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이 8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주 크라마토르스크의 철도역에 '토치카-U' 단거리 탄도 미사일 두 발을 발사해, 민간인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다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날 온라인 성명을 통해 밝혔습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 대변인은 이 사건으로 최소 52명이 숨졌으며, 그 중에 5명은 어린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후 현지 철도 당국은 사망자 외에, 확인된 부상자를 98명으로 집계하고 성인 여성 46명과 남성 36명, 어린이 16명으로 분류했습니다.
미사일이 떨어질 당시, 피란을 가려는 민간인 4천여명이 승강장과 개찰구, 진입로 등 역 안팎에 모여 있었다고 크라마토르스크 시청 측은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사상자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해당 역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일대 주민들이 피란을 위해 몰리는 곳입니다. 최근 러시아군이 동부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어, 우크라이나 당국이 최대한 빨리 대피하라고 현지 주민들에게 당부한 바 있습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관해 "그들(러시아군)은 냉소적으로 민간인들을 죽이고 있다"며 "한계가 없는 악"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어서 "처벌받지 않는다면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규탄했습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실 고문은 해당 철도역이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들이 피란을 시도하는 장소"라면서, 이들에게 미사일을 발사한 "러시아는 국가 차원의 테러집단"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날 공격으로 사상자가 발생한 뒤 선로에 정차중이던 열차 3량이 출발하지 못했으며, 열차에 타려던 피란민들은 급히 몸을 피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 금지무기 '집속탄' 사용 의혹
파울로 키릴렌코 도네츠크 주지사는 이날(8일) 철도역 공격에 집속탄이 사용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집속탄은 모체가 공중 파괴되면서, 안에 있던 작은 폭탄 수백 개가 표적 주변에 뿌려져 불특정 다수를 살상합니다. 넓은 지역에서 다수 인명 살상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대표적인 비인도적 무기로 꼽힙니다.
지난 2008년 세계 100여 개국이 집속탄 사용 금지에 동의했지만, 러시아는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이날 인근 도로를 포함해, 미사일이 떨어진 현장에서 먼 곳에 있던 사람이 파편을 맞고 쓰러진 경우가 다수 발견돼, 집속탄 사용 주장은 힘을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당국은 이날 철도역을 공격한 사실이 없다며, 우크라이나 측이 모략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성명에서, 러시아군이 역에 미사일을 쐈다는 우크라이나 당국의 발표는 "전혀 진실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허위 사실 주장은 "도발"로 간주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서, 우크라이나 측이 주민 탈출을 막아 인근 군사시설의 '인간 방패'로 쓰기 위해 철도역을 공격한, 일종의 '자작극'이라고도 주장했습니다.
드리미트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우리(러시아) 군은 그런 형태(토치카-U)의 미사일을 사용하지 않는다"며 공격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 EU 집행위원장 부차 방문
이런 가운데,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이날(8일) 우크라이나 수도 크이우(러시아명 키예프)와 인근 도시 부차 일대를 방문했습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정책 고위 대표와 함께 현지에 도착해 "유럽은 여러분의 편임을 알리러 왔다"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강조했습니다.
이어서, 부차에서 우크라이나 방문을 시작하는 것은 "부차에서 우리의 인간성이 산산조각났기 때문"이라고 트위터에 적었습니다.
부차는 최근 러시아군이 퇴각한 뒤 거리에 방치된 민간인 시신과 대규모 매장지가 잇따라 나오면서 '집단 학살' 현장으로 지목된 곳입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또한 "잔학행위 책임자들이 정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보낸다"고 밝히고 "여러분의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앞서 EU 입법부인 유럽의회의 로베르타 멧솔라 의장이 크이우를 방문한 바 있습니다.
같이 보기: 우크라이나군 '수도권 해방' 선언, 마리우폴 진격 계획...유럽의회 의장 크이우 방문멧솔라 의장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예방하고 의회에서 연설한 뒤 기자회견을 통해 지속적인 협력과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 남부 지역도 공세
러시아 당국은 지난달 말 우크라이나에서 '특별군사작전' 1단계 종료를 선언한 뒤, 수도 크이우 일대를 포함한 북부에서 병력을 철수하고, 도네츠크를 포함한 동부와 남부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동부에서 철도역 공격이 발생한 8일, 남부에서도 러시아군의 공세가 계속됐습니다.
이날(8일) 흑해에서 러시아 군함이 오데사 지역에 발사한 미사일로 사회기반시설이 파괴됐다고 오데사 시의회가 소셜미디어에 게시했습니다.
도시의 90%가 파괴된 것으로 파악되는 마리우폴에서는 "10만 명 넘는 주민들이 여전히 대피하지 못한 채 도시에 남아 있다"고 바딤 보이쳰코 시장이 이날 전했습니다. 러시아군이 포위한 채 통로를 터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정전협상 경색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고위급 대표단 사이에 진행 중인 정전협상은 수도권 소도시 부차 일대에서 대규모 민간인 시신이 발견된 뒤 경색 국면에 돌입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대표단의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실 고문은 "부차 학살로 협상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8일 밝혔습니다.
양측 대표단은 현재 화상으로 6차 회담을 진행 중입니다.
■ 유럽연합, 러시아산 에너지 첫 제재
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대러시아 제재의 일환으로 오는 8월부터 석탄 수입을 금지합니다.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EU 차원의 제재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EU 회원국들은 7일 석탄 금수 조치 등을 담은 대러시아 5차 제재안을 승인했습니다. 다만 회원국 간 이견으로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 중단 합의는 실패했습니다.
러시아산 석탄 금수조치는 조만간 EU 관보 게재에 게재한 뒤, 120일 후인 8월 초부터 발효될 예정입니다.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독일의 요구를 반영해 120일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습니다.
미 재무부는 이날(7일) 러시아 최대 군함 조선사와 다이아몬드 채굴 업체를 제재 목록에 추가했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파트너국 합동 외교장관 회의 후 기자회견을 통해,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유지하고 더욱 강화해 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같이 보기: 블링컨 "러시아 행동 역겨워...압박 더 강화할 것"...러시아, 유엔 인권이사국 자격 정지블링컨 장관은 특히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에 의한 고문, 성폭행, 살인에 관한 믿을만한 소식들이 더 많이 나오고 있다"며,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지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