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북한과 동맹에 준하는 수준의 조약을 체결한 러시아를 규탄하고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기존 방침을 재검토하기로 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하면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과 러시아가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해 상호 군사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데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하며 이를 규탄한다”고 밝혔습니다.
대통령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20일 북러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 체결과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한 후 언론브리핑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의 ‘정부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녹취: 장호진 실장] “일어나지도 않을 국제사회 선제공격을 가정하여 군사협력을 약속한다는 것은 국제사회 책임과 규범을 저버린 당사자들의 궤변이요 어불성설이다.”
장 실장은 “정부는 북한의 군사력 증강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어떠한 협력도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며, 국제사회의 감시와 제재 대상임을 분명히 강조한다”며 “특히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대북 제재 결의안을 주도한 러시아가 스스로 결의안을 어기고 북한을 지원함으로써 우리 안보에 위해를 가해 오는 것은 한러 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어 “정부는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어떠한 행위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무력화하기 위한 한미동맹의 확장억제력과 한미일 안보협력 체계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특히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문제를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한 후 서명한 조약에는 ‘북한과 러시아 어느 한쪽이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면 상대에게 지체 없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입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북한과 러시아가 동맹 조약 수준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한반도 안보 상황에 매우 중요한 변곡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살상무기 지원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재검토하기로 한 것은 당연한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것이 실제 긴장으로 고조되는 것을 조절하기 위한 그런 상황관리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한국 외교부는 북러 새 조약 체결에 반발해 주한 러시아대사를 초치했습니다.
김홍균 외교부 제1차관은 21일 오후 2시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대사를 서울 외교부 청사로 불러 북러 조약 체결과 군사협력에 대한 정부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조약에 대해 “1961년 북한과 소련이 맺은 조약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군사적인 지원을 포함한 상호 지원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동맹에 가까워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고위 관계자는 “1961년 조약에는 ‘지체 없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 군사적 또는 기타 지원을 제공한다’고 돼 있지만 이번 것은 유엔헌장 51조와 국내법 규정 같은 완충장치가 달려 있어 자동군사개입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막상 푸틴은 동맹이라는 말을 전혀 쓰지 않았고 김정은 혼자만 동맹을 외쳤다”며 “구체적인 내용을 좀 더 확인해보고, 이런 문구가 들어간 경위도 중요할 수 있어서 폭넓게 알아보고 판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조약이 대통령실이 사전경고한 ‘선’을 넘은 것인지에 대해선 “이 정도 내용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예상을 했었다”며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받는 북한과 이런 조약을 맺는다는 자체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이 고위 관계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과 관련해서 “살상이냐, 비살상이냐를 떠나서 무기 지원에는 여러 옵션이 있다”며 “일반 살상무기가 아닌 정밀무기도 많이 있고, 살상무기가 아니더라도 러시아가 싫어하는 것들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제공에 다양한 옵션을 갖고, 러시아의 태도에 따라 무기 지원 수준이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에 대해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공급한다면 “아주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타스’ 통신 등 러시아 매체들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20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한과 베트남 순방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말하고,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상응하는 결정을 내릴 것이고 그것은 아마 한국의 현 지도부가 달가워하지 않는 결정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북러 간 유사시 자동군사개입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새 조약 내용에 대해 “조약상 군사적 원조는 오직 침공, 군사적 공격이 있을 때 적용되기 때문에 한국은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며 “내가 알기론 한국은 북한을 침공할 계획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이런 분야의 협력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한국과 러시아가 서로에게 제시한 ‘레드라인’위에 서 있는 아슬아슬한 양상이라며, 양국이 파국을 막기 위해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러시아로선 동맹조약도 아니고 높은 수준의 군사 협력 정도로 보고 있거든요. 한국 정부도 그 상황은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 같고 다만 이게 실제 이행됐을 때 한반도 안보에 위해가 되는 상황을 가장 우려하는 거거든요. 조약 자체는 유감이죠. 그러나 실제 어떻게 이행하느냐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입장인 것 같고요. 따라서 우크라이나 카드를 활용해서 러시아에 경고했다고 볼 수 있고.”
한국 대통령실은 이달 초 북러 간 ‘자동군사개입’을 골자로 한 조약 체결 가능성에 대해서 이미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이도훈 러시아 주재 대사가 이달 초 러시아 측에 경고메시지도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또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장거리 무기로 러시아 접경지 벨고로드를 공격하는 것은 침략 행위에 가깝다고 보고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서방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맞서 러시아도 제3국에 무기를 공급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며, “북한과의 합의와 관련해서도 이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통일연구원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북러 조약은 우크라이나가 미국 등 서방의 첨단무기를 지원 받아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북한을 대응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며, 푸틴 대통령의 메시지는 한국보다는 미국과 나토를 겨냥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홍민 선임연구위원] “러시아가 당장 직면한 이해는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를 제공하지 않고 러시아 본토에 대한 공격을 하도록 허용하지 않게끔 압박하는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는 단기적으로 그것을 압박하기 위해 북한과의 조약을 활용하는 것이고.”
한편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북러 정상회담 관련 대응 논의를 위해 20일 밤 유선 협의를 가졌다고 한국 외교부가 21일 밝혔습니다.
양국 장관은 러시아와 북한이 ‘포괄적인 전략적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통해 상호 군사 경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은 한미 양국의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자 한반도와 역내 평화와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이라며 강력히 규탄했습니다.
또 미한동맹을 바탕으로 단호하게 공동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객원연구위원은 북러 새 조약은 푸틴 대통령의 ‘유라시아 안전 구조 구축’이라는 큰 전략 아래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맞서기 위한 일환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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