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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국제사회 겨냥 잇단 비난 담화…전문가 “핵 보유국 기정사실화 노린 선전전”


최선희 북한 외무상 (자료사진)
최선희 북한 외무상 (자료사진)

북한이 헌법에 핵 무력 고도화 방침을 명시한 이후 자신들이 주장하는 핵 보유국 지위를 부정하는 국제사회를 비난하는 담화를 잇달아 발표했습니다. 북한이 신냉전 구도를 부각하며 치열한 외교 선전전에 나선 양상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은 자국 헌법에 명시된 핵 보유국 지위를 부정하는 것은 주권침해 행위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비난했습니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은 지난달 30일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9월 29일 미국과 그 추종 국가들은 유엔 안보리 비공개 회의를 소집해 북한의 헌정 활동과 자위적 국방력 강화 조치를 비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최 외무상은 북한의 정당한 주권 행사를 ‘도발’과 ‘위협’으로 걸고 든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의 불법무도한 행태라며 자국에 대한 정면도전, 주권국 내정에 대한 노골적 간섭이라고 유엔 안보리를 성토했습니다.

유엔 안보리가 북한이 지난달 26∼27일 개최한 최고인민회의에서 핵 무력 고도화 방침을 헌법에 명시한 것과 관련해 개최한 비공개 회의에 강하게 반발한 겁니다.

유엔 안보리 홈페이지에 따르면 안보리는 뉴욕 현지 시간으로 지난달 29일 오전 10시에 ‘비확산과 북한’을 주제로 비공개 회의를 했는데 구체적인 논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비난 강도로 미뤄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북한 비핵화와 대북 제재 문제 등을 논의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최 외무상은 “핵 보유국 지위의 헌법화는 핵 주권 수호의 강력한 법적 무기를 마련했다는 데 중대 의의가 있다”며 “미국 등 적대세력들이 비핵화를 강요하면서 핵 보유국으로서의 헌법적 지위를 부정하거나 침탈하려 든다면 이는 헌법 포기를 강요하는 주권침해 행위”라고 반발했습니다.

북한은 이번에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핵 무력 고도화 정책을 헌법에 명시했습니다.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법령으로 채택한 핵 무력 정책을 국가최고법인 헌법에까지 명시한 겁니다.

한국 외교부는 최 외무상 담화에 대해 1일 입장을 내고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과 도발을 명확히 금지하고 있다”며 “북한은 어떤 행동과 주장을 하든 핵 보유를 결코 인정받지 못할 것이며, 국제사회의 제재도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헌법으로 핵 무력 강화 방침을 명시함으로써 핵 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라며, 최 외무상의 담화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국제사회에 극렬하게 반발함으로써 핵 보유국 지위를 돌이킬 수 없는 일로 쐐기 박으려는 선전전 차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이미 지난해 9월 핵 무력 법제화 그 다음에 북한의 전술핵 운용부대 실전배치, 헌법에까지 명시한 상황에서 한반도 북한 핵 문제의 본질이 완전히 변했다, 임계점을 넘었다, 미국이 비핵화를 하지 않으면 본인들도 하지 않겠다는 건 안 하겠다는 얘기거든요.”

북한은 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북한 핵 프로그램 중단 촉구 결의안 채택에 반발했습니다.

2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 원자력공업성 대변인은 IAEA를 미국의 어용단체라며 북한이 1994년 이미 IAEA를 탈퇴했고 이 기구가 북한의 주권행사에 가타부타할 자격이 없다고 강변했습니다.

대변인은 “이 땅 위에 미국의 핵무기가 남아 있고 제국주의 세력이 존재하는 한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는 절대불변”이라고 밝혔습니다.

앞서 지난달 29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IAEA 총회에서 회원국들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 중단 등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표결없이 합의로 채택한 바 있습니다.

북한은 이와 함께 북러 협력에 대한 국제사회 우려를 반박하는 담화도 냈습니다.

임천일 북한 외무성 부상은 1일 ‘조선중앙통신’에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이 최근 북러 관계 발전을 세계 평화에 위협인 듯 오도하고 있다며 “적대적 기도를 드러낸 미한일 3각 군사동맹이나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장본인인 나토야말로 세계 평화와 안전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임 부상은 “북러 관계는 제국주의자들의 군사적 위협과 간섭을 억제하기 위한 평화 수호의 보루이며 전략적 지탱점”이라며 “북러 선린우호 관계가 새로운 발전 국면을 맞이해 국제 역학구도의 평형성이 보장됐다”고 진영구도를 적극 옹호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 외교라인의 미국 등을 겨냥한 이런 잦은 반응은 이례적이라며, 자신들의 핵 위협 고도화에도 미한일과 국제사회가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 데 대한 초조함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북한 입장에선 러시아와의 협력관계를 연출하는 것도 그렇고 자신들의 고도화된 핵 능력도 그렇고, 그러면 훨씬 더 거기에 수용적인 태도로 결국 미국을 비롯해서 그렇게 나와야 하는데 전혀 거기에 대해서 무시하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그런 모습들이 보이니까, 그러니까 국제정세가 북한이 생각하는 의도와 반대로 가고 있다는 거죠.”

한국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이 미국 등 서방세계를 압박하기 위해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내용의 담화를 내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정 실장은 또 러시아도 북한으로부터의 재래식 무기 지원을 넘어 우크라이나 전쟁에 집중된 미국의 관심을 동북아로 분산시키는 데 북한과의 군사 협력 카드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성장 실장] “북한은 러시아를 과거보다 더욱 더 적극적으로 옹호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봐야겠죠. 북러 관계에 대해서 외부의 어떤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서 그것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겠고요.”

전문가들은 핵 무력 강화 헌법 명시, 러시아와의 협력 공식화, 진영구도를 부각시키는 적극적인 외교 선전전 등 북한의 이런 일련의 조치들과 1년여 남은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의 연관성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통일연구원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장기화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전비 지출을 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미국 내 비판 여론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북한이 러시아와의 밀착, 핵 보유국 선전전 등 계산된 행동들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홍민 선임연구위원] “협상 국면이 조성될 수 있는 부분 이것을 염두에 두고 그 때를 생각하는 협상 전략인 거죠. 최대한 자신의 몸값을 높여 놓는다는 측면에서 전략무기 고도화를 최대한 추진해 놓고 그 다음에 신냉전적 구도를 이용해서 자신의 전략적 입지가 고립돼 있지 않다는 것을 계속 알리고 또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도 계속 알리고 그래서 북한이 대선 이후도 염두에 둔 안목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홍 선임연구위원은 이달 말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중러 정상회담이나 2차 북러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면 북한의 이런 외교전이 한층 심해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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