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세계 주요 뉴스통신사들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지 않고 있다고 이례적으로 감사 표시를 했습니다. 북한과의 밀착 속에서도 한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실리외교를 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지 않는 점 등을 높이 평가하며 한러 관계를 회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지난 5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세계 주요 뉴스통신사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재 지정학적 여건 속에서 한러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변했습니다.
지난달 7일 집권 5기를 시작한 푸틴 대통령의 이 발언은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 등을 계기로 한러 간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직접 한국에 우호적 태도를 보이며 관계 개선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어서 주목됩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 개막을 계기로 이뤄진 이번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은 “우리는 한국 정부와 일을 할 때 어떠한 러시아를 혐오하는 태도도 보지 못했고 분쟁 지역에 어떠한 무기 공급도 없다”며 “우리는 이에 대해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와 관련해 한국을 공개석상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 건 처음입니다.
푸틴 대통령은 또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보낼 무기를 구하려고 접근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우크라이나에 대해 미국 등 서방의 지원이 강화되면서 러시아가 긴장하고 있다며, 푸틴 대통령의 한국에 대한 이례적으로 우호적인 발언은 추후 한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이 상황 변화는 러시아로선 상당히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여기에서 한국산 무기 구매가 지금 초미의 관심사거든요. 푸틴 대통령으로선 그걸 막아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 발언이 한국이 주시하고 있는 북러 군사협력 수위가 선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장호진 한국 대통령실 안보실장은 앞서 지난 4월 27일 한국 공영방송인 ‘KBS’ TV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받았지만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받은 건 상당히 제한적이다. 이는 우리가 우려하는 부분을 러시아가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 역시 러시아가 ‘안 해줬으면’ 하는 부분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입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한국이 직접적으로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 대신에 러시아도 북한에 대해서 한국에 안보 위협이 되는 군사무기 또는 기술을 직접적으로 지원하지 않겠다는 상호 약속이 지금 이행되고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닌가 이렇게 판단되는 거에요.”
푸틴 대통령은 그러나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선 “우리는 다른 누군가가 좋아하든 말든 우리의 이웃인 북한과 관계를 발전시킬 것”이라며 북한과의 밀착 의지를 재확인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러시아 극동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답방 차원에서 북한 방문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북 핵 문제와 관련해선 “북한은 미국 등과 협상할 준비가 돼 있음을 반복해서 보여줬고 이런 열망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회담의 동기로 작용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북한은 미국과 핵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데 합의하고 시험 발사장도 해체했지만 미국은 일방적으로 합의를 위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푸틴 대통령이 북한을 두둔하긴 했지만 북한의 핵 보유를 지지하는 등의 노골적 표현은 없었다며, 미국 책임론도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비핵화 대화에 나왔다는 게 중요하다는 건 뭐냐 하면 간접적으로 비핵화 협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의미로 볼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일방적으로 북한의 핵 보유 인정 이런 톤의 발언에 비해선 상당히 중화된 발언이라고 볼 수 있어요.”
푸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또 한러 관계의 앞날과 관련해 “현재 무역과 경제 관계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지만 지난 수십년간 달성한 관계 수준을 부분적으로라도 유지해 미래에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다른 나라들과 협력하도록 강요받고 있지만 이는 우리의 선택이 아닌 한국 지도부의 선택”이라며 “우리 쪽에서는 채널이 열려 있고 협력을 지속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본격적인 장기집권에 들어간 푸틴 대통령으로선 자국 경제를 살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일 것이라며, 북한의 탄약과 무기 지원이 절실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마무리되면 신냉전구도에 얽매이기보다는 한국과의 관계 회복을 더 원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녹취: 고유환 명예교수] “양국이 모두 협력 가능성을 열어두고 상호 레버리지가 있다고 한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얘기할 정도이고 푸틴 대통령도 거기에 화답하는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에 이제 막바지인지 모르겠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한국과의 협력은 아마도 회복할 가능성이 있죠.”
통일연구원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푸틴 대통령의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발언은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염두에 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홍 선임연구위원은 미 대선 결과가 미한, 한러 관계에 변수가 될 것이기 때문에 예측이 힘든 대선 이후 상황에 대비해 한국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홍민 선임연구위원] “만약에 트럼프 대통령이 됐을 때 한국이 전략적으로 운신할 수 있는 변화 공간이 필요할 수 있고 또 러시아와의 관계가 어느 면에선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여지도 있거든요. 그래서 미 대선 이후 전략공간이랄까 운신공간을 서로 만들어주는 의미도 있을 것 같아요.”
홍 선임연구위원은 다만 러시아는 미국과의 대결구도가 장기화할 것으로 보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 뒤에도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낮춰보진 않을 것이라며, 북한과의 밀착은 상당한 수준에서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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