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러시아가 정상회담 후속 작업으로 이달 중 경제공동위원회를 열고 경제협력 방안들을 구체화할 전망입니다.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포탄 공급 규모가 수억 달러어치에 이른다는 추산이 나오면서 극심한 어려움에 처한 북한 경제에 미칠 영향이 주목됩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과 러시아는 이달 중 평양에서 10차 북러 경제공동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양국 간 장관급 최고 경제협력 증진 협의체인 북러 경제공동위원회는 1996년부터 총 9차례 열렸고, 2000년 이후에는 정상회담 개최와 연계해서 진행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북러 경제공동위원회는 앞서 지난 9월1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러 두 나라가 군사 분야는 물론 경제 분야의 광범위한 협력 의지를 밝힌 이후 열리는 것이어서 지지부진했던 양국 경협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지 주목됩니다.
9월 북러 정상회담에는 러시아 경제·산업 분야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다수 배석하고 북한 측에선 경제를 총괄하는 오수용 노동당 경제부장이 김 위원장을 수행했습니다.
또 윤정호 북한 대외경제상이 9월 30일 러시아를 실무방문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입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정상회담 분위기로 봤을 땐 무역 외에도 관광 농업 물류 이런 다양한 분야가 협의된 것 같고 아마 후속 경제공동위원회를 통해서 이걸 어떻게 구체화하고 상호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행해 나갈 것인가 이런 것들이 논의가 될텐데 결국은 제재 문제와 투자를 또 어떻게 하느냐, 그런 부분에선 좀 더 두고봐야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전과는 다를 가능성이 높다.”
한국 통일부는 10차 북러 경제공동위원회 예상 의제에 대해 “러시아의 대북 식량 지원과 나진-하산 중심의 러북 경제 물류 협력 외에 1∼9차 위원회에서 논의된 다양한 의제를 다룰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파견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포탄 등 재래식 무기를 공급하는 대가로 식량과 에너지 등을 최대한 확보하려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은 1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북한이 8월 초부터 100만 발 이상의 포탄을 러시아로 반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서 두 달 이상 사용 가능한 양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워싱턴D.C. 소재 한미경제연구소(KEI) 트로이 스탠거론 선임국장은 1일 서울에서 열린 국제포럼에서 북한이 연간 수백만 발의 재래식 포탄을 러시아에 제공할 잠재력이 있다며, 152mm 포탄의 경우 한 발 당 300~600 달러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북한이 100만 발의 포탄을 러시아에 넘겼다면 최대 6억 달러를 받을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현금 대신 당장 시급한 밀과 같은 곡물이나 석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들을 대가로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선임연구위원] “과거 북한이 무기 판매로 10억 달러 정도 벌었었는데 그걸 거의 대체하는 수준의 상당한 규모가 되는 것이고 그리고 실제 곡물이나 석유, 가스 등을 저렴한 가격으로 받게 될 경우 여기에 대한 재정 부담이 상당히 줄어들기 때문에 전체적인 재정 운영에 있어서 훨씬 더 원활해질 가능성이 높아요.”
북한의 작년 대외교역 규모는 15억9천만 달러였고 이 가운데 수출은 1억 6천만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거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니시노 준야 일본 게이오대 교수는 1일 서울에서 열린 국제포럼에 참석해 장기적 관점에서 북한에 중요한 것은 러시아보다 중국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니시노 준야 교수] “러시아 입장에서도 북한 입장에서도 현재의 우리가 보고 있는 북러 관계 심화는 어떻게 보면 러시아의 어려움에서 나오는 결과이며 어디까지나 일시적이고 편법적 관계다,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반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소모적 장기전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북한의 군수 생산 능력을 매개로 한 북러 간 경제협력이 상당 기간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옛 소련이 붕괴되면서 연방을 구성했던 15개 공화국 간 분업구조가 해체돼 러시아로선 전쟁이 끝나더라도 북한을 군수보급기지로 활용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러시아와의 경제협력 구조가 만들어지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 외교적 자율성을 확대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중국에 전적으로 의지했던, 예를 들면 대외적 경제관계에서 지금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95%가 넘거든요. 이걸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거든요. 특히 생명줄에 해당하는 식량 에너지 비료 등을 러시아가 제공한다면 북한으로선 대중 의존도를 줄일 수 있고.”
전문가들은 조기에 구체화할 수 있는 또 다른 북러 경협 방안으로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파견을 꼽고 있습니다.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노동자 해외 파견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를 위반하는 사안이지만 러시아는 이를 무시할 가능성이 크다며, 러시아 내 건설 노동력 수요가 큰 탓에 오히려 북한 노동자들을 이전보다 더 확대해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북러 간 관광 교류나 나진-하산 물류 협력 등 대부분의 다른 사업들은 러시아가 전쟁 중인데다 투자와 인프라가 부족해 추진에 제약이 많다고 보고 있습니다.
통일부는 “그동안 경제협력 사업도 진전되지 못한 실정, 김정은 집권 이후 러북 간 교역 규모 축소, 러시아가 1990년대 이후 시장자본주의에 적응해 온 점을 고려할 때 러북 간 경제협력 확대는 제약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