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 대화가 장기간 중단된 가운데 미국과 한국의 북 핵 대표들의 직책 또는 직급이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미한일 대 북중러라는 새로운 진영구도가 작동하면서 협상 재개가 어려워진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외교부는 지난 2006년부터 운영해온 한반도 문제, 특히 북 핵 협상을 담당했던 조직인 한반도평화교섭본부를 ‘외교전략정보본부’로 바꾸고 외교전략과 정보, 국제안보 기능까지 관할하도록 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안을 최근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라 차관급인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맡아온 한국 정부의 북 핵 수석대표 역할은 외교전략정보본부장이 하게 됩니다.
외교전략정보본부장도 차관급으로 북 핵 수석대표의 직급은 그대로지만 기존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보다 업무 범위가 크게 늘어나는 데 차이가 있습니다.
새로 탄생할 외교전략정보본부는 산하에 한반도외교정책국장과 외교정보기획관, 외교전략기획관, 국제안보국장 등 네 국장을 두게 됩니다.
한반도평화교섭본부는 한반도외교정책국으로 조직이 축소되고 다른 국들은 인도태평양 전략이나 군축과 비확산, 외교정보 분석 등을 맡게 됩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변화하는 국제 지정학적 환경에 맞춰서 시스템을 바꾸는 작업이고 그런 측면에서 한반도평화교섭본부를 줄인 게 아니라 늘렸다”며 “적시성을 가진 조직 개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한반도 업무가 더 이상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만 국한되지 않고 북 핵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이버안보, 금융 제재 등 여러 이슈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만 하는 성격의 문제로 진화했다는 현실을 감안한 조직 개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입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북한 문제를 남북관계 문제로 보지 않고 이것은 세계적 의제이기 때문에 더 큰 차원에서 포괄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게 현 정부의 기본 인식과 입장이잖아요. 그래서 개편이 이뤄졌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고 그렇다고 전반적으로 북한 문제에 대해서 중요도를 떨어뜨린 것은 아니고 저는 오히려 중요도는 더 높아졌다고 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이질적 요소를 합치면서 새로 만들어지는 조직의 정체성이나 정책 목표가 모호하고, 결국 한반도 문제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서 나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북한의 핵 무력이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북 핵 협상 조직이 축소된 것은 자칫 북한 비핵화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의지가 약화됐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관련국들에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홍 박사는 핵 군축이나 군비통제 협상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북 핵 문제를 다루는 더 고도화된 전략과 전술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해당 조직의 기능이 위축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2006년 한시적 조직으로 출발해 2011년 상설기구가 된 한반도평화교섭본부의 개편은 최근 크게 달라진 북 핵 외교환경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한반도평화교섭본부의 설치 목적은 북 핵 6자회담 업무였습니다.
편제도 비핵화 교섭을 하는 북핵외교기획단과 한반도 평화체제 교섭을 담당하는 평화외교기획단이라는 두 국장급 하부조직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남북한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국들이 대화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진전시켜 간다는 6자회담 당시의 목표는 미중 패권경쟁과 미러 갈등 심화 등 급변한 세계질서 속에서 동력을 잃게 됐습니다.
북 핵 문제를 둘러싸고 미한일 대 북중러라는 진영구도가 만들어지면서 비핵화 협상 재개도 요원해졌습니다. 홍민 박사입니다.
[녹취: 홍민 박사] “유엔 매커니즘 자체도 대북 제재 결의가 잘 작동이 안되고 그래서 사실상 북한과 중국, 러시아, 이란까지 포함한 반미전선 이런 국가들로 일정하게 북 핵 문제에 있어서 용인 공간이 생겼고 거기에 따르는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 한미일 연대가 강화되면서 북한 핵 문제에 대한 광범위한 이런 공조전선이 과거와 같지 않게 된 거죠.”
이런 흐름 속에서 미국에서도 북 핵 수석대표의 급을 낮추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성 김 전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해 말 은퇴하면서 정 박 당시 부대표가 ‘대북고위관리’라는 직함으로 미국의 북 핵 수석대표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한국과 필리핀, 인도네시아 대사를 지낸 성 김 전 대표의 후임으로 정 박 국무부 부차관보가 북한 문제를 다루게 된 것은 조 바이든 행정부 외교정책에서 북한 문제의 비중 축소를 보여주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역임한 위성락 전 러시아대사는 현재 협상이 진행되지 않고 있지만 북 핵 문제의 엄중함은 더 커지고 있고 따라서 협상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압도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위 전 대사는 미중 미러 갈등 속에서도 관련국들은 북 핵 문제를 세계 평화 차원에서 협력의 영역에 두고 협의해야 한다며, 이런 활동에 힘을 싣기 위해선 이를 주도하는 각국 대표를 상당히 높은 급에서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위성락 전 대사] “미소가 냉전 시기에 많은 대립을 했지만 핵 비확산 또 핵 군축 이런 문제에선 많이 공조하고 합의도 많이 냈어요. 그런 것처럼 북한 핵 문제를 기존의 여러 나쁜 분위기 속에서 떼어내고 공조하고 대화할 수 있는 영역으로 만들어내고 그런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상당히 수준 높은 포인트 맨이 있는 게 낫다는 거죠.”
중국은 북한과 영국 주재 대사를 지낸 류샤오밍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북 핵 수석대표를 맡고 있지만 미한과의 협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방한은 윤석열 정부 출범 직전인 2022년 5월이었고 미중 북 핵 대표 간 양자 협의는 화상으로 드물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러시아 북 핵 수석대표인 안드레이 루덴코 외무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협의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북한 비핵화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는 인식이 협상 공전의 장기화를 낳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김현욱 교수] “북한이 자국이 핵을 가졌다는 것을 전제로 한 대외정책을 계속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상태에서 북한과의 비핵화를 위한 대화가 실질적으로 힘들 것이라는 인식이 상당히 국제사회에 퍼져 있다고 봅니다.”
김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는 비핵화 협상 재개 보다 한반도에서의 과도한 긴장을 막기 위해 북한 도발을 관리하는 수준의 정책을 지속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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