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이 국제조약상 금지 무기인 집속탄을 우크라이나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한 증거를 발견했다고 인권단체 국제 앰네스티가 13일 밝혔습니다.
앰네스티는 침공 초기부터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제2 도시 하르키우(러시아명 하리코프)의 민간인 피해 상황을 기록한 보고서를 이날 발표하고 해당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앰네스티 조사단은 하르키우에서 4~5월 2주간 최소 62명이 사망하고 196명이 다친 41건의 공습 사례를 조사하고 160명의 생존자와 유족, 목격자, 의사 등을 인터뷰했습니다.
조사단은 공습 현장에서 발견된 탄환 파편 같은 물적 증거와 다수의 디지털 자료도 수집하고 분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하르키우에서 9N210과 9N235 집속탄을 사용하고, 유도 기능이 없는 로켓 무기를 통해 살포식 지뢰를 뿌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로 인해 민간인 수백 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도나텔라 로베라 앰네스티 상임 위기대응 고문은 "금지된 집속탄을 반복해서 사용한 것은 매우 충격적이며, (러시아군이) 민간인 생명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음을 재차 보여주는 징후"라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이처럼 끔찍한 공격을 가한 러시아군은 반드시 그들의 행동에 대해 처벌을 받아야 하고 피해자와 그 유족은 전적인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현지 주민 "불빛과 폭발음 이어져"
영국 BBC도 이날 하르키우의 주거지역 내 5곳을 방문해 집속탄 사용 증거를 발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BBC는 전문가 3명의 분석을 거쳐 현장에서 발견된 잔해물이 집속탄의 흔적이라고 확인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폭발 현장을 목격한 주민 증언도 집속탄이 사용됐다는 정황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아내·딸과 함께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던 중 집속탄 공격을 받은 하르키우 주민 이반 리트비녠코 씨는 "갑자기 불빛이 반짝이는 게 보였고 첫 번째 폭발음을 들었다"면서 "이후 연쇄적인 폭발을 목격했고 여러 폭탄이 연이어 터졌다"고 증언했습니다.
당시 인근 아파트 안에 있었던 주민 2명도 연속적인 폭발음을 들었다고 BBC는 전했습니다.
■ 국제조약상 금지 무기
집속탄과 살포식 지뢰는 모두 국제조약상 금지 대상입니다.
집속탄은 모체가 공중 파괴되면서, 안에 있던 작은 폭탄 수백 개가 표적 주변에 뿌려져 불특정 다수를 살상합니다. 넓은 지역에서 다수 인명 살상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대표적 비인도적 무기로 꼽힙니다.
지난 2000년대 후반 집속탄 사용과 제조, 보유, 이전을 금지하는 '집속탄에 관한 협약(CCM)'이 체결된 바 있습니다.
이 협약에는 120여 개국이 서명했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미국 등은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의 집속탄 사용 의혹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월 24일 개전 후 약 2주일여 된 시점이었던 지난 3월 11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인구 밀집 지역에서 집속탄을 사용했다고 믿을 만한 사례들을 접수했다고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발표한 바 있습니다.
리즈 트로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대변인은 당시 스위스 제네바에서 화상 브리핑을 통해 "이런 무기를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말하고, 관련 보고들을 모으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 집속탄·백린탄 등 사용 정황
살포식 지뢰는 건드리면 즉각 폭발하는 보통 지뢰와 달리, 사전에 설정된 시간 간격에 따라 소형 지뢰가 발사되는 식으로 작동합니다.
사람을 겨냥하는 대인지뢰는 1997년 대인지뢰금지협약 이후 금지됐습니다. 이 역시 세계 160여 개국이 서명했으나 러시아와 미국 등 일부 국가는 제외됐습니다.
러시아군은 이밖에 진공폭탄과 백린탄 등을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전투에 사용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러시아군이 돈바스 지역 내 도네츠크 주 노보미카일리우카를 진공폭탄으로 타격하는 장면을 촬영해 지난달 26일 공개한 바 있습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