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0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합니다.
이번 회의에서는 크름대교(케르치해협대교) 폭발 사건 등 주요 안보 현안을 논의할 것으로 러시아 매체들이 9일 전했습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황의 수세를 반전시키기 위한, 전술핵 사용 등에 관한 '중대 결정'이 이뤄질지 우크라이나 언론은 주목하고 있습니다.
최근 푸틴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전보장회의 부의장 등 러시아 핵심 당국자들은 꾸준히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해온 바 있습니다.
특히 러시아 본토와 크름반도(크림반도)를 잇는 크름대교가 푸틴 대통령의 70세 생일 다음날 공격당해 일부 구간이 붕괴된 사실을 모욕으로 받아들인 러시아 내 강경파 인사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결정적인 조치'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 크름대교 폭발 대응 '결정적 조치' 요구
앞서 지난 8일 크름대교에서 트럭 폭탄이 터졌고, 철도로 운송되던 유조차에 불이 옮겨붙어 폭발하면서 다리 일부 구간이 붕괴했습니다.
이같은 사건이 발생한 몇시간 뒤, 올렉시 다닐로우 우크라이나 국가안보보좌관은 불타는 교량 영상과 함께 '대통령님,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부르는 옛 미국 배우 마릴린 먼로의 영상을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이같은 상황에 관해, 친러 극단주의 텔레그램 채널 '리바르'는 "사건에 대응해 '결정적 조치'를 내려야 한다"거나 "국민은 복수를 요구하고 있다"는 강경파의 메시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채널은 얼마전 러시아 중부에서 대형 화물열차가 신형 병력수송차량과 장비를 싣고 우크라이나 국경 쪽으로 이동하는 영상을 게시한 바 있습니다. 해당 열차는 핵 장비 유지·관리와 수송, 관련 부대 배치를 담당하는 조직과 연계돼 있다고 영국 신문 더 타임스가 폴란드의 국방 전문 분석가를 인용해 당시 보도했습니다.
■ 푸틴 "우크라이나 특수기관 소행"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9일, 크름대교 일부 구간 폭발·붕괴 사건을 '테러행위'로 규정하고 책임을 규명할 것을 사건조사위원회에 지시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알렉산드르 바스트리킨 조사위원장으로부터 초동수사 결과를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크름대교 폭발을) 기획한 자들과 감행한 자들과 배후에서 지원한 자들은 우크라이나 특수기관이란 것"을 확인했다며 이같이 조치했습니다.
이어서 "이번 일은 의심의 여지 없이, 러시아의 주요 민간 인프라를 파괴하려는 테러행위"라고 강조했습니다.
바스트리킨 위원장은 용의자들의 신상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파악한 상태라고 이날 푸틴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아울러, 폭발한 트럭은 불가리아, 조지아, 아르메니아, 러시아령 북오세티야와 크라스노다르를 거쳐 크름대교에 진입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설명했습니다.
■ "직접 패망시킬 것" 우크라이나에 보복 예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전보장회의 부의장은 이날(9일) "이번 범죄(크름대교 폭발)을 감행한 것은 실패한 국가인 우크라이나"라고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 점령지의 친러 매체 인터뷰에서 주장했습니다.
이어서 "이 사건은 범죄집단인 키예프(크이우: 우크라이나 수도) 정권이 저지른 테러이며 파괴행위"라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러시아의 유일한 대응은 테러리스트들을 직접 패망시키는 것일 수밖에 없다"면서 적극적인 보복 방침을 밝혔습니다.
■ 에너지 인프라 보안 강화령
이에 앞서 푸틴 대통령은 크름대교와 크름반도 일원의 에너지 인프라에 보안 강화령을 발동했습니다.
크름대교 폭발 사건 당일인 8일, 푸틴 대통령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하고, 연방보안국(FSB)에 관련 업무 조율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보안 강화 대상은 선박을 포함해 케르치해협을 건너는 모든 교통 수단, 러시아 본토와 크름반도 사이 전력망, 크라스노다르 지역과 크름반도를 잇는 가스관 등입니다.
이같은 조치는 교통과 에너지 인프라 방어의 효율성을 향상하기 위한 것이라고 러시아 당국은 설명했습니다.
러시아 에너지부는 같은날(8일) 텔레그램에 올린 성명을 통해 "크림반도(크름반도)에는 현재 차량 연료가 충분하다"고 밝히고 "휘발유와 디젤 연료 공급은 적어도 15일간 유지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더 많은 연료 공급을 보장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부연했습니다.
■ 식료품 구입 제한
크름대교 폭발·붕괴 사건 이후, 크름반도와 헤르손에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군의 보급선이 위기에 봉착한 상황입니다.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남동 방향으로 진격하며, 헤르손 주 일대 요충지들을 속속 탈환하면서 러시아군의 북부 보급로도 차단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에서 보급물자가 케르치해협을 건너 크름반도에 도착하려면, 선박 편으로는 육상교통보다 훨씬 긴 시간이 소요됩니다.
벌써부터 크름반도에서 연료와 식료품 고갈 위기감이 감지되고 있다고 우크라이나 매체들이 전하고 있습니다. 현지 행정 당국은 크름반도에 연료와 식품·식수 등이 충분히 있다고 밝혔으나, 군수물자 활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식료품 구입 제한 조치를 발동했습니다.
크름반도 행정 당국은 8일 긴급 발표문을 통해 "시장에 식량이 충분하고 소매점도 정상 영업 중"이라며 "식량과 기본 생필품은 55일간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인위적 혼란을 막기 위해, 상점 이용객 1인당 3kg까지만 식료품을 구매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러시아는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름반도에 군대를 보낸 뒤 주민투표 형식을 거쳐 병합했습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루한시크·도네츠크 주와 남부의 자포리자·헤르손 주 일원 등 4개 지역을 같은 방식으로 자국 영토에 편입했습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이같은 병합 조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 자포리자 시내 아파트에 미사일
9일 현재 크름대교의 차량 운행이 일부 재개됐다고 러시아 매체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판이 완전히 무너져내린 주요 차량 구간과 화재로 전소된 핵심 철도 구간 등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몇달이 걸릴 것으로 토목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번 폭발 사건의 배후를 우크라이나로 지목하고 대응을 공언한 러시아군은 8일 밤과 9일 새벽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 주도인 자포리자 시내 아파트 등지에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군의 자포리자 주거지 공격으로 12명이 숨지고 49명이 다쳤다고 9일 텔레그램을 통해 밝혔습니다.
이후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날(9일) 밤 현재 사망자 수를 17명으로 높여 발표한 가운데, 부상자 중에 중상이 많아 희생자는 더욱 증가할 전망입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