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 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화성-17형’에 대한 신뢰성이 검증됐다고 주장하며 미 본토 타격 능력을 위협하는 메시지를 발신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둘째 딸 김주애를 데리고 16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 훈련을 현지지도했다고 17일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한국을 ‘남조선 괴뢰역도’라고 칭하면서 미국과 한국의 “도발적이며 침략적인 대규모 전쟁연습 소동으로 엄중해진 형세 하에서 ‘화성포-17’형 발사 훈련을 단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평양국제비행장에서 발사된 미사일은 최대 정점고도 6천45㎞로 거리 1천㎞를 1시간 9분 11초간 비행해 동해 공해상 목표수역에 탄착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발사 훈련은 핵전쟁 억제력의 기동적이며 경상적인 가동성과 신뢰성을 확인하는 데 목적을 두고 진행됐다”며 “훈련을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 부대 전략 무력의 신뢰성이 검증됐다”고 밝혔습니다.
‘경상적인 가동성’이나 ‘신뢰성 검증’ 등을 언급하면서 ‘괴물 ICBM’으로 불리는 ‘화성-17형’이 전력화 단계에 진입한 것처럼 주장한 겁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발사 훈련을 참관한 뒤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핵전쟁 억제력 강화로써 적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전쟁을 억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을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며 한반도 지역에서 대규모 군사연습을 빈번히 벌리고 있는 미국과 한국에 그 무모성을 계속 인식시킬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이번 ICBM 도발이 현재 진행 중인 미한 연합훈련 ‘자유의 방패’에 대응한 대적 행동이라는 점과 추후에도 도발을 이어갈 것임을 분명히 한 겁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화성-17형’을 쏜 것은 지난해 3월과 11월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라며 이번 발사의 성격을 ‘훈련’으로 명시한 것은 실전화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녹취: 홍민 실장] “이번 보도 과정에서 발사를 훈련으로 명시한 부분은 이전 실험에서 훈련으로의 전환, 소위 실전화를 강조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이고요. 또 기동성, 가동성, 신뢰성 이런 얘기를 언급한 부분으로 봤을 땐 발사 준비에 있어서 신속성을 확보해서 운용성을 제고한다, 소위 말해서 작전화와 실전화를 강조한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방안보포럼 신종우 사무국장은 한국 군 당국이 북한의 기만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지난해 3월 발사를 제외하면 북한의 ‘화성-17형’ 발사는 이번이 두 번째라며 실전훈련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등 ICBM 보유국들은 통상 ICBM을 20여 차례 시험발사를 한 뒤 90% 정도의 신뢰성을 확보한 뒤에 실전배치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북한이 유사한 도발 카드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위협 효과를 높이기 위해 과장을 섞어 성과를 주장하거나 거친 표현을 동원하는 경향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석좌연구위원] “자꾸 똑 같은 카드를 쓰다 보니까 상대방에 주는 공포력이라고 할까 이런 게 자꾸 떨어지는 거거든요. 수확체증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 같고 이 수확체증의 법칙이 작용하는 가운데 자꾸 실감나는 것을 강조하려다 보니까 김정은이 직접 등장하고 무시무시한 말을 구사하고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 같거든요.”
신종우 사무국장은 북한이 ICBM을 이번에도 정상각도인 30~45도로 발사하지 않고 고각발사한 데 대해 대기권 재진입 등 기술적 보완 단계로 추정했습니다.
신 사무국장은 북한이 고각발사를 통해서 어느 정도의 해당 기술을 갖고 있을 것이라며 다음번엔 정상각도로 시험발사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매체들은 이번에 발사한 ‘화성-17형’이 우주에서 지구를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사진도 공개했습니다.
북한은 위성용 장거리 로켓 시험발사 때 로켓에 장착한 카메라로 고공에서 찍은 사진을 공개한 적은 있지만 ICBM을 발사하면서 이런 사진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신종우 사무국장은 ICBM 기술력을 과시하는 대미 메시지라고 해석했습니다.
[녹취: 신종우 사무국장] “자기들이 이만큼 우주공간 높이까지 ICBM을 쏠 수 있다, 높이까지 올라간다는 것은 그만큼 사거리가 길다는 얘기가 될 수 있거든요. 결국은 지구사진을 공개함으로써 자기들의 ICBM이 미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아요.”
북한은 또 '화성-17형'의 단 분리 장면도 처음 공개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TV’는 17일 오후 보도에서 이동식발사차량(TEL·텔)에 실린 ‘화성-17형’이 발사부터 짧게는 수초, 길게는 10여 초 정도 비행하는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영상으로 10차례 가까이 반복해 보여줬습니다.
이어 ‘화성-17형’ 상단부에 장착된 카메라가 공중에서 1단 추진체가 떨어져 나가는 장면을 포착했고 ‘조선중앙TV’는 이 장면을 공개했습니다.
3단으로 구성된 ‘화성-17형’은 1단 추진체가 먼저 분리된 뒤 시차를 두고 2단 추진체가 분리되는데 그동안 북한의 ICBM은 2단 분리 이후 비행까지는 정상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이춘근 명예연구위원은 다음달 군 정찰위성 발사 가능성을 시사했던 북한이 사전에 데이터 송수신 등 기술적 부분들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카메라 촬영을 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딸 김주애가 이번에도 ICBM 발사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데 대해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후계수업 차원이라기 보다는 미래세대의 상징으로서의 행보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11월 18일 김주애가 처음 등장했을 때와 같은 의미죠. 바로 ‘화성-17’에 부여하는 북한의 의미가 후대의 웃음을 위해서라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후대를 상징하는 김주애가 등장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죠.”
북한 매체들은 이번 발사 훈련이 ‘미사일총국’의 주도로 진행됐다고 밝혔습니다.
미사일총국은 지난달 6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 뒤편에 세워진 ‘군기’를 통해 처음 확인된 조직으로 탄도미사일을 직접 운용하는 전략군 등 군 부대와는 별개의 행정기관으로 추정됐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발사에 ‘미사일총국’ 지휘관들이 참관했다고 밝힘에 따라 ICBM 등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탄도미사일의 운용 주체가 미사일총국으로 이관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한편 이효정 한국 통일부 부대변인은 17일 정례브리핑에서 “한반도 긴장 고조의 원인과 책임이 북한의 무모한 핵과 미사일 개발에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며 “북한이 미한 연합훈련을 도발의 명분으로 삼는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북한은 이제라도 도발과 위협을 중단하고 한반도의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한 올바른 길로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