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오는 27일 이른바 ‘전승절’ 행사에 중국과 러시아 대표단을 초청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첫 외빈 초청으로, 미한 확장억제와 미한일 안보협력 강화 등에 대응해 북중러 연대를 과시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정부 초청으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자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인 리훙중을 단장으로 하는 중국 당과 정부 대표단이 ‘전승절’ 70주년 경축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다”고 24일 보도했습니다.
중국 공산당의 당 대 당 외교를 담당하는 대외연락부 후자오밍 대변인도 이날 북한 측 초청으로 리 부위원장이 중국 당정 대표단을 인솔해 26일부터 북한을 방문해 한국전쟁 정전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또 25일 북한 국방성의 초청으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러시아 연방 군사대표단이 ‘전승절’ 70주년을 즈음해 북한을 축하 방문하게 된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북한이 국경을 봉쇄한 이후 외국 인사가 단체로 방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리훙중 부위원장은 후베이성 당 서기와 톈진시 당 서기를 지낸 인물로, 지난해 10월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당 중앙정치국원에 재선출됐으며, 올해 양회 즉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전인대 부위원장으로 선출됐습니다.
그는 2016년에 시진핑 국가주석을 '핵심'이라고 부르면서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시 주석의 최측근입니다.
러시아의 경우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외부에 신경을 쓰기 어려운 상황에서 국방장관을 대표단장으로 보내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러시아가 군사대표단을 보내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중 북중 간 군사 협력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승절’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기념일의 북한식 칭호입니다.
북한은 과거에도 전승절 기념행사에 해외 대표단을 초청해 왔지만, 신종 코로나 사태 발발 이후에는 줄곧 내부 행사로 진행해 왔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여전히 신종 코로나 비상방역체제를 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위험 부담을 안고 중국과 러시아 대표단을 초청했다며, 미한 확장억제와 미한일 안보 협력 강화에 대응해 북중러 연대를 과시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북한이 저는 초조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한미일 협력, 확장억제, SSBN, NCG 다 부담되는데 이런 상황에선 한미일이 협력하니까 북중러의 협력을 보여줘야 된다 그런 면에서 중러의 대표단이 오는 것이 김정은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거고요.”
중러 대표단은 북한이 준비 중인 열병식에 참석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 70주년 전승절은 북한이 특별하게 기념하는, 5년 혹은 10년 단위로 꺾어지는 정주년이어서 대규모 열병식이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북한은 중러 대표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전략무기를 총출동시켜 자신들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대한 이들 국가의 용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회로 활용하려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이번에 열병식 하이라이트는 새로운 신무기 보다는 총망라한 핵무기 종합세트를 보여줄 가능성이 높거든요. 그렇게 되면 여기에 대해서 열병식을 참관할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결국 북한 핵 개발을 묵인하는 모습이 연출되는 거거든요."
다만 중국은 2018년 북한 정권수립일인 9〮9절 70주년 열병식 땐 리잔수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대표단장으로 보냈는데 이번엔 대표단장의 급을 낮춘 것은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는 상황임을 감안해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한 때문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하지만 미한일 대 북중러 진영 구도가 만들어지고 미국의 한반도 전략자산 전개 빈도가 늘어나는 국면에서 이번 전승절이 북중러 3각 밀착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이상숙 교수는 다음달 미한일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는 상황에서 비록 정상 수준은 아니지만 이번 전승절을 계기로 3국 간 안보 관련 협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상숙 교수] “전승절 행사가 어쨌든 북한으로선 안보력을 과시하는 그런 행사잖아요. 그런 자리에 고위급들을 초청하는 것은 한미일 안보 협력에 대항하는 낮은 수준의 양국 간 협력을 논의할 가능성이 있는 거죠.”
이와 관련해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25일 “북중 간 교류와 관련해 한반도 정세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북중 관계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관계로 나아가길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의 이번 중러 대표단 초청이 약 3년6개월여 간의 고립에서 벗어나 국경을 개방하고 본격적인 대외활동에 나서는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여부도 주목됩니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중국과 화물열차 운행 등 일부 교역을 재개했지만 인적 교류는 철저하게 통제해 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다음달 하순 중국 항저우아시안게임에 북한의 참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집니다. 북한은 이미 참가 등록을 마친 상태입니다.
한국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의 중국 대표단 초청에 관해 “북한이 최근 전반적으로 방역을 완화하는 조처를 했고, 국제 스포츠행사에 참가를 준비하는 동향 등으로 볼 때 어느 정도는 국경 개방이 시간 문제인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조한범 박사는 “중국과 러시아 파견 노동자들이 최대 6년 이상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한 상황이고 북한의 봉쇄 조치는 한계에 온 것 같다”며 점진적으로라도 개방 수순에 들어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확산 부담 때문에 인적 교류가 고위급에 국한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달 중순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세안 지역안보 포럼(ARF) 외교장관 회의만 해도 북한은 최선희 외무상 대신 안광일 아세안 주재 대사를 참석시킨 바 있습니다.
한편 최근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에 대해 전승절을 앞두고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은 북한의 최근 도발들은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등에 대한 대응 차원이기도 하지만 주민들에게 반미 의식을 고취시키려는 목적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북한이 주장하는 전승절을 앞두고 김정은이 이렇게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능력도 과시하고 이런 것을 통해서 내부를 결속하려는 이중적인 목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지난 19일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하고 22일 서해상으로 순항미사일 여러 발을 발사한 데 이어 24일 자정께 또 다시 평양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