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러시아 정상이 49일 만에 다시 만나 미국에 맞선 연대 의지를 재확인했지만 대서방 안보체제 구축 등에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대중 의존도가 심화된 북러 양국의 군사 밀착도 중국의 견제로 제약이 따를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일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났습니다.
두 정상의 대면회담은 지난 5월 16일부터 이틀간 베이징에서 중러 정상회담이 열린 이후 한 달 반 만이고, 지난달 19일 북러 정상회담 이후 처음입니다.
중국이 최근 북러 간 밀착을 껄끄러워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중러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미국에 맞선 연대 의지를 재확인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양자회담에서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을 오랜 친구라는 뜻의 ‘라오펑유’라 불렀고,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러중 관계와 우리의 전면적 전략 협력 동반자 관계가 역사상 최고의 시기에 도달했다”고 말했습니다.
시 주석은 “중러 양국은 계속해서 전면적 전략 협력을 강화하면서 외부 간섭에 반대하고, 공동으로 지역 안정을 수호해야 한다”고 말했고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외부 세력이 중국 내정에 간섭하거나 남중국해 문제에 개입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화답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등 서방에 맞선 진영 구축과 관련해 미묘한 입장차도 드러났다는 관측입니다.
푸틴 대통령은 4일 열린 SCO 정상회의에서 새로운 유라시아 협력·안보 체제를 구축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는 푸틴 대통령이 북한 방문을 앞두고 지난달 18일자 ‘노동신문’ 기고를 통해 언급한 ‘유라시아에서 평등하고 불가분리적인 안전구조 건설’ 계획을 거듭 천명한 겁니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에서 한쪽이 공격당하는 경우 상호 지원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은 ‘북러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을 체결한 것도 유라시아 안보체제 구축의 일환이라는 분석입니다.
SCO는 중앙아시아 안보를 위해 2001년 중국과 러시아 주도로 창설된 정치, 안보, 경제 협력체로 중국과 러시아 외에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이란, 파키스탄, 인도, 벨라루스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매개로 사실상 미국 등 서방과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경제살리기에 주력하고 있는 중국은 서방을 적대시하는 안보체제 구축까지 원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북한과 러시아가 공히 말하는 게 한미일 협력 그리고 미국의 인태 지역에서의 공세를 아시아판 나토라고 규정하고 있거든요. 여기에 대응하는 체제를 구축하자고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중국에게 보내지만 그러나 중국 입장에선 굳이 푸틴 대통령의 그런 안보협력에 손을 잡을 이유가 없고요.”
실제로 시 주석이 푸틴 대통령의 이 제안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공개된 게 없습니다.
시 주석은 다만 푸틴 대통령과의 양자회담에서 “중국은 러시아가 브릭스 순환의장국을 맡아 글로벌 사우스의 단결, 신냉전 방지를 추진하고 불법적인 일방 제재, 패권주의에 반대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달 북러 조약 체결 이후 첫 중러 정상 간 만남이라는 점에서 관련 논의가 있을지 여부도 주목됐지만 공개된 건 없었습니다.
북러 조약에 대해 중국은 자국의 대북 영향력 약화와 동아시아 지역 분쟁 확대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 관영언론은 북러 정상회담 결과를 크게 보도하지 않았고, 중국 외교부는 “북러 교류가 평화와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며 과도한 밀착에 불편해 하는 기색을 보였습니다.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유사시 북한에 대한 러시아 개입의 길을 연 새 북러 조약은 중국의 전략적 이해를 훼손한, 중국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선을 넘은 행동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유럽 수출길이 막힌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을 받아주면서 러시아에 대한 압도적 영향력이 생긴 중국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 측에 과도한 밀착을 견제하는 경고성 신호를 보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통일연구원 박형중 석좌연구위원도 러시아가 전쟁을 치르느라 북한과 밀착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주도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석좌연구위원] “러시아 입장에선 중국이 훨씬 더 중요한 나라인데 중국의 이해관계를 침해하지 않는 방향에서 북한과의 관계를 진전시킬 것으로 보거든요. 그러니까 러시아가 북한에 해줄 수 있는 게 상당한 제약이 거기서 구조적으로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객원연구위원은 북한과 중국이 올해 수교 75주년을 맞아 ‘북중 친선의 해’를 선포했으면서도 이렇다 할 관련 행사나 고위급 교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북러 밀착에 북중 관계가 밀려 소원해진 징후들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장 객원연구위원은 핵 강국인 러시아와 핵 보유국임을 선언한 북한 간 동맹 수준의 새 조약 체결이 한국 내 자체 핵무장 여론을 자극하고 있는 것은 중국에게 골칫거리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장용석 객원연구위원] “북한 핵을 인정하고 북러 간 협력이 강화되고 이 국면에서 또 지역 대립이 심화되는 핵심 축으로 북한이 부상하게 되면 한국 핵무장, 일본과 특히 타이완 핵무장은 중국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거니까 이런 맥락에서 시진핑의 고민이 깊어질 수 있어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중국이 북러와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만 미국의 제재와 압박에 대응하는 새 진영구축 필요성엔 같은 입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임 교수는 중국이 북러와 당장 3각 군사협력에 나서기 보다는 국제정세의 유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전략적 유연성을 유지하려 할 것이라며, 자국을 둘러싼 안보환경의 변화에 따라 북러와의 협력 수위도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미중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느냐 그리고 또 한미일 군사협력이 중국 안보 위협에 어떤 인식을 주느냐 이런 여러 가지 유동적 상황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부응해서 북중러 군사협력 수위가 결정될 가능성이 있죠.”
박형중 석좌연구위원은 한국 정부는 중국의 이런 북러와의 미묘한 입장차를 간파하고 중국이 갖고 있는 북러에 대한 영향력을 활용하려고 하고 있고, 역으로 중국은 북러에 대한 영향력을 지렛대로 삼아 한국의 미일과의 공조를 견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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