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수일 내 북한을 방문한다고 밝혔습니다. 9개월 만에 또 다시 이뤄지는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군사 부문을 포함해 양국 밀착이 어느 수준까지 합의에 이를지 주목됩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2일 윤석열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국빈 방문 기간 수도 아스타나 현지에서 기자들에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며칠 내로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확인했습니다.
앞서 러시아 매체인 ‘베도모스티’는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몇 주 안에 북한과 베트남을 방문할 예정이며 이르면 이달 중 순방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오는 19일부터 20일까지 베트남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돼 그 전에 북한을 방문할 수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 정확한 날짜는 공식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푸틴 대통령의 방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기인 2000년 7월 이후 24년 만입니다.
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난해 9월 러시아 방문에 대한 답방 성격으로, 두 정상은 러시아 극동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난 이후 9개월만에 또 다시 정상회담을 가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푸틴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한 북한 내부의 준비 동향도 포착되고 있습니다.
12일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는 미국 민간 위성 서비스 ‘플래닛 랩스’가 촬영한 영상사진을 분석해 고려항공 항공기들이 지난 6일부터 10일 사이 공항 터미널 건물 근처 계류장에서 사라졌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는 외국의 대규모 대표단의 방문을 앞두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로 보입니다.
지난 2018년과 2019년에도 다른 나라 지도자들이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담을 위해 평양에 도착하기 직전 동일한 조치가 취해졌습니다.
24년 만에 푸틴 대통령의 방북이 이뤄지면 북한은 대외적으로 러시아가 자신의 든든한 ‘뒷배’라는 점을 과시하고 대내적으론 김정은 위원장의 업적으로 선전할 것으로 보입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푸틴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북러는 지난해 9월 두 정상이 합의한 교류협력 상황을 점검하고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계기로 삼으려 할 것이라며, 북한은 이달 말로 예고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북러 관계 강화를 대대적으로 선전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이번 당 중앙위 전원회의 때 상반기 성과들을 총화하고 그러면서 하반기 방향을 다시 또 점검하고 내부결속을 도모하려고 할 텐데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 새로운 북러 관계와 관련된 성과를 최대한 과시할 수 있는 그런 이점은 분명히 있어 보여요.”
우크라이나 침공과 핵 무력 고도화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북러는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방북 과정에서 표면적으론 국제사회 비난 부담이 적은 경제협력 분야를 부각시킬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 등 서방의 무기 지원이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러시아는 북한의 도움이 여전히 절실하고, 북한은 대미 교착 장기화에 대비해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와 식량 등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지난해 북러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언급한 양국 우주기술 개발 협력 논의를 한층 구체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지난해 북한은 군사정찰위성 1호기 발사 성공 후 올해 추가로 3차례 발사하겠다고 말했으나 상반기에 한 번도 이를 성공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우주 기술 강국인 러시아와 관련 협력을 강화하려 할 것이라는 겁니다.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방북 행보에서 가장 큰 관심은 북러 간 군사협력이 어느 수준에서 합의가 이뤄질 지입니다.
지난해 북러 정상회담에선 전쟁 중인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재래식 무기 제공에서 비롯된 주고받기식의 거래에 치중했다면 이번 회담에서는 공동의 정세인식을 바탕으로 무기체계 공 개발이나 합동군사훈련 등 안보협력 수준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임을출 교수는 북러는 대미 공동전선 구축의 필요성을 공유하고 있다며 특히 북한은 오는 8월 처음 핵 작전시나리오에 입각해 이뤄지는 미한연합훈련에 대응해 러시아와 높은 수준의 군사협력을 원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북러 간 군사 밀착 수준을 냉전시대 수준으로 높이고 이를 제도화하기 위해 양국이 기존에 체결된 조약을 손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북한이 1961년 옛 소련과 맺은 ‘조소 우호협조와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은 무력침공 또는 전쟁 시 자동군사개입 조항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소련이 한국과 수교를 맺은 후 해당 조약은 폐기됐습니다.
이후 2000년 체결된 양국 ‘우호·선린·협조 조약’에는 자동군사개입 조항 대신 ‘쌍방 중 한 곳에 침략당할 위기가 발생할 경우 쌍방은 즉각 접촉한다’는 내용만 담겼습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박사는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지난 1월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당시 북러 관계를 새로운 법률적 기초 위에 세우겠다고 언급했다며 새 조약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북러 간 군사동맹 복원에 대해선 핵무기 보유국임을 자처하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이 거부감이 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한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 카드, 그리고 장기적으로 극동지역 개발에 한국과의 협력 필요성 등을 고려해 한국을 자극하는 북한과의 군사협력을 피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임수석 한국 외교부 대변인은 13일 브리핑에서 북러 밀착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습니다.
[녹취: 임수석 대변인] “러시아와 북한 간의 교류 협력은 관련 안보리 결의를 준수하는 가운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북 핵 문제와 관련해선 푸틴 대통령이 북한을 편드는 기존 입장을 공식석상에서 재차 확인할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장용석 박사는 푸틴 대통령이 국제사회 시선을 의식해 북한 핵 보유를 전면 지지하는 발언까지 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문제의 원인을 미국 탓으로 돌리며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철회를 주장할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녹취: 장용석 박사] “북한의 핵 보유가 정당하다고 바로 대놓고 얘기할 순 없을 거에요. 그러면 유엔 규범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론 북한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는, 북한의 자위적 성격이라고 얘기하거나 그걸 기반으로 정당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 이런 얘기들은 충분히 나올 수 있고.”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의 방북이 지난달 한일중 3국 정상회의 이후 이뤄진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또 다음 주 서울에선 한중 외교안보대화가 9년 만에 열리는데, 북한이 반미 연대를 위해 활용하고 있는 신냉전 구도를 부담스러워하는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신경을 쓰는 양상입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푸틴 대통령 방북을 통해 북러 협력 수준을 최대치로 높이면서 동시에 최근 상대적으로 소원한 관계인 중국에 우회적으로 협조를 압박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겁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전병곤 박사입니다.
[녹취: 전병곤 박사] “북한도 자기를 빼놓고 북한 비핵화 문제 등 얘기를 하게 되니까 특히 한미일 3국 협력이 강화되면서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가하고 있는데 이에 대응해서 북한이 고립이 안 되고 러시아와 긴밀한 밀착을 과시함으로써 북러 양국이 모두 대내외에 자신들의 관계를 과시하는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은 지난달 한일중 3국 정상회의 당시 공동선언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거론되자 담화를 통해 반발하며 중국에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 바 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Forum