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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매체, 한국과 수교 쿠바 지우기…전문가 “한중 수교 버금가는 충격”


쿠바 국기가 펼쳐진 수도 아바나 시내 건물 앞에서 경찰이 순찰하고 있다. (자료사진)
쿠바 국기가 펼쳐진 수도 아바나 시내 건물 앞에서 경찰이 순찰하고 있다. (자료사진)

북한 관영매체들은 최근 한국과 수교한 쿠바와 관련한 소식을 일절 싣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형제국’으로 여겼던 쿠바가 자신들이 제1 적대국으로 규정한 한국과 손을 잡은 데 대해 충격을 받고 불만의 표시로 ‘쿠바 지우기’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쿠바 관련 소식을 마지막으로 실은 것은 쿠바가 한국과 수교를 맺은 다음날인 지난 15일이었습니다.

‘노동신문’은 당시 6면에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무장관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비난했다는 소식을 다른 국제뉴스들과 한데 묶어 짤막하게 보도했습니다.

‘노동신문’은 이후 25일자까지 쿠바 소식을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노동신문’은 한-쿠바 수교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 주재 쿠바대사관 행사는 물론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의 동정, 유엔에서 쿠바대사의 발언, 쿠바의 영웅 호세 마르티까지 ‘세계 상식’으로 보도하는 등 꾸준히 쿠바 관련 뉴스들을 주민들에게 전했습니다.

수교 발표 이튿날인 15일자에 쿠바 소식을 실은 것은 쿠바가 북한에 한국과 수교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았거나 발표 직전에야 통보했기 때문이라는 유추해석을 낳고 있습니다.

북한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도 지난 6일을 끝으로 쿠바를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82번째 생일 즉 광명성절을 맞아 26개국 재외공관과 유엔대표부에서 경축행사가 열리고, 각계인사의 축하 방문이 잇달았다는 지난 23일과 24일 보도에도 쿠바가 빠져있습니다.

북한이 민족 최대 명절로 기념하는 김정일 생일과 같은 날에 ‘조선중앙통신’이 외국에서 열린 행사를 전할 때 쿠바를 생략한 전례는 흔치 않습니다.

오히려 쿠바 행사만 따로 떼어내 보도한 적도 있습니다.

한국 내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형제국으로 여겼던 쿠바가 불과 한 달여 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1적대국으로 규정한 한국과 수교한 데 대한 충격과 불만의 표시로 관영매체들로부터 ‘쿠바 지우기’에 나섰다고 보고 있습니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북한은 자기들과 같은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하는 반미국가인 쿠바의 한국과의 수교를 주민들에게 설명할 논리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치적 충격이 매우 큰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고유환 명예교수] “92년 한중수교에 맞먹는 충격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념적으론 현재 사회주의 노선을 유지하면서 반제자주라는 연대를 해 왔던 유일한 나라일 수 있거든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앞서 지난 1월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반제자주는 절대불변하고도 일관한 제1국책”이라며 “사회주의나라들과의 관계 발전을 우선과제로 내세우고, 나라의 대외관계 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사업에서 새로운 진전을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대외전략이 천명된 지 한 달여 만에 반미연대, 비동맹운동을 추진하는 데 핵심 국가인 쿠바가 한국과 수교를 맺은 것은 김 위원장의 지도력에 타격을 주고 북한 엘리트층 동요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본인들이 대한민국과 2국가로 전환하면서 외교전쟁을 새롭게 시작한 게 신냉전 외교인데 그 전쟁에서 실패가 바로 한 두달도 지나지 않아서 나타난 게 한국 쿠바 수교 사태이기 때문에 일반 주민은 아무 감흥이 없겠죠, 무슨 상황인지 모르니까. 그러나 북한 엘리트그룹이나 외교담당자들에겐 충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죠.”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종원 연구위원은 26일 ‘한국-쿠바 수교의 함의와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온라인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김 위원장의 리더십이 체제 결속에 부정적 영향을 우려해 한-쿠바 수교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김 연구위원은 “쿠바에 대한 배신감으로 김정은 정권은 대내외 전략에 상당한 혼란이 생겼을 것”이라며 “이를 입증하듯 북한은 한-쿠바 수교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연구위원은 또 북한 스스로 한-쿠바 수교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두 국가 관계’라고 선언하면서 쿠바가 한국과의 외교관계를 수립할 명분을 제공했다는 겁니다.

고유환 명예교수는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선대 지도자이자 혁명 1세대인 카스트로 형제와 달리 경제난 돌파를 위해 이념보다는 실용주의 노선을 택했다며, 북한은 세습체제라는 틀 속에서 유연한 노선 변화가 어려운 상황이고 오히려 ‘사회주의독립국가론’을 주창하며 시대 흐름에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 (자료사진)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 (자료사진)

[녹취: 고유환 명예교수] “다른 나라들은 지도자 교체에 의해서 기존 교조적 노선에서 실용노선으로 사상이동을 하는데 북한은 이게 세습을 하고 역행을 하는 거거든요.”

북한은 쿠바에 대한 공개적 비난은 삼가고 있는 양상입니다.

북한은 지난 1990년 한국과 옛소련과의 수교, 1992년 한중 수교 당시엔 이를 사전에 인지하고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거나 내부적으로 맹비난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재외공관을 축소하는 등 외교 경쟁에서 한국에 크게 밀리는 상황에서 쿠바와 단교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통일연구원 홍민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홍민 선임연구위원] “쿠바와 관계를 단절하거나 거리를 두거나 이런 방식으로 가긴 어렵다, 왜냐하면 북한이 갖고 있는 외교 바운더리가 제한돼 있는데 그마저도 더 좁히고 한다는 것은 더 타격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거든요.”

한국 외교부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하반기 국경 봉쇄 완화 이후 재외공관 수를 53개에서 44개로 줄였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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