈련 사전연습 격인 위기관리 참모훈련(CMST)이 시작된 지난 8월 10일 오후부터 다시 한국 측의 통화 시도에 응답하지 않아 왔습니다.
이종주 한국 통일부 대변인은 “한반도 정세 안정과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토대가 마련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남북 간 통신연락선의 안정적 운영을 통해 조속히 대화를 재개해 남북 합의 이행 등 남북관계 회복 문제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실질적 논의를 시작하고, 이를 진전시켜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국방부는 “군 통신선은 남북 군사당국 간 소통을 위한 기본 수단으로 필요 시 다양한 전통문 교환을 통해 우발적인 충돌 방지 등에 기여해 왔다”며 “남북 군사당국 간 군 통신선 복구가 앞으로 한반도의 실질적 군사적 긴장 완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은 4일 통신연락선 복원을 보도하면서 한국 정부를 향해 “통신연락선의 재가동 의미를 깊이 새기고 남북관계를 수습하며 앞으로의 밝은 전도를 열어나가는 데 선결되어야 할 중대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중대 과제’란 최근 김정은 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등이 반복적으로 강조한 ‘이중기준’과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의미한 것으로 보입니다.
향후 남북 간 대화와 관계 진전을 위한 조건을 거듭 언급한 셈인데, 해당 사항들은 한국 정부가 수용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정의용 한국 외교부 장관은 앞서 지난 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여정 부부장이 대북 적대정책 철회 등을 요구한 데 대해 “일방적 주장으로, 한국과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때문에 통신연락선 복원에도 남북관계가 바로 급물살을 타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북한 측의 조건으로 미뤄 북한이 곧바로 대화에 나서겠다는 신호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여전히 대화 재개를 놓고 기싸움을 벌이는 국면으로 진단했습니다.
김 전 차관은 북한이 통신연락선 복원을 통해 자신들의 대화 의지를 부각시키면서 자위권 강화를 명분으로 한 무력 증강 활동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커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북한은 파국으로 가진 않되 여전히 자기들이 공정성 문제를 내세우고 있고 그래서 밀리진 않겠다, 회담 탁자에 앉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화를 위한 힘겨루기이기 때문에 이런 과정에서 자기들이 필요로 하는 군사력 강화 활동을 하겠다는 그런 실리적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진정성은 최근 연이어 행한 신형 미사일 시험발사와 같은 도발 행위의 지속 여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이중기준’ 철회를 거듭 강조한 점으로 미뤄 북한은 도발을 병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북한의 의도는 대화 보다는 한국으로부터 자신들의 핵 보유를 인정받고, 대북 제재 완화 등을 둘러싼 미-한 공조의 균열을 유도하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남한과의 관계를 활용해서, 어떻게 보면 문재인 정부의 일방적인 관여정책을 최대한 이용해서 자신들이 필요한 것들을 얻어 내는 그런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 중 핵심은 역시 지난 9월부터 본격화한 이중잣대겠죠. 이중잣대라는 것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하라, 국제법이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문제 제기를 하지 않으면 그게 일상화되는 것이고 그게 규범화되는 거지 않습니까.”
북한이 중대과제 선결을 언급했지만 한국과의 대화 자체를 거부하진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지난 7월 말에 이어 이번에 다시 김 위원장이 직접 통신연락선 복원 의지를 밝힌 것은 한국과의 대화 의지를 보여준 행동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또 당분간은 연합훈련 같은 걸림돌도 없어 남북 간 대화가 이뤄질 기본 여건이 갖춰진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조 박사는 다만 북한은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위력 강화라는 명분으로 신형 무기 시험을 이어갈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한이 정말로 이중기준이나 적대시 정책을 선결조건으로 제시했다고 하면 (연락선을) 열지 않았겠죠. 일단은 대화국면으로 복귀해서 그리고 그 대화를 통해서 뭔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추진하겠다는 의도로 봐야 되거든요. 양동작전, 한쪽으론 긴장을 고조시키고 한쪽으론 대화하겠다 이런 것으로 보기 보다는 북한 입장에선 일단 대화를 재개하면서 레드라인 내에선 자기들 국방력을 강화하겠다 이렇게 봐야 합니다.”
김진무 숙명여대 국제관계 대학원 교수는 북한이 다목적 포석으로 남북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내부 경제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을 통해 미국과의 협상을 추동하려는 의도로 남북정상회담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을 수 있다는 관측입니다.
또 대통령 선거를 5개월 앞두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대북 협상파가 재집권하도록 문재인 정부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성도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입니다.
[녹취: 김진무 교수] “남북 통신선 개통은 남한과의 대화를 통해서 남북정상회담으로 가는 가교로 만들 수도 있고 또 그 과정에서 남한이 미국에 대한 적극적인 중재를 통해서 미국과 북한의 대화의 장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여러 가지 조건을 만들어갈 수 있는 다목적 포석이 아니겠느냐.”
한편 북한은 이번에 통신연락선을 복원하면서 함정 간 국제상선공통망을 활용한 한국 해군 경비함과의 시험통신에는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