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북한의 정권수립일을 기념해 최근 북한에 보낸 축전에서 북-중 친선관계의 기본원칙을 담은 이른바 ‘16자 방침’을 이례적으로 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북한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려는 중국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의 정권수립 66주년을 맞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보낸 축전 전문을 지난 9일 공개했습니다.
축전 전문에는 두 나라 친선관계의 기본원칙으로 통하는 이른바 ‘16자 방침’이 빠져 있었습니다.
‘16자 방침’은 지난 2001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과 중국의 수교 이후 9년 만에 평양을 방문해 한-중 수교로 악화된 두 나라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취지에서 천명한 원칙입니다.
전통계승, 미래지향, 선린우호, 협조강화라는 16 글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2003년 집권한 후진타오 주석도 북-중 친선관계를 집약한 이 문구를 계승해 2005년부터 해마다 북한 정권수립 기념일 축전에 이를 인용했습니다.
이 문구가 인용되지 않은 때는 북한이 미국의 방코델타아시아에 대한 제재를 푸는 과정에서 중국 측이 비협조적 태도를 보여 두 나라 관계가 악화된 2007년 한 해 뿐이었습니다.
시진핑 주석도 지난해 김 제1위원장에게 보낸 정권수립 기념일 축전에 이 문구를 넣었습니다.
그랬던 시 주석이 이번 축전에선 16자 방침을 생략해 올 들어 두드러진 북-중 관계의 이상기류를 반영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습니다.
한국의 북-중 관계 전문가인 신상진 광운대 교수는 중국이 전통적 혈맹을 강조해 온 북한과의 관계에 모종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신상진 광운대 교수] “중국은 최근에 한국전쟁에 대해서도 항미원조 전쟁이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있고 단순히 이것을 조선전쟁, 한국전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중국이 북한을 새로운 원칙에 입각해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은 시진핑 주석이 북-중 관계를 정상적인 국가 간 관계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힌 대목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소 박병광 박사는 16자 방침이 빠진 게 북-중 관계 악화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단순한 해석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고 있고 집권한 뒤 북한과 이렇다 할 정상급 대화를 못한 시 주석이 과거의 관계에만 얽매이지 않겠다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설명입니다.
한편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시 주석의 축전을 1면이 아닌 3면에 실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노동신문'은 그동안 주요 행사 때 해외 축전을 소개하면서 중국 최고 지도자의 축전을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해 왔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홀대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