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북한, ‘통일’ 지우기 본격화…탈북민 “주민들 심리적 혼란 커질 것”


북한 평양 지하철 차량 내 모니터에 나온 노선도. '승리'와 개선' 사이 '역'으로만 표시돼 있다. (주북 러시아 대사관 페이스북)
북한 평양 지하철 차량 내 모니터에 나온 노선도. '승리'와 개선' 사이 '역'으로만 표시돼 있다. (주북 러시아 대사관 페이스북)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동족’이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이후 사회 내부에 퍼져 있는 ‘통일’ 또는 ‘민족’ 등의 상징체계들을 지워 나가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한국 내 탈북민들과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주민들이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일본 ‘교도’ 통신은 20일 “북한 수도인 평양의 지하철에서 ‘통일역’이 단순히 ‘역’이라고만 표시된 노선도가 북한 주재 러시아대사관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확인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대사관은 직원들이 평양 지하철에서 차량 내 모니터에 나온 노선도를 촬영한 사진을 이날 페이스북에 추가했습니다. 통일역은 천리마선 승리역과 개선역 사이에 있는데, 노선도에 ‘통일’이 아닌 ‘역’으로만 표시됐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2월 3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한국과의 통일은 성사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어 지난달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선 한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명기하고 ‘평화통일’과 ‘민족대단결’ 등 표현을 삭제하는 헌법 개정 의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이런 남북관계 전환 선언 이후 ‘통일’ 또는 ‘민족’을 지향하는 상징체계들을 하나 둘 지워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이 “수도 평양의 남쪽 관문에 꼴불견으로 서 있다”고 언급한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을 철거했고, 자국 국가인 ‘애국가’의 가사를 일부 변경하면서 한반도 전체를 뜻하는 ‘삼천리’ 라는 단어를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인태 박사는 김 위원장이 통일에 대한 공포증 즉 ‘포비아’ 현상을 보이고 있다며 이에 따라 북한 당국이 다양한 분야에서 `통일 지우기'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인태 박사] “김정은의 통일에 대한 포비아 현상이거든요. 지금 사회 전반에 걸쳐 새해 첫 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동향입니다. 지금 드러난 건 일부분이고요. 그것보다 훨씬 세부적인 부분에도 손을 대고 있습니다. 다양하게요.”

한국 내 탈북민들은 김 위원장의 통일과 민족을 부정한 발언과 후속 조치들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면서 북한 주민들도 적지 않은 혼란을 겪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소장은 북한 당국이 김 위원장 발언 이후 관련 선전선동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지 않는 가운데 당 간부와 주민들 모두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충희 소장] “아직은 이게 학습제강이나 강연회를 통해서 이런 일들이 진행되지 않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굉장히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고요.”

`북한개혁방송' 김승철 대표는 특히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층에서 동요가 심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른바 미제국주의로부터의 남조선 해방혁명을 당과 국가의 존립 근거로 삼아 온 북한의 엘리트층에게 통일과 민족을 배제한 대남정책 전환은 심리적 공황상태를 부를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김 대표는 김 위원장이 이런 ‘무리수’를 두는 이유로 경제력은 물론 문화적 영향력 면에서 자신들을 압도하고 있는 한국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김승철 대표] “옛날엔 북조선의 가장 큰 위협이 미국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미국이 아니고 남조선이에요. 하드 파워도 커졌지만 한국의 가장 큰 위협은 어디서 오느냐, 소프트 파워에서 오는 거에요. 개별적이고 산발적이고 문화적인 이런 저항들이 상당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어요.”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도 민족통일은 주민들에게 온갖 어려움도 이겨내야 하는 궁극적인 과제로 제시됐고 북한체제를 결속시키는 시멘트 같은 기능을 해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한 청년들이 인민군에 입대할 때 ‘통일의 인민군이 되어라’가 최고의 찬사입니다. 즉 모든 어려움도 통일 때문이고 힘들어도 통일 때문이고 통일만 되면 모든 일이 해결되고 이런 논리로 장기간, 그러니까 북한 주민들에게 통일하면 아직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담론이거든요.”

북한은 김 위원장의 발언 이후 대규모 궐기대회나 말씀관철대회, 관영매체들의 관련 해설 등 당국 차원의 선전선동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조한범 박사는 김 위원장이 유사시 한국에 대한 영토 완정 또는 평정 등 무력통일을 시사하는 언급을 한 점을 주목하면서 북한의 최근 조치들이 한국을 완전한 타국으로 만드는 거대한 내부 선전작업의 일환인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Forum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