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2년만에 전국의 경찰 말단 간부들을 평양에 모아놓고 회의를 열었습니다. 경제난으로 인한 민심 동요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봉쇄 조치 해제에 따른 외부 문화 확산 등을 막기 위해 주민 통제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일까지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전국 분주소장 회의’가 개최됐다고 2일 보도했습니다.
북한의 분주소는 한국의 경찰청격인 사회안전성의 최말단 기관으로, 한국의 파출소에 해당합니다.
분주소는 북한 각 지역 동이나 리마다 설치돼 있어 전국적으로 수천개의 분주소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업무와 함께 사상 통제와 체제 보위를 위해 주민들을 감시하는 기능을 맡고 있습니다.
북한이 전국 분주소장 회의를 연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첫해인 2012년 11월 23일 이후 12년 만입니다.
이번 회의에선 지난 2012년 이후 현재까지의 사업 정형을 총화했고 분주소 사업을 혁신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도들이 토의됐습니다.
보고를 맡은 리태섭 사회안전상은 “분주소장들과 안전일꾼들이 우리 제도와 인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칼날 위에라도 올라설 투철한 각오와 의지를 지니고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리 사회안전상은 특히 “경제 발전과 인민생활 발전에 저해를 주는 온갖 위법 행위들과 비타협적인 투쟁을 벌여 당의 부흥 강국건설 위업을 법적으로 튼튼히 보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집권 첫해였던 2012년 회의는 김정은 위원장의 ‘영도 체계’를 확립하고 이른바 불순분자를 색출하는 차원에서 열렸다면 이번 회의는 심각한 경제난이 장기화하는 과정에서 갈수록 느슨해지는 사회 기강을 다잡으려는 목적으로 열렸다는 관측입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인태 수석연구위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봉쇄 조치가 완화되면서 불가피하게 국경과 장마당 등에서 이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북한 당국이 사회 불안의 확산을 막아야 하는 시점이라고 판단하고 전국 단위의 분주소장 회의를 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인태 수석연구위원] “밀수 밀매가 성행되면 북한의 제일 아킬레스건인 외부 문화가 유입되는 부분이 국경은 그게 제일 심각한 부분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국경을 열면 이게 어차피 따라 들어가는 구조거든요. 그래서 지금 자기들이 판단했던 여러 부분들을 다 종합해서 노동당에서 판단을 하고 지금이 적기다 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북한 당국은 내년 노동당 창건 80주년을 앞두고 올연초부터 주민들에게 ‘애국’을 강조하는 선전 선동을 강하게 벌이고 있다며 이런 맥락에서 특히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를 차단하는 사상 투쟁을 주민 통제의 최일선에 있는 분주소장들에게 강하게 주문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오경섭 연구위원은 분주소장들의 임무 가운데 한국 드라마 등 이른바 한류 문화에 대한 주민 접촉을 차단하고 확산을 막는 일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오경섭 연구위원] “한류 유입으로 인한 북한 내부의 친남한화 그리고 남한 사회에 대한 동경,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 이런 게 상당히 심각한 상황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한류 유입과 확산을 통제하기 위한 이런 목적도 있는 것 같고.”
북한 당국은 앞서 주민들이 한국과 서양 문화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 2021년 청년교양보장법, 2023년엔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잇달아 제정한 바 있습니다.
또 작년 12월에는 가장 작은 행정 단위인 ‘인민반’ 조직운영법을 제정해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탈북민 단체인 ‘탈북자 동지회’ 서재평 회장은 물자 부족이 장기화하면서 주민들이 국가 주도의 유통체계에서 벗어난 이른바 ‘비법’적인 사경제 행위를 지속하고 있고 자살과 강도 등 범죄들이 늘면서 민심이 흉흉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서재평 회장] “3월쯤 중국에 나온 북한 주민의 얘기를 들으면 자살이 엄청 많아졌다, 그리고 자고 일어나면 어느 집 사람이 죽었다, 이유가 식량난이죠.”
일본 ‘TBS’ 방송은 한국 내 탈북민이 북한을 탈출하기 한달 전인 작년 4월 북한 황해남도에서 굶주린 주민들의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한 영상을 최근 방영했습니다.
영상은 거리에 굶어서 쓰러진 것으로 보이는 한 남성의 모습과 담배를 피우며 구걸을 하고 있는 노동자가 자신이 속한 작업반에 굶주린 이들이 굉장히 많이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민족과 통일 개념을 배제한 대남정책 전환 등 주민들에게 사상적 혼란을 줄만한 요인들 또한 주민 통제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민심을 잡기 어려운 구조적인 경제 위기 상황에서 김정은에 대한 과도한 우상화, 민족 통일 개념 폐기, 김일성 ‘태양’ 지우기 이런 걸로 인해서 보면 김정은 체재가 상당히 불안하고 초조한 흐름이 많다, 분주소장 대회 뿐만 아니고 선전선동 일꾼 대회, 군당 책임비서 대회도 한 적 있고 또 노동당의 통제 역할을 계속 강조하고 있거든요.”
이번 전국 분주소장 회의에는 당 중앙위원회 부장 김형식, 사회안전상 리태섭, 사회안전성 정치국장 심홍빈 등이 참석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For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