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워싱턴 DC 한국전쟁 기념공원에서 열린 ‘추모의 벽’ 제막식에 참석했던 전사자 유족들 가운데 북한에서 유해 봉환을 받은 가족들은 마침내 ‘종결’을 얻었다며 안도감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유해를 찾지 못한 유가족들은 아쉬움을 토로하며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고 말했습니다. 박승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오클라호마 출신 빌리 로저스 병장은 미 육군 보병 32사단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1950년 12월 2일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그의 나이 만 19세였습니다.
처참한 전투 속에 시신은 수습되지 못했고 가족들은 70년 가까이 그를 그리워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020년 4월, 가족들은 미 국방부 전쟁포로 실종자 확인국(DPAA)으로부터 로저스 병장의 유해가 감식 결과 확인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의 유해는 2018년 8월 북한이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미국에 전달한 55개 상자 속에 포함돼 있었습니다.
로저스 병장의 가족은 70여년 만에 장례를 치르고 그를 워싱턴 인근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했습니다.
지난 26일 워싱턴 한국전쟁 기념공원에 세워진 추모의 벽 유족 공개 행사를 찾은 로저스 병장의 여동생은 아직 가슴이 저미지만 오랜 아픔이 마침내 종결된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매릴린 로저스] “It makes it more poignant, I guess, is the word. We had no idea where he was or what ever happened to him but now he is at peace. It’s a closure for us.”
그동안 로저스 병장이 어디에 있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이제는 그가 평온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34세 나이로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하비 스톰스 소령도 지난 2019년에야 북한에서 유해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지난해 7월 네 아들과 며느리, 손자, 증손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됐습니다.
스톰스 일가는 그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맞춰 입고 26일 추모의 벽을 찾았습니다.
며느리 재키 스톰스 씨는 지난해 스톰스 소령의 안장을 마친 뒤 추모의 벽을 마주할 수 있어서 한결 가벼운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온 가족이 지난 70년 가까이 가질 수 없었던 ‘종결’이 마침내 왔다는 것입니다.
[녹취: 재키 스톰스] “It brings closure that the family did not have for nearly 70 years.”
손녀 제니퍼 씨는 유해를 찾기 전까지는 그냥 “전쟁 중에 실종된 할아버지”라고만 막연히 알았으며, 아무런 정보가 없어 가족으로서 그의 실종에 대한 ‘종결’의 느낌을 갖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제니퍼 버듀고] “Harvey was just a grandfather who served in the Korean War and MIA. We didn’t have any closures. We didn’t really know anything about it. But with having his remains there’s been a lot more studies done, a lot more information come about to our family.”
그러나 유해가 돌아온 후 분석을 통해 온 가족이 할아버지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 실종자 가운데 유해를 되찾지 못한 유족들의 마음은 복잡합니다.
추모의 벽 행사를 위해 워싱턴 DC를 방문한 수 바우든 씨는 아버지가 생전에 애타게 기다리던 삼촌의 유해를 끝내 찾지 못한 아쉬움이 다음 세대까지 전해졌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수 바우든] “I appreciate all the work the DPAA has done to help bring some closure to families. We’ll probably never have closure but now I feel like it’s my responsibility of that next generation since all 12 of the Pillsbury clan are all gone now.”
가족에게 ‘종결’을 가져다 주기 위한 DPAA의 노고에 감사하지만 아마도 자신들은 영원히 ‘종결’을 얻지 못할 것이며, 삼촌과 아버지 세대의 12남매가 모두 타계한 이상 유해 발굴은 자신과 다음 세대의 책임으로 남았다는 것입니다.
바우든 씨의 삼촌 대니얼 필스버리 공군 일병은 1952년 타고 있던 정찰기가 동해상에 추락해 시신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한국전쟁 미군포로 실종자 가족연대’를 이끄는 리처드 다운스 씨도 전투기 조종사였던 아버지의 소식을 70년째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할 다운스 소령은 26세 때 참전했다가 1952년 1월 북한 지역에서 작전 중 실종됐습니다.
다운스 씨는 추모의 벽 건립이 기쁜 일이지만, 유해 발굴 작업이 멈춰 있다며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리처드 다운스] “What we need to do is we need to have the administration put forth the policy that will open up NK to discussions on how to renew the recovery missions inside NK.”
북한 내에서 유해 발굴 작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북한을 움직일 만한 정책을 미국 행정부가 내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DPAA에 따르면 북한은 미국 측의 거듭된 대화 시도에도 불구하고 2019년 3월 이후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가장 최근에도 미국이 한국 정부와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지원 등 인도주의 지원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고 켈리 맥키그 DPAA 국장이 26일 밝힌 바 있습니다.
이날 DPAA는 한국전 미군 전사자 유가족 등을 대상으로 개최한 ‘연례 정부 설명회’에서 신원 확인이 안된 한국전 관련 미군 실종자 및 전사자는 모두 8천 156명이며, 현재 618명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전했습니다.
또 북한이 2018년 송환한 55상자에는 약 250여 구의 유해가 들어있었으며, 현재까지 미군 전사자 82명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VOA 뉴스 박승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