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시간입니다. 저는 오종수입니다. 세계는 지금 ‘자동차 혁명’을 맞고 있습니다. 전기 자동차 생산과 판매가 급증하고 있는데요. 유명 자동차 업체 중에서도 수년 내 기름을 쓰는 내연기관 차량 생산을 중단하고, 전기차만 만들겠다는 선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자동차 전문기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앨라니스 킹(Alanis King) 교통 담당 부편집장을 초대했습니다.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기자) 안녕하세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VOA 한국어 방송 청취자들께 자기소개를 해주실까요?
킹) 네, 저는 앨라니스 킹입니다. 자동차 전문기자인데요.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의 교통 담당 부편집장을 맡고 있습니다. 편집장 아래 각 산업 분야가 있고, 그 책임자가 있고, 또 소속 기자, 그리고 전문가 필진이 있는데요. 교통 담당 부편집장은, 멋지게 말하면, 자동차와 교통수단에 관련된 기사를 모두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하하하. 직접 기사도 꾸준히 쓰고 있고요.
기자) 자동차 전문기자 중에 여성이 드물잖아요. 이 분야를 택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킹) 네. 제가 열두 살 때 즈음에, 어머니가 (미국의 유명한 자동차 경주대회인) 나스카(NASCAR) 무료 입장권을 가져오셨어요. 그때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미국에 큰 경기 침체가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저희 집도 형편이 많이 안 좋아졌어요. 가족끼리 휴가를 가거나, 멋진 곳으로 외출할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약간 삐친 상태였는데, 어머니가 표를 보여주시며, “우리 나스카 보러 가지 않을래” 하고 물으셨어요. 그런데 저는 자동차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어린 저한테 그다지 끌리는 제안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며칠 동안 고민하다, 따라가 보기로 했어요. “좋아요, 한번 가보죠”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수동적으로 방문한 나스카 경기장에서, 제 인생이 결정된 거예요.
기자) 경기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킹) 일생에 가장 놀라운 장면을 봤습니다. 각양각색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고성능 자동차들, 그것들이 뿜어내는 놀라운 스피드(속도), 그리고 웅장한 배기음, 모든 게 너무너무 멋졌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경기장에 갔는데, 자동차의 매력에 푹 빠져 버린 거예요. 그때 “아, 이거다! 내가 평생 할 일은 이거야” 생각했어요. 무언가 자동차에 관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자동차를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동차에 관한 최신 정보에 갈증이 생겼습니다. 그 목마름을 충족 시켜 줄 방법은 최신 정보를 직접 살펴보고 대중에게 전달하는 직업, 바로 기자더라고요. 그래서 자동차 전문기자가 된 겁니다.
기자) 미국 생활에서는 특히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잖아요. 미국인들에게 자동차의 의미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킹) 연령대별로, 지역별로, 또 소득 수준별로 다양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올드 카(old carㆍ연식이 오래된 차)’를 정비ㆍ운행하는 취미를 가진 분들이 많죠. 특히 60년대, 70년대에 생산된 미국 차들은 그 시대 사회상을 고스란히 반영한 상징이자 추억이니까요. 그래서 멋진 올드 카가 길에 지나가면,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며 감탄합니다. 또 고소득층은 남들에게 없는, 멋스럽고 희귀한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즐깁니다. 자동차가 곧 라이프스타일(생활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또 10대 청소년들은 차를 개조해서 더 빠르고, 더 큰 힘을 내도록 친구들과 경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딱히 자동차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대도시 지역에 살지 않는 이상, 미국에선 운전이 필수입니다. 그래서 남녀노소가 함께 하는 게 미국만의 자동차 문화라고 할 수 있어요.
기자) 미국 시장에서 ‘현대’나 ‘기아’ 같은 한국 차들의 판매도 꾸준합니다. 미국인들은 한국 차들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킹) 아, 그것참 좋은 질문입니다. 최근 한국 차들이 미국 자동차 문화에 아주 흥미로운 변화를 주고 있거든요. 한 20~30년 전만 해도, 미국 소비자들은 한국 차를 잘 몰랐어요. 미국 차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인 시절이었습니다. ‘도요타’ 같은 일본 차가 품질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일부 생기기 시작했고요. 그러던 미국 소비자들에게, 한국 차들이 파격적인 보증 제도를 들고 나섰습니다. 고장이 나면, 업체 측이 책임지고 고쳐주는 기간이 미국 차나 일본 차보다 훨씬 길었어요. 소비자가 떠맡을 비용 부담이 적었던 겁니다. 그래서 한국 차 판매량이 크게 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차들의 궤적(trajectory)이 크게 달라졌어요. 싼값이나 긴 보증 기간 때문에 사는 비중이 작아졌습니다. 이제는 제품 자체가 경쟁력이 있어요.
기자) 한국 차를 보는 미국인들의 인식이 바뀐 겁니까?
킹) 그렇습니다. 독자와 전문가들의 반응이 눈에 띄게 개선됐어요. 현대와 기아가 요즘 ‘정말 멋진 차를 내놓는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특히 기아 ‘텔루라이드’나 ‘스팅어’ 같은 차는 제가 봐도 참 잘 만들었어요. 미국이나 일본, 독일 명차에 뒤지지 않는 품질을 갖췄습니다. 저희 집 식구들도 한국 차를 탑니다. 어머니 차는 현대 ‘제네시스’, 제 차는 ‘엘란트라’예요.
기자) 지금 자동차 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전기차가 아닐까 합니다. 내연 기관 엔진에서 전기 모터로 동력원이 전환되고 있잖아요. 어떻게 보십니까?
킹) 전기차로 가는 혁명이 당초 업계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배기가스에 관한 정부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서 그래요. 특히 캘리포니아주 정부가 이런 흐름에 앞장서고 있죠. 2035년이나 2040년쯤에는 내연기관 차를 허용하지 않는 지역이 세계 곳곳에서 늘어날 겁니다. 전기차로 가는 흐름을 되돌릴 수 없는 거예요. 따라서,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여기에 맞춰가야 합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전기차 생산과 수요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질 겁니다.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 연방 정부 관용차량들을 미국산 전기 자동차로 교체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변화의 흐름을 미국이 주도하겠다는 의지로 주요 언론이 평가하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킹) 긍정적으로 봅니다. 미국 업체들이 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 조치가 힘을 보탤 겁니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전기차 분야에서 앞서고 있잖아요. 대표적인 게 ‘테슬라’입니다. 이 회사는 처음부터 전기차만 만들었어요. 게다가 이전에 ‘전기차’ 하면 떠올랐던 다소 이질적인 디자인이 아니라, 정말 잘 빠진, 예쁜 자동차를 내놓고 있습니다. 테슬라의 인기를 보고, 또 다른 전기차 전문ㆍ생산 판매 업체들이 미국에서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포드’나 ‘제너럴모터스(GM)’ 같은 기성 자동차 업체들도 전기차 개발에 나섰잖아요. 그 결과,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고요.
기자) 이렇게 빠른 변화에 걸림돌은 없을까요?
킹) 물론 있습니다. 소비자들의 저항이 상당해요. 우선, 전기차에 관해 ‘주행거리 불안감(range anxiety)’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직은 전기 충전소가 주유소만큼 많지 않으니까요. 배터리를 완전히 충전해도, 얼마 주행하지 못한다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특히 기온에 따라 배터리 효율이 불안정할 수 있고, 차내에서 전자 장비를 많이 사용하면 배터리가 금방 닳는다는 우려가 있어요. 게다가 미국에서는 전기차에 대해 심리적인 거부감도 무시 못 할 만큼 존재합니다.
기자) 전기차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은 어떤 겁니까?
킹) 미국인들은 ‘큰 차’, ‘큰 트럭’, ‘큰 SUV(스포츠 다목적 차량)’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어요. 미국은 땅도 넓고 기름값도 싸니까요. 굳이 전기차를 타야 할 필요를 못 느낍니다. 이런 소비자들의 불안과 저항, 거부감을 해소하려면, 전기차를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만한 기술 개발과 홍보, 그리고 차종 다양화가 필요합니다. 기술 개발은 업계의 몫이고, 전기차의 장점과 환경 보호 효과에 관한 홍보는 정부 당국이 함께 노력할 사항입니다.
기자) 그동안 자동차 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가장 좋았던 일은 뭡니까?
킹) ‘포뮬러 원(Formula One- F1)’에 첫 취재 자격을 얻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F1은 세계 최고 권위의 자동차 경주대회일 뿐만 아니라, 유력 자동차 업체들이 최신 기술을 시험하는 공간이거든요. 그래서 아무나 현장을 취재할 수 없습니다. 제가 자동차 보도에 능력을 인정받아, F1 취재 기자단에 이름을 올렸을 때 정말 기분 좋았어요.
기자) 그럼, 기자 생활을 통틀어 가장 아끼는 기사는 어떤 건가요?
킹) 음..., 특정 기사를 하나만 꼽기는 어렵고요. 어떤 주제에 관해, 전문가들의 식견을 잘 끌어내서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기사를 쓸 때 보람을 느낍니다. 작년에 그런 기사를 많이 썼는데요. 코로나 사태 이후 연방 우정국이 인력과 장비 운용 지침을 바꿨어요. 그 과정에서 집배원들이 타는 차량 운행을 축소했습니다. 그 부분을 상세히 보도해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요. 미국 대다수 스포츠 리그가 중단됐는데, 나스카 자동차 경주가 가장 먼저 경기를 재개했습니다. 이 이야기도 제가 단독으로 심층 보도했어요. 또한 방역 수칙 관련해서, 나스카 주변에서 어떤 일이 허용되고 금지되는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 자세히 썼습니다. 독자들이 많이 칭찬해주셨어요.
기자) 그럼, 언론계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뭡니까?
킹) 하아…, 순간순간 어려운 일들이 계속 있어요. 저를 비롯한 여성들을 제대로 존중해주지 않는 분위기가 세거든요. 이 분야에 오래 있었는데도 그런 걸 계속 경험합니다.
기자) 자동차 업계에는 특히 남성이 많다 보니, 그렇겠군요?
킹) 맞습니다. 그래도 저는 운이 좋았어요. 텍사스대학교 언론홍보학과를 다닐 때 교수님께서, ‘잴러프닉(Jalopnik)’이라는 웹사이트를 소개해주셨습니다. 제가 자동차를 좋아하는 걸 아시는 분이셨거든요. 자동차 분야에서 가장 이름난 인터넷 매체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가 자동차 업계에서 흔치 않은 여자지만, 보도 활동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신 거예요. 그런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졸업 후 열심히 일했고, 유력 매체의 부편집장을 맡은 여기까지 왔습니다.
기자)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봤을 때, 미국 언론계의 인적 구성이나 보도 내용에서 ‘양성평등’이 얼마나 구현되고 있다고 보십니까?
킹) 일단 저희 편집국 내부 구성원들을 보면, 여성이 생각보다 많아요. 남녀 성별 비율이 어림잡아 절반씩입니다. 과거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진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직 간부를 비롯한 고위 직책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요. 여성의 비율이 현격히 떨어집니다. 전체 비중은 반반인데, 높은 사람은 남성이 훨씬 많다? 이건 말이 안 되죠.
기자) 간부급에 여성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말이군요?
킹) 네. 조직의 전체 인원이 ‘남녀 50대 50’이라고 해서 균형이 맞는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중요 의사 결정권을 가진 위치에 양성을 동등하게 진출시키는 노력이 아직도 많이 필요해요. 보도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성들이 좋아하는 차종이 있는가 하면, 여성들에게 인기 높은 차종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동차 관련 매체들의 보도 내용은 남성 취향에 쏠려있어요. 이걸 바로잡아야 소비자들의 성향이 올바르게 반영될 것이고, 결국 자동차 업계 전반의 발전으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이제 ‘언론 자유’ 이야기를 해보죠. 미국 사회의 언론 자유도를 1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면, 몇 점이나 주시겠습니까?
킹) 음, 숫자 하나를 집어내서 점수를 매기긴 좀 어렵습니다. 언론 자유를 얘기하려면, 여러 요인들을 평가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정부의 정책, 그리고 민간 분야의 여론 형성 과정, 이 두 가지 측면을 포괄적으로 봐야 합니다. 저는 업계를 취재해왔으니까, 민간 분야를 살펴본 경험을 말씀드릴게요. 자동차 관련 매체에는 기사인지 광고인지 잘 구분이 안 되는 내용이 지면을 차지할 때가 많습니다. 기업 측과 매체 측이 협력하는 이런 콘텐츠(내용물)가 불법은 아닙니다만, 너무 많아지면 시장 질서를 왜곡한다고 봅니다. 자금력이 강한 업체가 자기 제품에 대해 유리한 여론을 만들고, 더 실적을 올리기 때문이에요. 기술력은 있지만, 자금이 모자란 업체는 거기서 뒤처지고요. 결국 품질이 아니라, 홍보에서 승부가 좌우되는 겁니다. 이런 상황은, 지나친 언론 자유의 부작용이라고 봅니다.
기자)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는 뭡니까?
킹) 자동차 문화를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기자로 남고 싶습니다. 아까 이야기한 대로, 자동차는 미국에서 남녀 모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물건이거든요. 남성 취향으로 치우쳐 있는 자동차 문화 전반과 업계 관행 등을, 보다 양성이 평등한 방향으로 개선하는데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기자)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북한에서 VOA를 듣는 분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에게,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에 관해 어떤 말을 해주시겠습니까?
킹)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사안 모두, 아직 세계적으로 갈 길이 멉니다. 특히 ‘양성평등’을 실현하려면 지도층에 다양성을 부여해야 합니다. 각 나라와 사회를 이끄는 사람들 가운데 여성의 비중을 높여야 해요.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여성이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여성이지만, 주요 국가 지도자들이 여전히 남성 일색입니다. 인구의 절반이 여성인데도 말이죠. 지역 사회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국가에서, 지도층에 여성이 더 많이 진출하도록 관심을 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오늘은 앨라니스 킹 자동차 전문기자와 이야기 나눴습니다. 지금까지 오종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