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북동부 전선에서 수세에 몰렸던 러시아군이 하르키우 주에서 사실상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이고르 코나셴코프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은 "바라클리아와 이지움에 배치된 부대를 동부 도네츠크로 재편성하기로 결정했다"고 10일 밝혔습니다. 이어서 "돈바스 해방이라는 '특별 군사 작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도네츠크 방면을 강화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러시아 국방부의 이날 발표는 우크라이나군이 동북부 바라클리아에 이어 쿠피안스크까지 수복하고 이지움을 포위하자, 전열을 재정비하고 동부 도네츠크 주 점령지를 지키기로 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소셜미디어에는 지난 9일부터 바라클리아를 비롯한 거점도시에 진입한 우크라이나군을 현지 주민들이 환영하는 영상이 속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지움과 바라클리아는 하르키우 주 내 핵심 요충지입니다. 특히 이지움은 도네츠크 주 슬라뱐스크로 향하는 길목으로, 러시아가 지난 4월 점령한 뒤 돈바스 공세를 위한 보급 기지로 활용해왔습니다.
이에 따라 이번 철수 발표는 사실상 러시아가 하르키우 주를 포기한 것으로 유럽 매체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임명한 하르키우 주 행정부 인사는 이날(10일)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러시아로 대피하라"고 권고했다고 타스 통신이 보도했습니다.
이지움 행정부 관계자도 "상황이 심각하다"고 밝히고 "현지 주민들의 러시아 영토로 대피가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앞서 우크라이나는 동북부 철도 교통 중심지인 쿠피안스크를 장악했습니다. 이로써 이지움에 주둔한 최대 1만 명에 달하는 러시아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게 됐습니다.
AP와 로이터 통신 등 주요 매체들은 이 같은 상황에 관해, 개전 초기 수도 크이우(러시아명 키예프) 수성에 이어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성과이자 러시아의 가장 큰 패배라고 평가했습니다.
■ 젤렌스키 "러시아군 철수, 옳은 선택"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 군 총사령관은 11일, 이달 들어 수복한 영토가 3천 ㎢가 넘는다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밝혔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날(10일) 밤 영상 연설에서 "9월 초부터 약 2천㎢가 해방됐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측이 밝힌 영토 탈환 면적이 하루 만에 1천㎢ 늘어난 것입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군의 철수는 옳은 선택"이라며 "우크라이나에 점령자가 설 자리는 없다"고 10일 연설에서 말했습니다.
이와 관련,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이달 들어 우크라이나가 수복한 영토가 2천500㎢에 달한다고 분석했습니다.
마크 허틀링 전 미군 유럽 사령관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 포위를 위해 훌륭한 기동 작전을 펼치고 있는 반면 러시아군은 거의 대응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다"고 전날(9일) 트위터에 적었습니다.
서방 언론은 오래 정체된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이 속도를 냄에 따라 전쟁이 새 국면에 들어설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 푸틴 "자포리자 원전 공격 재앙적 결과 우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1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전문가를 파견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두 정상은 이날 통화에서 자포리자 원전의 안전 문제를 논의하고 이같이 뜻을 모았다고 크렘린궁과 엘리제궁이 동시에 발표했습니다.
크렘린궁은 성명에서 "푸틴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방사성 폐기물 저장고를 포함한 자포리자 원전 시설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주기적인 공격이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엘리제궁은 "마크롱 대통령이 IAEA 전문가 파견단을 가능한 한 빨리 현장에 파견하는데 지지를 표명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엘리제궁은 또한, 자포리자 원전 일대에 배치한 러시아군 중화기와 무기들을 철수하고 보호구역 설정에 관한 IAEA의 권고에 따를 것을 푸틴 대통령에게 마크롱 대통령이 요구했다고 전했습니다.
앞서 자포리자 원전을 둘러본 IAEA 조사단은 보고서를 내고, 원전 시설과 주변 지역에서 군사행동을 할 수 없도록 보호구역을 설정할 것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아울러 마크롱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뿐 아니라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과도 계속 접촉하고 향후 며칠 안에 이 문제에 대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다시 대화할 것이라고 이날(11일) 엘리제궁은 밝혔습니다.
이날 두 정상의 통화는 마크롱 대통령의 요청으로 성사됐다고 유럽 매체들은 전했습니다.
■ 원전 운영 완전 중단
우크라이나 국영 원전 운영사 에네르고아톰은 이날(11일) 원자로 가동을 완전히 중단했습니다.
에네르코아톰 측은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이날 오전 3시 41분(현지시각)부터 자포리자 원전에서 가동 중이던 마지막 원자로 6호기를 우크라이나 전력망에서 차단했다고 밝혔습니다.
에네르고아톰은 이어 6호기 가동을 중단해 가장 안전한 상태인 냉온정지 상태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마지막 남은 원자로 가동을 전격 중단한 것은 원자력발전소 전체의 전력 차단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전력망 추가 손실 위험이 여전히 높기 때문이라고 에네르고아톰은 설명했습니다.
이같은 조치는 포격이 잇따르며 사고 위험성이 꾸준히 지적돼온 자포리자 원전을 폐쇄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된 지 하루 만입니다.
일단 안전한 상태로 가동이 중단됐지만, 교전이 계속될 경우 방사성 물질이 유출될 수 있는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IAEA 측은 이와 관련 "상황을 매우 우려스럽게 보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자포리자 원전은 유럽 최대 규모 원자력 발전소입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침공 9일 째였던 지난 3월 4일, 해당 시설을 접수했습니다.
현재 원전의 통제권은 러시아군이 갖고 있지만, 실무 운영을 맡은 사람들은 에네르고아톰 소속 등 우크라이나 측 인력입니다.
원전 시설과 주변지역에 꾸준히 포격이 잇따르며 사고 위험성이 지적돼온 상황입니다.
■ 푸틴 "우크라이나, 서방 제공 무기로 민간 시설 공격"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11일) 통화에서 글로벌 식량 안보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크렘린궁은 전했습니다.
크렘린궁 발표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유럽연합(EU)이 아프리카, 중남미, 중동으로 가는 러시아산 식량과 비료 공급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또한 우크라이나군이 서방이 제공한 무기를 사용해 동부 돈바스 지역의 민간인 시설을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중재 역할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날(10일)에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19일에도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하고, 자포리자 원전에 IAEA 조사단 파견을 허용한다는 입장을 끌어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앞서 지난 2월 초 모스크바를 직접 방문해 푸틴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