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참전용사가 당시의 참혹했던 전쟁의 기억과 참전의 의미를 후대에 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해병대 출신으로 한국전 당시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살 스칼라토 씨는 미국인들에게 잊혀진 전쟁이자 잊혀진 승리인 한국전쟁을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영상편집: 강양우)
1952년 4월, 19살 나이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살 스칼라토 씨.
스칼라토 씨는 3일 뉴욕의 민간단체인 코리아 소사이어티가 주최한 화상 토론회에 참석해 전쟁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미국 해병대 1사단 소속 자동화기병으로 판문점 일대 서부전선에 배치됐던 스칼라토 씨는 파병 직후 중공군에 맞서 주요 요지를 뺏고 빼앗기는 치열했던 전투를 떠올렸습니다.
한국 도착 일주일 만에 치른 첫 전투.
귀국을 앞둔 바로 옆 전우가 총에 맞아 전사하는 모습을 본 뒤 자신은 더 이상 10대 청소년일 수는 없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살 스칼라토 / 한국전쟁 미군 참전용사
“그 때 제 옆에는 일주일이면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던 전우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프레드였는데 배에 총을 맞고 내 몸 위로 쓰러졌죠. 제가 재앙을 맞닥뜨린 첫 순간이었습니다.”
스칼라토 씨는 1952년 7월 이른바 ‘시베리아 고지’ 전투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참혹했던 순간도 생생히 전했습니다.
8시간 동안 지속된 전투 중에 수류탄이 터지면서 파편에 맞아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고, 중공군에 생포됐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다행이 미군을 지원 중이던 한국인들에 의해 구조돼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부상에서 회복된 이후 전쟁에 회의감을 갖게 될 즈음, 스칼라토 씨는 어린 한국 소년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자신이 왜 참전하는지 그 의미를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살 스칼라토 / 한국전쟁 미군 참전용사
“그제서야 내가 왜 그곳에 있는지 깨닫게 됐습니다. 마침내 끊임없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은 것이었죠. 우리는 한국의 어린이들을 구하기 위해 그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전쟁 이후 오랫동안 뉴욕주 한국전 참전용사협회 회장을 맡았던 스칼라토 씨는 1995년 협회 결성 이후 미국인들에게 잊혀진 전쟁, 잊혀진 승리가 된 한국전쟁을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전 참전용사의 한사람으로서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과 의미를 전할 수 있게 해준 한국과 한국민, 미국 내 한국사회에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VOA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