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전술핵 운용부대 훈련'을 전개했다며 공개한 사진 일부가 과거 사진을 재활용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업적 과시를 위한 무리한 행동으로, 외부 사회의 불신을 키우는 부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이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조선중앙TV’ 등 관영매체를 통해 공개한 전술핵 운용부대 훈련 관련 사진 가운데 동해상 무인도 표적을 타격해 폭발이 일어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올해 1월 북한이 공개한 사진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해당 사진은 북한이 지난달 25일 평북 태천 지역으로 알려진 ‘서북부 저수지수중발사장’에서 실시한 미니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SLBM 시험발사 사진과 나란히 실렸습니다.
북한 매체들은 해당 사진에 별도의 설명을 달지 않았지만 저수지 수중에서 발사한 SLBM이 동해상 표적 섬인 알섬을 타격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도록 편집을 한 겁니다.
한국 군 당국과 국방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 SLBM이 실제로 알섬을 타격한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한국 군 당국이 탐지한 해당 미사일의 실제 사거리와 태천에서 알섬까지의 사거리가 크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방안보포럼 신종우 사무국장은 북한 매체들이 마치 SLBM의 타격 정밀도를 처음 확인한 시험발사인 것처럼 과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종우 사무국장] “실제 9월 25일 태천에서 발사된 미사일은 알섬까지의 사거리인 350km가 아니라 600km를 날아갔기 때문에 북한이 위장 사진을 쓴 게 거의 확실하고요.”
군 당국은 이 사진이 지난 1월 북한이 지대지 전술유도탄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며 공개한 사진과 같은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북한은 지난 1월28일 보도에서 1월27일에 동해상으로 발사한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 탄도미사일 발사 소식을 전했는데, 이 때 사용된 사진과 10일 보도된 사진이 각도와 화염의 모양 등에서 동일한 사진으로 보이는 겁니다.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 후 성과를 과장하기 위해 이전 영상과 사진을 재활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북한은 지난 3월 24일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성공했다며 관영매체를 통해 공개한 사진과 영상도 옛 자료를 짜집기한 것으로 미한 군 당국이 판단한 바 있습니다.
당시 사진과 영상은 이전에 ‘화성-17형’이 공중폭발하기 직전의 발사 초기 장면 등을 활용해 짜집기한 것으로 추정됐고, 한국 군 당국은 북한이 실제로는 ‘화성-15형’을 쏜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최근 일련의 도발을 ‘전술핵 운용부대 훈련’이었다며 자신들이 개발한 핵 투발 수단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일부 정보를 과장 또는 조작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입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노동당 창건일에 분명히 김정은의 업적을 보여줘야 하는데 김정은이 계속해서 보여주는 것은 결국 군사적 업적 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가장 극적인 효과를 노려서 이번에도 서사를 써 내려갔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거기엔 당연히 일부 과장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북한이 SLBM을 저수지에서 발사한 데 대해서도 미한의 대응 능력을 평가절하하려는 무리한 연출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김준락 한국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11일 정례브리핑에서 “SLBM은 잠수함에서 발사가 이뤄질 때 무기체계로서 실효성이 있다고 본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녹취: 김준락 실장] “북한이 공개 보도한 부분에 대해서 저수지에서 탄도미사일 발사한 것은 한미 감시를 회피하기 위한 또 우리의 킬체인 능력을 상당히 의식한 궁여지책으로 생각합니다.”
일각에선 북한의 저수지 발사가 새로운 SLBM 플랫폼을 선보인 게 아니냐며 킬체인 대응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았지만 한국 군 당국은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로 탐지, 요격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신종우 사무국장은 SLBM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움직임을 숨길 수 있는 은밀성이 가장 중요한데 저수지 수중발사는 오히려 포착되기 쉬운 방식이기 때문에 실전에서 쓸 수 있는 플랫폼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신종우 사무국장] “저수지라는 좁은 반경에서 더 이상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없고 은밀성이라는 게 전혀 보장이 안되죠. 그리고 설령 물속에 감춰놨다고 치더라도 저수지라는 게 수위 변화가 급격합니다. 저수지 바닥이 마를 정도로 북한이 가문 적도 있고 겨울엔 다 얼어버려요. 그럼 아예 겨울철엔 운영이 불가능한 지경이에요.”
아울러 북한 매체들이 지난 8일 전투기 150여 대를 동원해 ‘대규모 항공 공격 종합훈련’을 했다고 전한 보도 내용과 관련해서도 실제로 훈련에 동원된 전투기 중 일부는 제대로 이륙하지 못하거나 비상착륙했고 심지어 추락한 기체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국의 ‘연합뉴스’는 정부 소식통의 말을 빌어 북한이 “사진 재활용이나 훈련 항공기 추락 등 급하게 이번 훈련을 준비하고 공개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이 보인다”고 보도했습니다.
박원곤 교수는 북한이 보유한 군용기의 공식 통계는 800여대로, 한국 군 당국은 이 가운데 실제 기동이 가능한 비율은 10% 정도로 판단하고 있다며 북한이 이번 훈련에 150대를 동시에 동원했다는 관영매체들의 보도도 과장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과거와 달리 미한 연합훈련 중에도 미사일 발사로 맞받아치는 양상이라며, 그러나 미한의 압도적 전력에 비례한 대응에 한계가 분명한 북한으로선 훈련 규모와 성과를 부풀려 선전하려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 박사는 그러나 북한의 과장된 선전이 외부로부터의 불신을 키우고 북한이 이를 반박하기 위해 또 다시 도발에 나서는 악순환을 빚을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본인들 차원에선 압도적 무력시위를 했다고 판단하는데 외부 평가가 그렇지 않으면 그걸 확인하는 무력시위를 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집니다. 따라서 북한은 지금 맞받아치기 전략에서 자존심, 체면이 손상됐다고 판단되면 아마 추가적인 대응을 할 개연성이 높아집니다.”
박원곤 교수는 북한이 도발을 해도 외부에 던져지는 메시지 강도가 약해지면 더 강한 도발에 나설 수 있다며 추가 핵실험을 자극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