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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 “한러 관계 악화 유감 … 관계 정상화 한국에 달려” 압박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일 크렘린궁에서 진행된 21개국 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일 크렘린궁에서 진행된 21개국 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악화된 한러 관계를 한국탓으로 돌리면서 한국의 태도 변화를 압박했습니다. 북러 간 군사적 밀착에 우려가 큰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에 나서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 악화에 유감을 표시하며 관계 정상화 여부는 한국에 달렸다고 밝혔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4일 크렘린궁에서 이도훈 모스크바 주재 한국대사로부터 신임장을 제정하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이 보도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양국 협력이 러시아와 러시아 국민들에게 매우 유익한 파트너십의 궤도로 복귀할 것인지는 한국 정부에 달려있다”면서 “러시아는 이에 대한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양국 관계는 가장 건설적인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었고, 특히 경제 분야에서 상호 이익이 됐다”며 또 “한반도 상황의 정치적, 외교적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러시아와 한국의 관계는 현재 최상의 상태가 아니”라고 유감을 표시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푸틴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북러 간 군사 밀착에 맞선 한국의 잠재적 대응카드를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러시아는 한국과의 관계를 굳이 악화시킬 생각은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정찰위성을 포함해서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기술을 제공하고 있다는 의심이 한국에 강하게 작용하고 있고 그 경우 한국의 카드는 결국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 우크라이나를 레버리지로 러시아를 압박하는 카드가 남아 있거든요.”

한러 관계는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악화돼왔습니다.

한국이 서방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면서 불편한 기류가 만들어졌고,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양국관계가 급속히 얼어붙었습니다.

이후 지난 9월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아무르주에 있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위성 개발 협력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고 특히 북한의 최근 첫 군사정찰위성 발사 성공에 러시아가 도움을 줬다는 정황들이 포착되면서 한국의 러시아에 대한 경계심이 증폭됐습니다.

통일연구원 박형중 석좌연구위원은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에 대해 우크라이나 탄약 지원 혐의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협력을 지렛대 삼아 한국의 적대행동에 비례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경고 메시지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석좌연구위원] “러시아의 입장에선 지금 내가 북한을 돕고 있는 수준이 한국이 러시아에 끼치는 해악에 상응한 거다 라는 메시지를 준 것 같고 만약에 한국이 더 나간다고 한다면 우리는 북한과 더 한 것도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여러 가지 암시를 주는 거겠죠.”

전문가들은 러시아는 북한과의 첨단무기 등 군사 협력 카드를, 한국은 우크라이나 살상 무기 지원 카드를 쥐고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에 중동전쟁 발발까지 겹치면서 한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원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한국에 대한 견제심리가 더 커졌고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발언도 그런 차원에서 나왔다는 분석입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푸틴 대통령이 북러 관계 악화를 한국 탓으로 돌리면서도 관계 복원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러시아의 한국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북한으로부터의 탄약 확보가 불가피한 사정을 한국이 이해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겁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자기들이 북한을 적극적으로 돕거나 한반도 긴장을 조성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일단 현재 자신들의 코가 석자니까 무기와 탄약이 필요하고 그런 협력이 필요하다 이 정도 수준으로 생각하고 한국이 좀 이해해라 그런 메시지가 있다고 보는 게 맞겠죠.”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윤석열 정부는 규칙기반 국제 질서와 자유주의 세력 연대 등 미국 주도의 가치외교에 강력한 파트너로서 러시아와 관계 복원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고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북한과의 협력이 군사 분야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고 장기적으론 한국과의 관계 복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고유환 명예교수] “그래도 한국과 경제협력할 부분이 꽤 있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한국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고 어쨌든 한국과의 관계는 어느 정도 북한과의 관계 못지 않게 중요성을 갖고 있다는 그런 취지의 입장을 얘기한 거라고 봐야겠죠.”

박원곤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당장 도움이 급한 것은 러시아이기 때문에 북한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어느 정도 주도적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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