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한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에 대해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첨단 무기 제공 등을 거론하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대통령의 발언이 원론적인 내용이었다면서도 한국의 선택은 러시아의 향후 행동에 달려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을 한 데 대한 러시아측의 반발과 관련해 “대통령 말씀은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대답이었다”고 밝혔습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0일 용산 청사 브리핑에서 이같이 언급하면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할 지에 대해서는 향후 러시아의 행동에 달려있다고 거꾸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또 윤 대통령의 발언이 “인도적 기준에서 봐서 국제사회가 모두 심각하다고 여길만한 중대한 민간인 살상이나 인도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런 가정적인 상황에서 한국도 그걸 어떻게 가만히 지켜볼 수 있겠나 하는 가정형의 표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한국 국내법에 바깥 교전국에 대해서 무기 지원을 금지하는 법률 조항이 없다”며 "한국이 자율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이유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국제 사회 대열에 적극 동참하면서도 한러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 관리 해야 한다는 숙제를 동시에 균형을 맞춰서 충족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은 19일(한국시간) 보도된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대량 학살, 심각한 전쟁법 위반과 같이 국제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주의적 또는 재정적 지원만 고집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며 군사지원 가능성을 내비쳤습니다.
한국 내 외교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이 오는 26일 미한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이같이 발언한 데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김현욱 미주연구부장입니다.
[녹취: 김현욱 미주연구부장]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국제사회와 미국으로부터의 요청이 강하게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국제사회에서 글로벌 중추국가로 거듭 나고 책임 있는 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한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의 한 부분으로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이 언급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러시아는 윤 대통령의 발언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떤 무기 제공도 반러시아 적대행위”라며 즉각적으로 반발했습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20일 윤 대통령의 발언이 국가 간 관계에 있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습니다.
그는 특히 “한국의 경우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입장에 관한 것일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 상황을 두고 실력행사에 나설 수 있음을 내비쳤습니다.
이에 앞서 19일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 SNS에 대북 무기 지원을 언급하며 경고장을 보냈습니다.
그는 “한국 국민이 러시아의 최신 무기가 그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파트너인 북한의 손에 있는 것을 볼 때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고 위협하면서 주는 만큼 받는다는 뜻의 “퀴드 프로 쿼”(quid pro quo)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불법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 지원에 소극적인 한국 정부 태도에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러시아는 이미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규정한 상태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을 빌미로 한국을 더 압박하는 양상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박 교수는 한국 정부가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모호성을 유지할수록 득보단 실이 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만약에 정책전환이 있다면 빨리 정책전환임을 밝히고 그리고 러시아가 어떤 형태로든 보복하는 것에 대해서 비용이 부과되는 거니까 그것을 감당할만한 각오를 해야 하는 거죠. 이런 식으로 좀 애매하게 가는 것은 오히려 더 적절치 않다라고 생각돼요.”
박 교수는 러시아의 대북 군사 지원 가능성에 대해선 러시아는 이미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은밀하게 도움을 줘 왔다며 하지만 러시아도 동참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때문에 첨단 무기 또는 핵심 기술 지원으로까지 가기엔 부담이 클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김현욱 부장도 러시아가 북한에 미 본토 타격 능력을 부여하는 기술 지원 등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인내보다는 행동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커지고 한국 입장에선 보다 강력한 확장억제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이 공식화할 경우 미국이 타이완에 대한 무기 지원을 확대하는 흐름과 연동돼 북중러 간 군사협력이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러시아의 첨단 전략무기 기술 북한 이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북한 재래식 무기 현대화를 지원할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물론 아무리 노력을 해도 북한이 재래식으로 한미를 압도할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궤멸상태인 재래식 무기를 재건시켜준다는 얘기는 전략무기, 핵무기를 갖고 있는 상태에서 재래식 쪽도 현대화 시켜주면 북한으로선 한미에 대한 억제력이 대단히 높아질 수 밖에 없는 거죠.”
통일연구원 박형중 석좌연구위원은 1990년대부터 북한은 러시아 과학자들을 돈으로 불러들여 무기 개발 기술을 전수받았다며 한국의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이 공식화할 경우 대륙간 탄도미사일, ICBM 대기권 재진입 기술 같은 핵심 기술이 북한에 넘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석좌연구위원] “러시아가 한국에 대해서 작정하고 징벌하겠다고 판단하면 중장기적으로 러시아 같은 경우엔 핵무기나 첨단 군사기술을 북한에 이전하는 방식으로 돌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박 석좌연구위원은 러시아의 한국을 압박할 경제 카드로는 러시아 내 한국 기업 자산 동결이나 북한에 대한 식량과 경제개발 지원 등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북러간 밀착 양상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계속돼 왔습니다.
북한은 작년 3월 유엔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규탄 결의안이 141개국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을 때 반대표를 던진 5개국 중 하나였습니다.
미국은 작년 9월부터 러시아가 북한에서 포탄과 로켓 수백만발을 사들이고 있다는 정보를 공개했고 11월엔 “북한이 러시아에 상당량의 포탄을 은닉해 제공했다는 정보를 받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그해 12월 미국은 북한이 러시아 민간 용병업체 와그너그룹에 보병용 로켓과 미사일 등 무기와 탄약을 판매했다고 밝혔고, 올해 관련 위성 사진도 공개했습니다.
미국 당국은 이와 함께 지난달 30일 러시아가 북한에 식량을 주는 대가로 추가로 탄약을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며 북러 양국의 행위에 강력하게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