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정권의 인권 탄압을 국제 사법 심판대에 세우려면 한국 정부의 의지가 특히 중요하다고 국제법 전문가들이 지적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유엔 안보리를 우회해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직접 조사를 유도할 수 있는데 그 과정을 한국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는 제안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국제사회에서 제기되는 북한의 심각한 인권 범죄에 대한 책임 규명 방안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됩니다.
유엔 안보리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와 ICC의 자체 조사, 국제특별재판소 설치, 국내 형사 기소와 보편적 관할권 행사입니다.
국제법 전문가들은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안보리를 통한 회부는 사실상 힘들다면서도 우회 방안들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ICC의 체포영장 발부처럼 ICC가 북한 내 인권 범죄 가해자들을 직접 조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유럽과 아프리카 나라의 국제형사재판소 판사를 지낸 관계자는 27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푸틴과 김정은의 유일한 차이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전쟁 범죄 증거를 ICC에 제출한 반면 한국 같은 북한의 피해당사국은 제출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전 ICC 판사] “There are no doubt the victims in South Korea. Therefore the government of South Korea has the standing to request, but if they don't do nobody can act. it's to my surprise that there was never any action taken by the South Korean government.”
다른 국제 조사 관여를 이유로 익명을 요구한 전직 ICC 판사는 “한국에 피해자들이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한국 정부는 ICC에 요청할 자격이 있지만 그들이 하지 않으면 아무도 행동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이 놀랍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러시아처럼 ICC의 설립근거인 로마규약 당사국이 아니지만 이 규약 당사국인 한국은 이를 제기할 자격이 있다는 설명입니다.
국제법 전문가로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국무부 국제형사사법대사를 지낸 모스 단 리버티 대학 법대 학장도 유엔 안보리를 통한 방안 만이 유일하지 않다며 ICC 회원국인 한국의 ‘영토 관할권’을 예로 들었습니다.
[녹취: 단 학장] “UN Security Council is not the only way. So there's territorial jurisdiction. What that means is if these atrocities occurred in the territory of a member state and South Korea is a member state, then you could potentially get North Korea for the crimes that they committed on South Korean territory, including war claims,”
잔학 행위가 회원국의의 영토에서 발생했고, 한국이 회원국이라면 전쟁 범죄를 포함해 한국 영토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 북한을 잠재적으로 기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 학장은 또 한국의 헌법은 북한을 자국 영토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김정은과 다른 북한 고위관리들의 범죄에 대해 기소할 형사관할권도 한국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ICC가 과거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전쟁범죄에 해당하는지 예비조사를 시작했던 전례도 있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이런 시도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미국의 유명 로펌(법률사무소)인 ‘데비보이스 앤 플림턴’의 나위 우카비알라 변호사는 이날 VOA에 “국제 형법의 관점에서 볼 때 (푸틴과 김정은) 두 사람이 모두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다고 단정할 수 있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카비알라 변호사] “From the perspective of international criminal law, I believe there are reasonable grounds to conclude that they have both committed crimes against humanity. The ICC was able to indict Putin based on Ukraine’s 2015 declaration consenting to ICC jurisdiction over crimes committed in its territory after 2014. However, the allegations against North Korea concern crimes allegedly committed in North Korea, where the ICC lacks jurisdiction
우카비알라 변호사는 “ICC는 2014년 이후 자국 영토에서 자행된 범죄에 대해 ICC 관할권에 동의한 우크라이나의 2015년 선언을 바탕으로 푸틴을 기소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혐의는 ICC의 관할권이 없는 북한에서 자행된 것으로 알려진 범죄와 관련이 있다”는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일부 전문가는 북한의 인권 범죄에 대한 한국의 제소 등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힘들다고 말합니다.
한국의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은 27일 VOA에 우크라이나는 ICC의 검찰부가 들어가 다양한 조사를 통해 증거를 수집할 수 있었지만 한국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송상현 전 소장] “북한 문제를 다루려면 ICC 검사가 시작해야 하는데, 검사가 어떻게 김정은의 범죄 혐의를 잡아서 이것을 서포트할 수 있는 증거를 어떤 방식으로 수집할 것이냐는 굉장히 도전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정부가 고발해야 하는데 그러면 김정은을 잡기 위해서 한국이 고소고발하겠습니까? 일본이 하겠습니까? 현실적으로 그런 문제가 있죠. 고소고발할 정부가 없어요”
송 전 소장은 또 국제 법률가들 사이에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이해가 매우 낮다는 것도 걸림돌로 지적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또는 시리아 등 아랍의 역사는 이미 유럽 등 국제사회에 잘 알려져 있지만 한반도 상황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설령 고소·고발을 결정해도 ICC를 납득시키는 것이 큰 과제란 것입니다.
[녹취: 송상현 전 소장] “누가 가서 ICC 검사를 납득시킬 수 있을까요? 우선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남북 분단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설명해야 하고, 한국 민족을 설명해야 하고, 북한의 전체주의 독재 정권이 유례가 없는 독특한 캐릭터를 누가 다 저쪽의 판사나 검사들에게 누가 다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우크라이나는 안 그렇죠. 설명이 필요 없죠.”
송 전 소장은 “과거 ICC가 천안함과 연평도에 관한 예비조사를 할 때에도 북한은 한국과 달리 전혀 협조하지 않아 결국 수사를 종결할 수밖에 없었다”며 여러 걸림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이런 인권에 관한 국제 법률문제는 가시적 성과가 적어 한국 정부 관리들 사이에 관심이 거의 없다면서 이를 추진할 인재와 동력이 부족한 게 또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모스 단 학장은 그러나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해서 북한 내 반인도적 범죄를 좌시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나 전략적으로 큰 실책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녹취: 단 학장] “I think that's a mistake. I don't think they should be afraid that focusing on mass atrocity crimes is going to detract from the security situation. I actually think it can help. And this can actually provide possible diplomatic and negotiation leverage in that could potentially help in regards to the security situation”
단 학장은 “대량학살 범죄에 집중하는 것이 안보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면서 “오히려 이런 접근이 안보 상황과 관련해 실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외교적 협상의 지렛대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앞서 제52차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책임규명 관련 보고서에서 형사상의 책임규명 가능성이 여전히 낮다며 “문제 해결을 위한 참신하고 창의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의했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은 북한에서 자행된 국제 범죄에 대한 조사와 기소를 잠재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포괄적인 법적 체계를 갖추고 있다”며 보편적 관할권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보편적 관할권은 범행 장소, 범죄협의자, 피해자의 국적을 불문하고 범죄행위의 성격만을 근거로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원칙을 말합니다.
송상현 전 ICC 소장은 그러나 “보편적 관할권은 국제법상 논란이 너무 많아 이를 지지하는 전문가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엔의 다양한 북한결의안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명시하는 것이 오히려 북한 안팎에 파급력이 더 있을 것이라는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녹취: 송상현 전 소장] “국제사회에서 이름을 명시해서 이 사람이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 이렇게 나쁜 놈이다 이렇게 하면 그것이 번역되어서 이북의 고위층도 볼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김정은이 최고존엄으로 지고지순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국제사회에서는 이렇게 나쁜 놈이라고 규탄하네. 그러면서 의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얘기가 달라지죠.”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도 “김정은이 인권 침해에 분명히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이름을 명시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킹 전 특사] “I think there's some value in identifying him personally because he clearly is responsible. …The worst parts of the Kim Jong Un regime have come about since then, and I think it might be a very useful thing to do that. I think the suggestion of the South Korean judges is very appropriate.”
COI 보고서 이후 김정은 정권의 최악의 부분들이 발생했기 때문에 김정은의 이름을 결의안에 명시하는 것은 매우 유용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킹 전 특사는 이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ICC의 체포영장 발부는 국제 관심사가 높은 것도 큰 기여를 했다면서 국제적으로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을 계속 환기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우카비알라 변호사도 “국제사회가 이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면서 어떤 나라도 북한의 책임규명 노력에 반대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