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가 ‘외교적 경로’를 이용해 북한에 소장을 전달해 달라는 납북 피해자 유족의 요청에 현재로선 마땅한 창구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미국인들이 소장을 평양으로 보낼 방법을 찾지 못하면서 수년 째 소송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남북 피해자 김동식 목사 유족의 소송을 맡고 있는 로버트 톨친 변호사는 8일 국무부의 ‘외교적 경로’를 통해 북한에 소장을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재판부에 밝혔습니다.
톨친 변호사는 이날 재판부에 제출한 ‘현황 보고서’에서 “국무부로부터 7일 (외교적 경로 요청과 관련한) 서한을 받았다”며 ‘북한에 대한 소장 전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명시한 해당 서한을 공개했습니다.
국무부 법무실은 서한에서 “미국과 북한은 사법적 지원과 관련한 어떤 조약 관계도 맺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사법 문건 송달에 관한 헤이그 협약의 당사국이 아니며, 여기에 더해 미국은 북한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지 않고 미국 대표단을 북한에 두고 있지도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따라 “현 시점 미국 정부는 외교적 경로를 통한 사법 문서 송달을 포함해 북한에 대한 일반적인 영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법무실은 “국무부가 외국주권면제법 조항에 따라 북한에 대한 소장 송달 절차를 촉진하기 위한 선택지를 계속 모색하고 있다”며 “추가 방안이 가능해지면 이를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동식 목사는 2000년 1월 탈북민을 돕다가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납치된 뒤 평양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 목사의 부인인 김영화 씨와 딸 다니 버틀러 씨, 아들 김춘국 씨는 지난 2020년 9월 북한 정권을 상대로 워싱턴 DC 연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북한으로의 우편 송달이 막힌 유족 측은 2021년 6월 국무부에 외교적 경로를 통한 소장 전달을 요청했었습니다.
하지만 국무부는 약 2년 만에 이 같은 요청에 현재로선 ‘그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답변을 보낸 것입니다.
‘외교적 경로’는 국무부가 미국 뉴욕에 위치한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로 직접 소장을 보내거나 북한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스웨덴 정부 등을 통해 소장을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미국 연방법은 다른 나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외국주권면제법(FSIA)’을 근거로 북한과 같은 ‘테러지원국’은 예외로 하고 있습니다.
외국주권면제법은 원고가 취할 수 있는 소장 전달 방식을 총 4가지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이중 2가지는 원고의 출신 국가와 상대국이 맺은 합의 혹은 국제 협약에 따라 소장을 주고 받는 방식이고, 나머지 2가지 방식은 우편으로 보내는 것과 ‘외교적 경로’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톨친 변호사는 이날 현황 보고서에서 “외교적 절차를 통한 대북 소장 송달 이후 북한이 소장에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원고는 북한에 대한 궐석판결을 요구할 것”이라며 “그러나 그 때까진 (원고 측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국무부는 지난 2월 일본 적군파 테러 피해자와 유족의 ‘외교적 경로’ 요청도 거절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김동식 목사 유족에 대해서도 같은 결정이 내려지면서 국무부를 통한 소장 전달을 추진해 온 다른 대북 소송인에도 조만간 동일한 내용이 전달될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북한 억류 피해자 케네스 배 씨도 국무부에 소장 송달을 요청하는 서류를 제출했다고 밝혔으며, 2021년 북한 정권을 상대로 23억 달러의 배상 판결을 받은 푸에블로호 승조원과 가족 등도 최종 판결문을 ‘외교적 경로’를 이용해 북한에 전달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습니다.
과거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미국인 등은 소송 제기 후 국제 우편 서비스인 ‘DHL’을 통해 소장과 판결문 등을 북한 외무성으로 보냈었습니다.
하지만 ‘DHL’이 2020년부터 유엔이 아니거나 외교 목적이 아닌 우편물에 대한 북한 내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대북 소송인 등은 북한에 소장을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여기에 일반 우체국을 통해 보낸 우편물도 최근 반송된 사례가 있어 대북 소송인들은 소장 전달이라는 기본 절차 이행 조차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VOA는 국무부 법무실에 구체적인 상황을 문의한 상태로 현재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