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국을 ‘제1 적대국’이라고 규정하고 ‘유사시 한국 영토 점령을 국시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 체제 결속을 위해 한국에 대한 적의를 부채질하고 있다며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조선인민군 창건일 즉 건군절인 8일 딸 주애와 함께 국방성을 방문했다고 북한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9일 보도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국방성에서의 연설에서 “한국 괴뢰 족속들을 우리의 전정에 가장 위해로운 제1의 적대국가,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유사시 그것들의 영토를 점령, 평정하는 것을 국시로 결정한 것은 우리 국가의 영원한 안전과 장래의 평화를 위한 천만 지당한 조치”라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동족이라는 수사적 표현 때문에 공화국 정권의 붕괴를 꾀하고 흡수통일을 꿈꾸는 한국 괴뢰들과의 형식상의 대화나 협력에 힘써야 했던 비현실적인 질곡을 털어버렸다”며 “적대국으로 규제한 데 기초해 언제든 괴멸시킬 수 있는 합법성을 갖게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또 “평화는 구걸하거나 협상으로 챙기는 게 아니고 전쟁은 사전에 광고를 내지 않는다”며 “적들이 무력을 사용하려 든다면 우리 수중의 모든 초강력을 동원해 적들을 끝내버릴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한국 내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박사는 김 위원장이 핵 무력 고도화에 따른 대남 군사력 우위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국과의 무력 충돌 가능성을 높이는 발언을 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정 박사는 김 위원장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불법으로 간주했다며 한국과의 사소한 충돌도 확대 보복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데 대해 각별한 경계심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성장 박사] “김정은이 NLL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에 서해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졌죠. 그런데 작은 무력 충돌에도 그걸 전면전으로 연결시키겠다는 그런 입장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고 사고이죠.”
김영호 한국 통일부 장관은 9일 보도된 일본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한국의 4월 국회의원 총선과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지속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김 장관은 또 북한이 남북관계를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한국과의 통일은 성사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데 대해 “경제난이 매우 심각하고 민심 이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북한체제를 결속하기 위해 한국에 대한 적의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장관은 김 위원장 지시로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이 철거된 데 대해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업적을 없앴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짚고 “권력세습 기반을 부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고 북한 엘리트층에서 혼란과 균열이 생길 가능성이 있어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위원장이 국방성 연설에서 ‘유사시 한국 영토를 점령, 평정하는 것을 국시로 결정’ 했다고 밝힌 대목을 주목했습니다.
박 교수는 김 위원장이 지난달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남북한 사이의 민족과 통일 개념을 부정했지만 당과 국가의 정통성과 존립 근거 차원에서 이를 대체할 비전이 필요하다며, 그런 차원에서 국가 정책의 기본방침을 의미하는 ‘국시’라는 표현이 쓰였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통일을 대체할만한 어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되는데 김정은의 고민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국시라는 얘기가 나와버렸으니까 그걸 국시라고 하는 의미는 결국 대한민국 무력 점령이 그들의 새로운 통일 방안임을 암시했다고까지 해석이 가능하겠죠.”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김 위원장의 이번 연설에선 민족과 통일 개념 폐기와 관련한 언급은 없었다며 ‘유사시 한국 무력 점령’을 국시로 결정한 것은 ‘통일’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을 뿐 여전히 한국을 자국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풀이했습니다.
조 박사는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북한이 체제경쟁에서 실패해 고려연방제와 같은 평화적 방안을 폐기했지만 무력에 의한 방안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대남정책 전환이 통일 노선 자체를 버린 건 아니라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평화를 부정한 건 북한 주민들도 납득을 할 겁니다, 지금도 휴전 상태니까. 그러나 민족과 통일 개념 폐기는 김정은 위원장의 말 한마디로 뒤집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교전국 관계로 전환한 조치들은 지금 취하고 있다 그러나 대남 무력 점령 노선 자체는 변함이 없다 이 얘기에요 지금.”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김 위원장의 건군절 연설에서 미국에 대한 언급이 사라진 데 대해 이례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고 명예교수는 북한이 한국 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과 주요 당국자들의 대북 발언들을 주시하면서 핵 무력을 앞세워 자기를 건드리지 말라는 위협을 하는 양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고 명예교수는 북한이 미국이 아닌 한국을 ‘제1적대국’으로 규정하면서 미국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한국과의 ‘두 국가 관계’를 전제로 미국과는 소통의 여지를 살려놓는 새로운 차원의 ‘통미봉남’ 전술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고유환 명예교수] “남쪽을 의식하지 않고 이제는 분리시켜서 남쪽을 적으로 따돌려 놓고 나머지 과거의 적대국들과 관계를 좀 풀어 나가겠다는 그런 전략 구도는 기본으로 깔려 있는 것 같아요.”
박원곤 교수도 북한은 지난해와는 달리 최근 무기 개발을 명분으로 연이어 미사일 도발을 하면서 지역 정세와 무관하고 주변국에 해를 끼치지 않는 주권 행위임을 강조하고 있고 미국을 자극하는 발언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북한이 미일과 한국을 갈라치기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고 보이지만 오는 11월 미 대선을 감안하면 북한은 다음달 미한 연합훈련 등을 계기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미국을 겨냥한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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