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 113명이 강제실종된 과정을 추적한 민간단체 실태보고서가 공개됐습니다. 피해자 중 13명이 10세 미만 아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안준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인권 단체인 전환기 정의 워킹그룹은 30일 ‘존재할 수 없는 존재-북한 강제실종범죄 조사’ 실태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지난 2021년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3년 5개월간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62명을 심층 면담해 북한에서 자행된 강제실종 범죄를 추적∙분석한 보고서입니다.
특히 이번 보고서에서는 북한 주민들이 강제실종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지도화(mapping)했습니다.
중국에서 강제 북송된 뒤 이감 경로, 종교 활동 혐의에 따른 강제실종 과정, 탈북을 준비하던 주민의 강제실종 과정 등을 지도와 흐름도로 제시했습니다.
또 자녀와 자녀의 배우자를 포함한 한 일가가 강제실종된 사건의 가계도도 작성했습니다.
전환기 정의 워킹그룹은 스위스의 휴리독스(HURIDOCS), 납북 피해 가족 단체, 탈북민 단체들과 공동 구축해 지난 2021년 1월 처음 공개했던 ‘FOOTPRINTS: 북한에 의한 실종피해자 데이터베이스'를 업데이트하고, 이번 ‘북한 내 강제실종 조사’로 기록∙분석한 사례들을 실었습니다.
강제실종자의 연령대를 분석한 결과, 20~30대가 113명 중 44명(38.9%)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특히 10세 미만의 아동도 113명 중 13명에 달해 전체의 11.5%에 이르렀습니다.
“주요 강제실종 장소는 국가보위성”
보고서는 “강제실종 아동의 문제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개적 질의와 명시적 비판, 강력한 행동이 특히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강제실종된 사람이 가족이나 친척인 경우는 113명 중 54명으로 전체의 절반에 달했습니다.
체포∙연행∙북송된 뒤 강제실종이 주로 이뤄진 곳은 국가보위성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처음 체포∙연행한 기관은 북한의 국가보위성, 중국 공안부, 북한 국경경비대, 북한군 보위국, 사회안전성 등의 순이었습니다.
국가보위성은 이번 조사로 파악한 강제실종자 113명 중 62명을 체포∙연행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체포∙연행∙북송 이후 실종된 시점의 관할 기관은 국가보위성이 전체의 81.4%(113명 중 92명)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강제실종자 113명 가운데 90명은 북한에서 실종됐지만, 23명은 중국∙러시아에서 체포된 순간부터 이후 행방을 알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강제실종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탈북 관련 강제실종이 45명(39.8%)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연좌제로 인한 강제실종(29명, 25.7%), 한국 등 외부와 연락∙접촉 혐의에 따른 강제실종(10명, 8.8%) 등의 순이었습니다.
종교적 혐의에 따른 강제실종도 6명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책임 추궁에 중요한 기반 될 것”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강정현 전환기 정의 워킹그룹 프로젝트 디렉터는 이날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에서의 강제실종 문제는 오랫동안 빈번하게 발생했지만 주목받지 못해 덜 알려져 있었다”며 “실종 과정을 추적하고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실태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강 디렉터] “북한 기관이 이런 강제실종에 관여하고 있고, 그리고 북한 정권이 피해자들의 생사나 소재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국제법상의 강제실종에 해당하는 일을 오랫동안 자행하고 있다라는 것들을 저희가 일단 밝히면서, 그리고 더불어 김정은과 보위부 같은 기관들이 책임이 있다는 것을 밝혔잖아요.”
강 디렉터는 이 보고서가 향후 국제사회가 북한의 강제실종 범죄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강제실종이란 국가기관, 또는 국가의 역할을 자임하는 단체에 의해 체포, 구금, 납치돼 실종되는 것을 말합니다. 피해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과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인권 침해 중에서도 매우 심각한 사례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살몬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29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가 개최한 북한 인권 상호 대화에서 북한에 의한 강제 실종이 심각한 인권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국제인권법은 강제 실종자들의 가족도 피해자로 간주한다”고 상기했습니다.
앞서 지난 21일 강제 실종 문제를 주제로 한 유엔 총회 제3위원회 회의에서 미국은 “북한이 강제 실종을 중단하고, 북한 주민과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실종자와 납치자를 즉각 석방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날 회의에서 강제 실종 문제를 전면 부인했습니다.
김남혁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서기관은 이날 회의에서 “이는 국제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일 뿐 아니라 북한에 대한 뿌리 깊은 적대 정책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VOA 뉴스 안준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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