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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외무부 대변인 ‘윤 대통령 비난 논평’에 한러 갈등 악화 조짐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이 모스크바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자료사진)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이 모스크바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자료사진)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러 군사 협력 등을 둘러싸고 냉랭했던 한국과 러시아 관계가 윤석열 대통령 발언에 대한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의 비난 논평으로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현지 시간으로 지난 1일, 북한의 ‘핵 선제사용 법제화’를 비판한 윤석열 한국 대통령 발언에 대해 “노골적으로 편향됐다”고 비난하는 논평을 냈습니다.

이에 한국 외교부는 3일 자하로바 대변인의 발언은 “무례하고 무지하며 편향돼 있다”며 “러시아의 지도자가 명백한 국제법 위반 행위인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군사작전이라고 지칭하는 것이야말로 국제사회를 호도하려는 억지에 불과하다”고 블라드미르 푸틴 대통령까지 겨냥한 입장을 냈습니다.

또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대사를 초치해 무조건 북한을 감싸고 일국 정상의 발언을 비난한 러시아 측 행동에 엄중 항의했습니다.

자하로바 대변인의 논평은 때마침 어렵게 성사된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의 방한 직후에 나왔습니다.

루덴코 차관의 방한은 한러 양측이 지난해부터 조율해왔지만 그 해 9월 이뤄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정상회담으로 한러 관계가 극도로 민감해지면서 일정이 계속 미뤄졌습니다.

루덴코 차관의 이번 방한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러 군사 협력 등 한러 간 갈등 이슈들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관리하겠다는 양국의 공동 의지가 관철된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에 자하로바 대변인의 돌발 발언이 뜻밖이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러시아 외교팀의 허술한 조직력에서 비롯된 엇박자 행동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습니다..

박 교수는 다만 러시아의 모순된 행동에는 주요 교역 파트너이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서방의 편을 들고 있는 한국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이 저변에 깔려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큰 틀에서의 협력의 수준, 범위, 의미는 북한이 아니라 한국이 훨씬 중요하죠. 반대편엔 어쨌든 우크라이나라는 어려운 상황이 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북한의 지원과 도움은 매우 중요한 거죠. 그런 상황에서 북한을 지지해야 하는 두 가지가 다 있는 거죠. 그럼에도 이런 상황에서 통합되고 잘 조정된 외교가 러시아가 잘 되지 않으니까 이런 식으로 불협화음이 나왔다 그렇게 판단이 됩니다.”

한러 간 공방은 신원식 한국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2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련해 “개인적으로 자유세계 일원으로서 전면 지원이 가야 할 길이라 생각하지만 인도주의적·재정적 차원으로만 제한된 정부 정책을 지지한다”고 언급하면서 두드러졌습니다.

비록 개인적 소신이라고 전제했지만 러시아가 한러 관계의 ‘레드라인’으로 간주하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에 자하로바 대변인은 “한때 우호적이었던 러시아와 관계를 붕괴시킬 수 있는 경솔한 조치에 대해 한국 정부에 경고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한러관계의 관리에 있어서는 향후 러시아의 관련 향배가 매우 중요할 것이라는 점을 경고한다”며 북러 간 무기거래·군사기술 협력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입장을 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도 자하로바 대변인의 발언들이 러시아 지도부의 의사를 정제해서 반영한 내용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윤 대통령의 발언이 러시아와 직접 연관이 없는 북한의 대남 핵 위협에 대한 비판이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비난 논평은 외교의 선을 넘은 행동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북한이 대남 핵 공격 위협을 명시하고 있고 전술핵 공격 훈련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 상황에서 북한 핵 정책을 비난하는 건 당연하고요. 대통령의 발언이 자극적이었다고 볼 순 전혀 없습니다. 여기에 러시아의 한 개 부의 대변인이 대한민국 최고지도자를 비난하는 논평을 냈다는 것은 러시아가 외교적 선을 넘은 겁니다.”

위성락 전 러시아 주재 한국대사는 자하로바 대변인의 윤 대통령 비난 논평과 루덴코 차관의 방한은 모순된 행동으로 보이지만 한러 양국 간 공개되지 않은 물밑 갈등의 결과일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러시아의 대북 협력과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놓고 각각의 적정 수준을 만들려는 양국의 노력에 일단은 제동이 걸렸다는 게 위 전 대사의 평가입니다.

[녹취: 위성락 전 대사] “악재들이 많이 있는 환경 속에서 양측이 그래도 대화를 통해 뭔가 관계를 관리해 보려는 의지가 맞아 떨어진 게 이번 방한이라고 봐야겠죠. 한국형 가드레일을 만들어보자 그런 취지가 있었겠죠. 그런데 그런 원 취지와는 무관하게 이런 돌발사태가 발생함으로써 성과를 내지 못했다, 분위기는 나빠졌다고 생각이 듭니다.”

한국을 찾은 루덴코 차관은 지난 2일 김홍균 외교부 1차관과 정병원 차관보, 김건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잇달아 만났습니다.

특히 한국 외교부가 자하로바 대변인의 논평에 대한 비판 입장을 낸 3일엔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이 루덴코 차관을 비공식 접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비공식이기는 하지만 안보실장이 자신보다 급이 낮은 차관보급 인사 접견에 나선 것은 양국 간 소통과 관계 관리에 대한 의지가 반영된 행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루덴코 차관은 장 실장이 윤석열 정부 초대 러시아 주재 한국대사를 지낼 당시 러시아 측 카운터파트이기도 했습니다.

양측은 만남에서 최근 북러 동향과 관련해 깊이 있는 의견 교환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북러 군사 협력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현안에 대한 상호 레드라인을 확인하며 관계 악화를 막자는 데 의견을 모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6일 기자들을 만나 장 실장의 루덴코 차관 면담 사실을 확인하면서 “자하로바 대변인 발언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안다”며 “러시아 측의 구체적 반응은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통일연구원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한러 간 냉각기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한미동맹에 맞서 러시아와의 협력을 공고하게 하려는 북한에게 유리한 국면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선임연구위원] “한러 간의 이런 냉랭한 분위기들이 북한에 사실상 유리한 거죠.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의 질과 양적 측면에서 이런 외교적 이슈들이 북한에겐 상당히 득이 될 수 있고 나름대로 잘 활용하고 싶은 그런 욕구가 생기겠죠.”

홍 선임연구위원은 상대방 최고지도자를 겨냥한 비난과 대사 초치 등 한러 갈등이 이례적으로 큰 파열음을 냈다며, 메시지 관리 차원의 문제로 갈등을 키운 측면도 있기 때문에 양국이 좀 더 신중하게 상황을 관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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