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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외무성 "우크라 사태 미 패권주의 탓" 주장...러시아 약소국 침공엔 침묵


지난 2019년 4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방문에 맞춰 현지 철도역 주변에 양측 국기가 걸려있다. (자료사진)
지난 2019년 4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방문에 맞춰 현지 철도역 주변에 양측 국기가 걸려있다. (자료사진)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미국 등 서방의 패권주의 때문에 빚어졌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대미 공동전선 차원에서 러시아를 두둔하면서도 약소국인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결사항전에 대한 언급은 없어 반제국주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북한이 자기모순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하게 된 근원은 전적으로 다른 나라들에 대한 강권과 전횡을 일삼고 있는 미국과 서방의 패권주의 정책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달 28일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계기로 대러 제재 압박이 강화된 것과 관련해 이같이 답했습니다.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공식 입장을 낸 것은 처음입니다.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과 서방은 법률적인 안전담보를 제공할 데 대한 러시아의 합리적이며 정당한 요구를 무시한 채 한사코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의 동쪽 확대를 추진하면서 공격무기 체계배비 시도까지 노골화하는 등 유럽에서의 안보환경을 체계적으로 파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나토 확장에 따른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러시아의 주장을 되풀이한 겁니다.

외무성 대변인은 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리비아를 폐허로 만들어버린 미국과 서방이 이제 와서 저들이 촉발시킨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주권 존중’과 ‘영토 완정’ 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일방적이고 이중기준적인 정책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북한은 그러나 러시아가 주권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부분과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결사항전에 나서는 과정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대미 공동전선 차원에서 러시아를 두둔하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자신들의 최고 지도이념이자 대외정책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반제국주의와 주체사상에 반하는 러시아의 약소국 침략 행위에 대해선 애써 평가를 피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미국과의 결판을 앞두고 중국, 러시아와의 공조를 튼튼히 해 놓는 게 북한 입장에선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제국주의적 행태를 러시아가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편을 들 수밖에 없는 북한의 고민은 있었다, 다만 북한의 대외정책의 핵심, 주체라는 개념에 어긋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발표할까 하는 고민은 이 외무성 문답의 핵심을 비켜가는 얘기를 통해 다시 한 번 보여줬다고 판단이 됩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북한 대내 매체에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대한 보도가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박형중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과거 ‘아랍의 봄’과 같은 반민주적 체제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 사태에 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외교적인 실리를 위해 러시아 편을 들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항전 의지에 대해선 북한 주민들에게 쉬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선임연구위원] “우크라이나 사태가 지금 진행되는 것을 보면 부당한 외세 개입에 대한 전반적인 주민 항거로 사실상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선 그 부분에 대해선 조심하고 경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한편에선 러시아를 외교적으로 지지하지만 전쟁의 전체적인 내용을 북한 주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당초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단결된 저항과 미국 등 서방 진영의 대폭적인 무기 지원, 전 세계적인 반 푸틴 정서의 확산 등을 타고 장기전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커질수록 다른 권위주의 국가들에 대한 국제 여론도 나빠질 것이라며 이 때문에 미국과의 협상을 염두에 두고 연초부터 잇단 무력시위로 한반도 정세의 긴장을 높여 온 북한에게 편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전 세계에서 자원자들이 우크라이나로 가서 전투하겠다고 할 정도로 지금 권위주의적 푸틴체제의 침공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은 국제법을 위반하는 도발에 대해선 그 어느 때보다도 정서가 강경해요. 그러니까 북한이 만일 도발을 하게 되면 러시아와 똑같은 계열로 취급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북한이 무력시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게 그 공간이 더 작아지는 거죠.”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도 우크라이나의 대러시아 항전은 미국 등 서방의 단결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최근 도발이 단순히 대미 협상을 압박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핵 무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은 행보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미국이 강경하게 나올 경우 북한도 도발의 수위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지금 보면 결국 세력간 힘겨루기가 되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과연 미국이 쉽사리 북한이 원하는 방향으로 협상할까 라는 그런 기대치를 낮추는 상황이 되는 거죠. 그러면 북한 입장에선 더욱 더 고압적인 자세로 한국이나 미국에 대해 요구하는 강도를 낮출 이유가 없는 거죠.”

한편 북한 외무성은 지난달 28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얼마 전 발표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 대해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노골적인 목적을 드러냈다고 비난했습니다.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중 대립 속에서 북-중-러 연대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지속하고 있는 양상입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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