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경제공동위 “협력 활성화” 의정서 체결… 전문가 “불법 군사협력 희석 의도”

윤정호(테이블 오른쪽 앉은 이) 북한 대외경제상과 알렉산드르 코즐로프(왼쪽 앉은 이) 러시아 천연자원부 장관이 15일 평양에서 의정서에 서명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다음날 공개한 사진.

북한과 러시아는 정상회담 후속 조치로 경제공동위원회를 열고 무역과 과학기술 등 협력 방안에 합의했습니다. 북러간 이번 회의는 불법적인 군사 협력에 대한 국제사회 비난을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북러 양국이 15일 평양에서 10차 경제공동위원회 회의를 열고 의정서에 조인했다고 16일 보도했습니다.

북한 측에선 윤정호 대외경제상이, 러시아측에선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천연자원부 장관이 각각 위원장으로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회의에서 “9월 진행된 양국 수뇌의 회담에서 이룩된 합의에 따라 무역과 경제, 과학기술 등 각 분야 다방면적인 쌍무교류와 협력사업을 활성화하고 확대해나가기 위한 대책적 문제들이 구체적으로 토의 확정됐다”고 전했습니다.

북한 매체들은 그러나 의정서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윤 대외경제상과 코즐로프 장관의 회담도 별도로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양국 친선협조 관계가 새로운 전략적 높이에 올라선 데 맞게 두 나라 정부 간 무역경제와 과학기술 협조를 더욱 폭넓게 촉진시키기 위한 문제들이 토의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북러 경제공동위원회는 양국 간 장관급 경제협력 증진 협의체로, 1996년부터 총 9차례 열렸습니다.

이번 10차 회의는 지난 9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개최키로 합의된 데 따라 열린 겁니다.

북러 양국은 또 앞으로 3년간 체육 교류를 활성화하는 내용의 교류계획서를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러시아 대표단 일원으로 방북한 올레그 마티신 체육부 장관과 김일국 북한 체육상 사이의 회담이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렸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회담에서 북러 체육부문 교류와 협력을 확대 강화하기 위한 실천적 문제들이 협의됐다면서 양측이 ‘2024∼2026년 교류계획서’에 조인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의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은 북러가 비군사 분야에서 다방면의 협력을 부각하면서 양국의 불법적인 군사 협력에 대한 국제사회 비난을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김형석 전 차관] “북러 간에 있어서 이것은 정상적인 국가 간의 그런 프로토콜에 의해서 진행된다는 모양새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번에 북러 간에 이런 공동위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9일 서울에서 박진 한국 외교부 장관과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군사 장비를 제공하는 것 뿐 아니라 러시아가 북한의 군사 프로그램을 위해서 기술적 지원을 하는 것도 보고 있다”면서 북러 군사 협력은 미한 양국의 매우 큰 우려 사항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마리아 자카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러시아와 북한 사이 ‘불법적’ 군사기술 협력이 이뤄진다는 ‘서방 집단’의 비난은 사실무근”이라며 “북한 등 이웃국가들과 우호 협력 관계를 심화시키는 것을 막지 못한다”고 반박했습니다.

북한이 구체적인 논의 내용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이번 회의에선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곡물과 에너지 지원, 광물 교역, 라진〮하산 중심의 경제 물류 협력,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파견 문제 등 경제협력 방안들이 다각적으로 논의됐을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탄약 공급에 상응한 러시아의 다양한 대북 지원 방식들이 논의됐을 것이라며 과학기술이 주요 협력 분야로 언급된 것은 러시아의 첨단 군사 기술이 북한에 제공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풀이했습니다.

[녹취:조한범 선임연구위원] “과학기술 부분이 사실은 정찰위성을 포함한 러시아의 첨단 군사 기술일 가능성이 높거든요. 왜냐하면 북한과 러시아가 과학기술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러시아가 북한이 필요로 하는 군사분야의 과학 이런 분야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고 그 부분이 과학기술이라고 표현된 것 같거든요.”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재래식 무기와 탄약 확보가 절실하기 때문에 북한과의 경제 협력도 그만큼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북러 양국은 지난 7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의 방북을 시작으로 9월에 정상회담, 9월말 윤정호 대외경제상의 모스크바 방문, 10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평양 방문 그리고 이번 경제공동위원회 개최 등을 이어가며 밀착에 속도를 내는 양상입니다.

통일연구원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북러 양국은 미국과의 대치 전선이 오래갈 것이라고 보고 대미 견제 차원에서 중장기적 관점을 갖고 밀착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체육 분야에서의 장기 교류 계획서를 체결한 것도 북러가 다방면에서 긴 안목으로 관계 강화를 도모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는 게 홍 선임연구위원의 설명입니다.

[녹취:홍민 선임연구위원] “중장기적 전략적 일치를 어느 정도 고려한다면 러시아도 상당 부분 그냥 단기적 이해에 맞춰서 하는 시늉만 하기 보다는 상당 부분 의미 있는 장기 계획을 같이 짤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예를 들면 라진 하산을 비롯해서 주요하게 같이 공동 개발할 내용이라든가 이런 부분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거든요.”

이와 함께 북한은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부각시킴으로써 경제난과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는 주민들의 동요를 막고 최고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을 이끌어 내려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북한이 구체적인 합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대내외 매체를 통해 북러경제공동위원회 소식을 널리 알렸다며 내부통치용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임을출 교수] “북중 교역도 상당히 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또 북러 간 경제협력 확대 가능성 그걸 아주 명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주민들에게 민생 개선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고 그게 결국은 정권에 대한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결국 중요한 대내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렇게 봐야 되겠죠.”

임 교수는 북러 간 밀착이 광범위하게 전개되는 양상이라며 푸틴 대통령의 연내 방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