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정상 4년5개월만 러 우주기지서 회담…무기 거래 등 유엔 제재 위반 협력 가능성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회동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우주기지에서 4년 5개월만에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는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군사와 경제 등 다방면의 협력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현지 시간으로 13일 오후 2시 25분께 러시아 극동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렸다고 ‘타스' 통신 등 러시아 매체들이 보도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러시아는 러시아에 반대하는 패권세력에 맞서 주권과 안보를 수호하기 위한 성스러운 싸움에 나섰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항상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지도부의 결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왔다”며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고 주권국가를 건설하는 데 항상 함께할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옛 소련이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는 등 양국이 오랜 우호관계를 맺고 있다면서 “지금도 북한의 최우선 순위는 러시아와의 관계이고 이번 회담이 양국 관계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정치, 경제, 문화를 포함한 아주 많은 의제를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이에 대해 올해가 북러 수교 75주년이자 북한 정권 수립 75주년임을 상기하면서 매우 특별한 시기에 정상 간 만남이 이뤄졌다고 말했습니다.

또 “양국은 경제 협력과 인도주의적 문제, 한반도 정세에 대해 확실히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정은(가운데 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가운데 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둘러보고 있다.

한국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두 정상의 발언으로 미뤄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무기 지원, 그리고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식량과 에너지 지원이 교환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북한의 대러시아 무기 지원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 것 같고 거기에 상응하는 보상으로서 경제협력, 인도주의 지원이 이뤄질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북한과 러시아 간 군사협력이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게 평가됩니다.”

두 정상은 양국 대표단이 배석한 확대회담을 약 1시간 30분 진행한 뒤 통역만 배석하는 일대일 단독회담을 약 30분가량 가졌습니다. 이어 만찬을 함께 했습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정상회담 뒤 공동선언문을 포함한 어떤 형태의 문서에도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회담을 시작하기 전 김 위원장과 함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의 주요 시설을 시찰하며 러시아 우주과학 기술을 소개했습니다.

당초 김 위원장이 전용열차를 타고 러시아로 들어올 땐 정상회담 장소로 블라디보스토크가 유력하게 점쳐졌지만 양국 정상은 이런 예상을 뒤엎고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회담 장소로 택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시설에 입장하기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북한과 우주, 군사 분야에서 적극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북한의 인공위성 제작을 도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이 때문에 이곳에 왔고 북한 지도자는 로켓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그들은 우주를 개발하려 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또 ‘회담에서 군사기술 협력 문제도 논의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서두르지 않고 모든 문제에 대해 얘기할 것이고 시간은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 위원장은 수행한 북한 대표단들과 시설을 돌며 로켓 연료의 특성과 발사체의 추진 원리 등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러가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회담 장소로 택한 것은 자신들에게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는 미국 등 서방 세계에 대한 반격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보스토치니 우주기지가 평화적 우주 이용과 개발 차원을 넘어 각종 첨단 군사 기술을 상징하고 있다는 게 조 박사의 설명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보스토치니가 의도하는 건 첨단기술 협력 특히 ICBM, 로켓, 핵이런 것들을 상징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서방이 선을 넘으면 북한을 무장시키는데 북한이 무장하면 미 본토까지 공격이 가능해지거든요. 또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선 미국의 양보가 없다면 핵 능력 그리고 첨단 무장을 가속화하겠다, 이걸 상징하는 거거든요.”

국제사회는 이번 북러 정상회담 주요 의제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위반에 해당하는 무기 거래 등 군사협력 방안이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푸틴 대통령이 북한 위성 개발을 돕겠다고 한 발언은 북한의 평화적 우주 이용 권리 주장을 옹호해 온 기존 러시아 입장의 연장선상이라면서 전략무기 개발에 필요한 첨단기술을 북한에 넘기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박 교수는 북한과의 무기와 에너지 식량 맞교환 등 유엔 안보리 제재 위반 행위를 물타기 하기 위한 발언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탄약을 제공하는 것은 명백한 유엔 제재 결의 위반이고 또 유럽과 나토는 물론 전 세계에 굉장히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행위니까 그런 것을 약간 물타기 형식으로 가기 위해서 이런 우주 쪽으로 돌려서 얘기할 수 있는 거죠.”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자국 방송인 ‘로시야’와의 인터뷰에서 “유엔 대북 제재는 북러 관계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러시아와 북한 두 나라는 양국 인민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고 있고 양국 관계는 제3국의 관심사가 돼서는 안된다”며 “북러 양국은 기술 협력 상호 작용과 안보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약 4년 5개월 만입니다.

김 위원장은 방러 기간 중 하바롭스크주 산업도시 콤소몰스크나아무레의 수호이 전투기 생산공장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