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군의 전술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경고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5일 수도 크이우(러시아명 키예프)에서 진행한 CNN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무기를 쓸지에 관해 "나뿐만이 아니라 온 세계, 모든 나라가 우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진짜 정보가 아닐 수도 있지만, 진실이 될 수 있다"고 영어로 조목조목 강조했습니다.
이어서 "핵과 화학무기에 관해 아무렇지 않게 거론하는 그들(러시아)에게 주민들의 생명 쯤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앞서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러시아군의 전술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한 데 관한 입장을 물은데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지만 (핵무기 사용에) 대비해야 한다"며 "이것은 우크라이나에만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에도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 CIA 국장 "핵 사용 가능성 가볍게 볼 수 없다"
번스 CIA 국장은 러시아가 전술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을 가볍게 볼 수 없다고 전날(14일) 조지아공과대학 강연에서 밝혔습니다.
번스 국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절박감과 군사적 실패가 전술 핵무기 사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번스 국장은 아직 러시아가 실제 핵무기 사용단계를 밟도록 준비하는 징후는 보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CNN은 미국 고위 당국자를 두명을 인용, 14일 침몰한 러시아 순양함 '모스크바'함이 핵무기를 운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은 러시아군이 핵무기와 관련해 특이 동향을 보이는지 주시하는 중입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사흘만인 지난 2월 27일 러시아의 핵전력을 '특별 전투임무 체제'에 돌입시킬 것을 국방장관에게 지시한 바 있습니다. 다음날 러시아 국방부는 관련 명령이 이행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미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연기하며 긴장 조절에 나섰습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지난달 CNN 인터뷰에서 핵무기 사용 여부와 관련해 "우리(러시아)에게는 국가안보개념이 있다"며 "만약 우리 국가의 존재에 관한 위협이라면, 이(핵무기)는 우리 (국가안보)개념에 따라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뒤로도 러시아 주요 당국자들은 핵무기 사용에 관해 여지를 열어뒀습니다.
드미트리 폴랸스키 유엔 주재 러시아 차석대사는 지난달 23일 스카이뉴스 인터뷰에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관한 질문에 "러시아가 계속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위협과 공격을 받는다면, 우리는 핵 보유국이지 않은가, 왜 안되나"라고 반문했습니다.
이어 '(핵무기 사용이) 정당하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를 위협하고 방해하려는 시도 역시 옳지 않다"며 대응 차원에 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핵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러시아)를 상대하려면 당연히 모든 가능성을 계산해야 한다"고 나토를 향해 경고했습니다.
■ 러시아군, 크이우에 미사일 공격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수도 크이우를 겨냥한 공격을 재개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15일 크이우 외곽 바실키우를 포함한 광역 수도권 곳곳에서 전날 밤 폭발음이 들렸으며, 방공 시스템이 가동됐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 국방부도 이날 보도문을 통해, 장거리 함대지 미사일로 크이우 외곽 군사 공장을 타격했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오늘 새벽 '칼리브르' 해상 발사 장거리 정밀미사일로 키예프(크이우) 외곽의 군사시설을 타격했다"면서 "'비자르' 기계공장에 있는 (우크라이나군의) 중·단거리 대공 미사일과 대함 미사일 생산·수리 시설을 파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해당 공장은 '넵튠' 미사일을 만드는 장소로 알려졌습니다. 넵튠은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흑해함대 기함 '모스크바'함을 공격하는데 사용했다고 발표한 기종입니다.
러시아군은 지난달 말 '특별군사작전' 1단계 종료를 선언하고 우크라이나 북부지역에서 지상군을 퇴각한 뒤 크이우 일대 공세를 사실상 중단했으나, 이날 미사일 공격을 통해 재개한 것입니다.
■ 수도권 공세 재개 다짐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15일) 보도문에서 "키예프(크이우)의 민족주의 정권(우크라이나 정부)이 러시아 영토에 대한 테러성 공격과 파괴공작을 수행하는 데 대한 보복으로 키예프(크이우)의 시설에 대한 미사일 공격 횟수와 규모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지난 2월 말 이후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군이 여러 차례 러시아 서부 국경을 넘어 포격이나 공습을 가했다고 주장했습니다.
14일에도 브랸스크주와 벨고로드주 등의 마을이 우크라이나군 헬리콥터 공격을 받아 최소 7명이 부상당했다고 러시아 당국이 발표한 바 있습니다. 부상자 중에는 어린이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 모스크바함 침몰 파장
이런 가운데, 러시아 흑해함대 기함인 '모스크바'함이 침몰한 파장이 이어질 전망입니다.
모스크바함은 지난 13일 큰 폭발에 따른 화재로 파손된 뒤 다음날(14일) 침몰했습니다.
화재 당일 러시아 국방부는 함내 탄약고에서 발생한 단순 사고가 원인이였다고 설명했지만, 막심 마르첸코 우크라이나 오데사 주지사는 지대함 미사일 '넵튠'을 발사해 모스크바함을 타격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모스크바함 사고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원인에 대해서는 평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14일 브리핑에서 밝혔습니다.
하지만, 원인과 관계없이 "기함의 손실은 단순한 물자적 손해가 아니라 전체 전투력과 사기에 미치는 영향이 두드러진다"고 미군 정보당국 관계자가 15일 VOA에 밝혔습니다.
이 관계자는 "러시아 측 주장대로 단순 사고가 침몰 원인이었다고 하더라도, 함대 관리 부실을 의미한다"며 "러시아 군과 정부 고위층 내에서 문책을 비롯한 후폭풍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이번 사건은 알렉산드르 드보르니코프 남부군관구 사령관을 우크라이나 전쟁 총괄 지휘관으로 임명한 직후 발생했다는 점에서 충격이 클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강조했습니다.
만일 우크라이나 측 주장대로 미사일에 타격된 것이라면 영향은 더 크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관계자는 "해군 함정은 바다를 떠 다니는 국토의 일부분"이라고 강조하면서 "(러시아 해군의) '모스크바'함이나, (미 해군의) '미주리'함 같이 자국 지명으로 명명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러시아 해군 주력 흑해함대 상징
모스크바함은 러시아 흑해함대를 이끌어 왔던 함정입니다.
흑해함대는 1783년 러시아 제국 시절 세바스토폴 기지 건설과 함께 창설된 러시아 해군 주력 조직입니다. 흑해와 아조우해(러시아명 아조프해), 지중해를 주요 작전 구역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흑해함대는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쪽 해군으로 분할됐으나, 대부분 전력은 러시아에 귀속됐습니다.
러시아 측은 지난 2014년 크름반도(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우크라이나 해군의 무기와 물자도 접수했습니다.
그 뒤로 흑해함대는 시리아 내전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이후 러시아는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북극항로 전력 강화에 대응해, 2020년부터 흑해함대 전력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지난 지난 1979년 진수한 모스크바함도 작년에 대규모 개보수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모스크바함은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남동부를 점령하려는 러시아 지상군의 화력 지원 임무를 수행해왔습니다.
막강한 전력으로 거점 도시들을 공격해왔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군이 최우선 표적으로 설정한 전략 자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모스크바함 손실 이후, 우크라이나 남동부에 전투력을 집중하려는 러시아군의 계획에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 젤렌스키, 항전 50일 메시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4일 러시아의 침공 50일째를 맞아 국민들에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 연설에서 "50일 간의 방어는 포기하거나 배신하지 않고, 인간이 되기 위해 맞서 싸운다는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린 우크라이나 국민의 성취"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격전지인 돈바스 일대와 남동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등 각지에서 싸우고 있는 군 장병·시민과 함께, 전쟁 중에도 사회를 지탱해주고 있는 의료, 교육, 물류, 금융 등 종사자들을 언급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많은 사람이 조국을 떠나 피신하라고 조언했다며 "그들은 우크라이나 국민을 몰랐고, 우리가 얼마나 용감한지, 원하는 대로 살 자유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부차와 마리우폴 등 민간인 살상이 벌어졌거나 도시 전체가 크게 파괴된 지역들 거론하며 "침략군(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서 국민에게 자행한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미국 고위급 인사 방문 검토
미국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에 최고위급 인사 파견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미국 주요 언론은 최고위급 인사가 크이우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14일 복수의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직접 갈 가능성부터,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또는 토니 블링컨 국무 장관을 특사로 파견하는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날(14일)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고위급 인사를 보낼 건지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 그 결정을 내리는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최근 유럽연합(EU) 지도부와 일부 소속국가 정상, 그리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등이 잇따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한 바 있습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9일 존슨 영국 총리와 회담 직후 "영국이 전후 우크라이나를 재건하는 데 도움을 줄 방법들을 수립했다"고 밝히고, "영국은 크이우 지역의 복구를 주도할 준비가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