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한국이 전단 살포와 확성기 방송을 병행하면 새로운 대응에 나서겠다고 위협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한국사회에 불안과 혼란을 야기하려는 어떤 시도도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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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9일 저녁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만약 한국이 국경 너머로 삐라 즉 전단 살포 행위와 확성기 방송 도발을 병행해 나선다면 새로운 우리의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 부부장은 “우리의 대응 행동은 9일 중으로 종료될 계획이었지만 상황은 달라졌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북한은 한국 민간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응해 지난달 28일과 29일, 지난 1일과 2일에 이어 8일과 9일, 그리고 10일 아침까지 이른바 ‘오물 풍선’을 한국 측에 살포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8일과 9일 새벽 기구 1천400여 개를 이용해 휴지 7.5t을 국경 너머로 살포했다며 “뒤져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빈 휴지장만 살포했을 뿐 그 어떤 정치적 성격의 선동 내용을 들이민 것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 군은 김 부부장 담화가 나오기 직전인 9일 오후 북한의 오물 풍선 공세에 맞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6년 만에 재개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9일 밤부터 10일 아침까지 또 다시 오물 풍선 310여 개를 추가 살포했다고 한국 군 당국은 밝혔습니다.
김 부부장은 한국 측에 “확성기 방송 도발을 재개한다는 적반하장격의 행태를 공식화하는 것으로써 계속 새로운 위기 환경을 조성했다”고 비난하면서, “서울이 더 이상의 대결 위기를 불러오는 위험한 짓을 당장 중지하고 자숙할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김 부부장이 ‘새로운 대응’을 위협한 데 대해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의 10일 브리핑 발언 내용입니다.
[녹취: 구병삼 대변인] “북한이 우리 국민의 불안과 사회 혼란을 야기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할 수 없으며, 북한은 우리의 정당한 대응을 도발의 명분으로 삼는 오판을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군 당국은 9일 오후 5시부터 최전방 지역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를 가동했습니다. 약 2시간 동안 고정식 확성기 여러 대를 가동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한국 군이 제작하는 대북 심리전 방송인 ‘자유의 소리’를 확성기로 재송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한국 군 당국은 그러나 10일엔 확성기 방송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합동참모본부는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10일 보낸 공지를 통해 “대북 확성기 방송은 현재까지 실시하지 않았고, 10일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북한이 비열한 행위를 할 경우에는 즉시라도 방송할 준비는 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날 2시간만에 중단한 이유에 대해 “전략적, 작전적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작전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실장은 "장비의 휴식 등도 고려해야 하고 또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 필요한 시간만큼, 필요한 시간대에 작전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군이 ‘융통성 있는 작전’을 언급한 것은 확성기 방송 태세를 유지하면서 실제 가동 여부는 상황을 따져 결정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합참은 앞서 9일 대북 확성기 가동 사실을 공개하면서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 추가 실시 여부는 전적으로 북한의 행동에 달려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실장은 확성기 방송 장비를 겨냥한 북한의 공격 가능성에도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이성준 공보실장] “일차적으로는 방호가 되는 곳에서 작전을 시행하고 있고요. 또 필요한 장구류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또 공격을 받았을 때는 ‘즉강끝’ 응징할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어서 쉽게 그렇게 도발을 하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한국 군은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에 맞서 지난 2015년 8월 대북 확성기 방송을 11년 만에 재개했는데 당시 북한은 경기도 연천군 28사단 최전방에 배치된 대북 확성기를 조준해 고사총 1발과 직사화기 3발을 발사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합참은 “북한이 전방지역에 대남 방송용 확성기를 설치하는 동향이 식별됐다”며, “현재까지 대남 방송은 없었지만 북한 군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최소 30여 곳에 달하는 대남 확성기를 없앤 바 있습니다.
북한도 대남 방송을 다시 시작한다면 남북이 동시에 확성기를 통해 심리전을 수행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편 김 부부장의 담화가 ‘새로운 대응’을 언급하며 위협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북한이 극도로 민감해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에 대응한 담화치고는 대남 비난 수위가 강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김 부부장의 담화가 확전보다는 상황을 관리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며, 북한 당국은 한국과의 긴장 상황을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있고 이번에 보낸 오물도 이전과는 달리 위해성이 떨어지는 종이 쓰레기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현재 내부엔 알리지 않고 있고요. 그리고 두 번째는 북한이 지금 보내고 있는 게 지난번과는 달라요. 지난 번 두 번은 정말 오물이었는데 지금은 본인들이 전단이라고 주장할만한 것들에 가깝거든요. 지난번보다 위해로운 물질이 아니다 이렇게 볼 수 있고요.”
실제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 북한 대내 매체들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사실이나 대남 오물 풍선 살포와 관련한 보도는 물론 김 부부장의 담화를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그러나 한국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응해 대남 오물 풍선을 살포하고 있어 민간단체가 전단을 보내면 또 오물 풍선을 날려 보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 한국 군 당국은 또 다시 대북 확성기를 가동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북한은 김 부부장이 언급한 ‘새로운 대응’에 나설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민간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를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를 고려해 접근한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고 일부 민간단체들은 이번 주에도 바람의 방향이 맞으면 대북 전단을 보내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양욱 박사는 김 부부장이 언급한 ‘새로운 대응’에 대해 군사 도발 보다는 이른바 회색지대 도발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양욱 박사] “여태까지 했던 회색지대 도발 가운데 성공적이었던 것들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이슈가 크게 안됐지만 대대적인 사이버 공격을 시작한다거나 GPS 교란 범위를 지금보다 훨씬 더 확대할 수도 있는 겁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강경 대응 입장 등을 고려해 북한이 조준사격 등 물리적 대응엔 신중할 것이라며, 오물 풍선처럼 예상 밖의 또 다른 회색지대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